영화 한 편. 더 원더 The Wonder.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1862년 근대말기의 영국이다. 중세의 카톨릭의 기적 이야기가 숱하게 만들어지던 때에서 근대로 넘어온 때다. 이 영화는 그 때의 시대상황을 다루며 신의 기적과 인간의 행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한다. 아일랜드 시골마을의 한 소녀가 무려 4개월동안 음식을 안 먹었는데도 몸만 약간 허약할 뿐 전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신의 기적을 보고자 그 소녀, 애나 오너널을 찾아오고 당시 주변의 전쟁과 절망적 삶에 지쳐 있던 사람들은 그 소녀를 보고 함께 기도하며 위로를 받고 집에 돌아간다. 여기까지 보면 하나의 신앙이야기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 놀란 그 지역의 의사가 이 아이의 도무지 과학적이지 않은 기적을 관찰하려고 시도한다.그래서 지역 신부를 비롯한 지도급 성직자들로 위원회가 모여져 이 사실을 알아보려 한다. 그래서 런던에서 불러 온 간호사 엘리자베스 립 라이트가 그 일에 2주동안 완전하게 관찰하게 했고 그녀외에 수녀 한 사람도 따로 그 소녀를 관찰하게 했다. 간호사와 수녀의 이 합동 관찰은 소녀의 영혼과 육신을 돌보는 면에서 아주 조합이 맞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간호사는 의학적 지식을 가진 전문간호사로서 이 소녀와 그 가족이 숨기는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가족들을 의심하여 여러 날을 세밀하게 관찰했지만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다. 당시 유명한 영국기자 한 사람도 이들의 거짓조작을 밝히려고 이 집에 와서 탐문하나 역시 별 소득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간호사 엘리자베스 립 라이트는 소녀 애나를 지극히 사랑해 주었고 그럼에도 그 아이가 도대체 음식을 먹지않고 사는 이유를 몰라 오랜시간을 고민하던 중에 어느 날, 혼자 식사하다가, 생각없이 한참 멍하니 음식을 씹다가, 아! 하고 불쑥 깨닫는다. 그것은 아침이나 밤에 그 어머니가 그 소녀에게 항상 가까이 있으며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그 때 마치 어미 새가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아기 새에게 음식을 잘게 부수어 그 입에 넣어주는 것처럼 이를 기적이라고 자주 말하며 매사에 신앙으로 치부하던 엄마가 그 딸에게 먹기 좋게 부순 음식들을 입맞춤을 통해 넣어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그녀는 그 소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이야기하다가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소녀의 계속되는 금식은 지옥에 있는 오빠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놀란 그녀는 소녀에게 그 이유를 묻는데, 사실 오빠는 그 소녀가 9세때에 그녀를 유린하고 "너는 나의 누이이며 신부"라고 하며 둘은 그 밤에 결혼을 했고 얼마 못가서 오빠가 병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 후에 엄마가 그 비밀을 알고 오빠가 죄를 지어 연옥에 있으니 그를 구원하고 또 너도 잘못이 많으니 너를 구원하라고 금식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소문이 과장되고 왜곡되어 주변에 퍼져가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 소녀 애나가 자기 오빠와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금식을 하게 하되, 이는 행위 공로이며 행위구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어린 딸의 생존을 위해서 그 엄마가 아주 적은 음식을 입으로 넣어주었던 것이다.
그 간호사 립라이트는 그 사실을 알기 며칠 전부터 좀 더 완전한 관찰을 위해 부모를 애나에게 더 이상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했기에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이제 엄마로부터의 음식공급은 완전히 중단되었고 그러자 그 소녀는 생기를 잃고 점점 죽어져 간다. 그래서 그녀는 성직자 위원회에다가 그녀가 관찰한 진실을 보고하자 그들은 오히려 그 말을 거짓이라고 판단하며 기적을 통한 종교적 번영을 위해 또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던 성인을 추앙하려고 하는 종교적 욕심에 그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결국 그 소녀를 불러 " 너가 음식을 손댄 적이 있느냐" 라고 묻자 그 소녀는 마치 준비된 듯이 " 하늘의 만나요" 라고 그들의 욕심의 불에 기름을 붓는 대답을 하므로 그들은 종교적 흥분으로 가득차서 진실을 왜곡하고 만다.
그들은 많은 지식과 높은 직위에 있으면 서도 종교적 욕심에 의해 그 시골 여인과 그 딸의 의도치 않은 꾀임에 빠져 덩달아 정신없이 놀아났던 것이다. 오늘 우리시대 에서도 이런 기막힌 모습을 사이비 이단들의 행태들을 통해 보게 되지 않는가!
가만보면 그 소녀의 어머니도 참 무서운 여자다. 종교를 빌미로 자기 아들을 죽은 영혼의 대기장소인 연옥에서 구원하고 또 자기의 어린 딸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금식을 시키는, 신앙의 이름으로 무지한 행동을 한다. 뿐만 아니라 결국 이 소문이 왜곡되어 사람들이 그 아이의 기적을 신의 임재라고 높이며 무수히 그 집에 찾아오니 그 어머니는 자신들의 거짓을 계속해서 위장하여 숨긴다.
그러나 양심상 그 딸의 생명 유지를 위하여 계속 입으로 음식을 잘게 부수어 몰래 공급하지만 이는 왜곡된 사실이기에 점점 문제가 커지게 된다. 아이마저도 이제 음식을 중단하게 되어 심신이 점점 미약해져 죽어가니 이게 무슨 종교적 미신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이 간호사 립 라이트는 그녀의 지혜와 용기로 그 소녀를 종교적 망상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 소녀에게 "너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이름인 낸으로 새롭게 살라" 고 한다. 그녀는 죽어가는 그 소녀에게 죄에 대한 치유와 희망을 주며 그 가족들이 저녁미사를 드리러 간 사이에 죽어가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풀숲에 누이고 부드러운 음식을 공급함으로 낸은 잠시 죽는 것같았다가 다시 살아난다. 그 후 소녀 낸은 그 간호사의 남자친구가 된 영국에서 온 기자와 함께 새로운 세계로 도피한다.
그 간호사 립 하이트는 그길로 그 소녀가 이제껏 머물렀던 집에 가서 램프 불로 온 집을 다 불태우고 자신도 여러 화상을 입은 채 쓰러지고 기절한다. 결국 그녀는 그 위원회에 가서 그 소녀는 죽었다고 증언하고 그 성직자 위원회는 죽었다는 증거도 없이, 그 소녀가 죽었다고 공포한다. 어쩌면 그 위원회와 그 어머니는 실상 그 귀한 소녀의 생명을 자기들의 종교적 이익및 망상과 더불어 바꾸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간호사는 자신의 몸을 치료한 후 그 지역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 즉 둘이 미리 약속한 그 지역으로 가서 새롭게 살고 있는 낸을 만나고 영국기자와 그녀는 부부로 또 낸은 그 딸로 맛난 파티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자유롭고 새로운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이 영화는 줄거리도 담백하고 배경도 아주 단순하게 1800년대의 시대배경과 환경 즉 그들이 머문 마을과 넓은 들판에 홀로 있는 집, 그리고 그들이 걸었던 아름다운 산 길과 정갈한 숲을 보여주는데 그러나 아주 밀도있게 "신의 기적과 인간의 행위" 를 바로 보는 관점을, 우리를 집중하게 하는 이야기로 꾸려간다. 그리고 이를 보고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의도치 않은 종교적 욕심과 신앙의 왜곡에 의해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한다.
과연 우리는 오늘 올바른 구원의 신앙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나? 또 나는 어떤 종교적 지도자로 서 있나? 나는 좋은 영적 지도자 인가? 종교적 이익과 기적을 위해서 아이의 생명과 미래의 꿈을 해하는 자인가? 아니면 참된 종교적 진실을 얻고 모두가 그 유익을 누리기 위해 힘써 몸부림치는 자인가? 여하튼, 영화의 결말에 그 소녀가 살아난 게 다행이며 그녀가 그 모든 시대망상과 굴레에서 벗어나 새 세계에서 새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한 생명에 대한 소망과 그 경외감을 다시 생각하게 하여 감사하다. 한 생명과 그 진실은 소중하다!
당신은 이 영화 -The wonder-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