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 1-2절. 바울과 디모데가 인사함. 요약설교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호칭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1. 바울은 원래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12사도 중 하나가 아니었고, 철저한 바리새인으로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잡아가두고, 스데반을 죽이며,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쫓아가서 잡아 가두려고 한 유명한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회개하고 사도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면, 기독교의 원수였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말마암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2. 이처럼,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것은 반드시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만 직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들인데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역장 직분을 맡았든지, 예배인도자의 직분을 맡았든지, 주일학교 교사나 찬양대원이 되었든지, 혹은 남전도회나 여전도회 임원을 맡았든지, 교회의 무슨 직분을 맡았든지, 이 모든 직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3. 그래야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다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 직분을 목사나 전도사나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부장 집사님이나 회장님이니 교인들이 준 것으로만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임을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직분을 맡아놓고서도, 교회 정규 집회에 결석하는 것도 예사, 구역예배나 주일학교나 찬양대를 빼먹는 것도 예사, 십일조 안 하는 것도 예사로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직분은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나, 각 기관의 책임자들이 추천해서 담임목사님이 주신 것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보든지 안 보든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고, 또한 사람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긍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사도 된 바울
1. ‘사도’란 그리스도께서 특별 메시지를 주어 보낸 사람을 말하는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같은 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이지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주님이 세상에 증인으로 보내신 일종의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에 나아와서 예배 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면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 파송자들이 됩니다.
즉, 우리들도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갈 때는 각자가 직장과 사업장과 학교와 가정으로 파송을 받는 일종의 선교사들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주님이 세상으로 내어 보내신 전도자요 일종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터에서 일할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서 이 일터로 파송하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직장’을 calling, vocation, 독일어로 Beruf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그 직장으로 우리를 불러서 소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형제 디모데는
1. 사실 디모데는 바울이 전도해서 믿게 되었고, 아들과 같은 제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공적인 서신에서 디모데를 ‘형제’라고 호칭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허물없는 사람들끼리 조심해야 합니다.
사사로운 자리에서는 너, 나 할 수 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아무개 집사님, 아무개 권사님, 아무개 장로님’이라고 깍듯이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옛날 주일학교 때부터 자기가 가르쳤다고 해서, 공적인 자리에서나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어이 김 집사!’, ‘어이 정 장로!’라고 함부로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속으로 불평을 합니다. “내가 자기 집사인가?”
그러므로,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후배를 존중히 여기면, 선배를 더욱 존경합니다.
2.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형제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송했겠습니까만, 그 마음속에는 흐뭇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할 때, 바로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1. 고린도는 당시에 도덕적으로 문란하기로 지중해에서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소돔 고모라와 같이 타락한 이 도시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많았고,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가 아무리 문제가 많은 교회일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 어떤 분은 교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허물이 많은 사람만 보고서, 교회를 부정하고 아예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아무리 허물이 많은 교회라도 교회는 역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함부로 교회와 직분자들을 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단히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3. 아무리 허물이 많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그 성도는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는 없고, 완전한 성도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야 완전해집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의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4절에는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1. 아가야에는 고린도 교회, 아덴 교회, 겐그레아 교회 등 여러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만을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니라,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고린도후서라는 성경은 어떤 특정인에게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2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
1.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긍지를 심어줍니다.
돈이 좀 없다고 해서 부끄러워 말고, 지위가 좀 낮다고 해서 비굴하게 생각지 맙시다.
어떤 분은 사회적 지위도 있고, 지식도 많고, 부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다 떨어진 군복 바지에다가 다 떨어진 군화짝을 신고 다녀도, 전혀 그 표정에 부끄러움이나 비굴한 모습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밍크코트에 요란한 보석들을 차고 다녀도, 자기가 한글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늘 불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2. 이처럼,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어떤 성도도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지 맙시다.
즉, 세상에서 부자라고 교회에서 좋은 자리에 앉으라고 해서도 안 되고,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이라고 교회에서 뒷자리에 앉으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자유인이나 종이나, 헬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은 세상적인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은 세상적인 차별이 없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런 차별은 눈에 보이는 교회의 직분으로 신분을 차별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즉,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는 세상적인 차별도 소용없고, 오직 정말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가장 큰 차별인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1.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만으로 너무 우쭐대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2.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죄와 죽음과 마귀의 종이었으나, 예수님께서 보혈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은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는 포악한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옛날에 노예 시장에 끌려 나온 노예들은 새로운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 앞에서는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노예들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 샀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사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은혜와 평강
1. 은혜와 평강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것이고, 주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비록 고린도 교인들이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그들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적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인가,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의 종들인가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