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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9-28절. 세례 요한의 증언.
1. 요즘 우리나라는 선거철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되겠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특정한 인물들을 사용하여, 큰일들을 행하십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세례 요한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누가복음 1장에는 세례 요한의 가정과 출생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이라는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님은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이들은 매우 나이가 많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천사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을 테니까,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사가랴는 자신의 몸이 너무 늙어서 자식 낳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사가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대로 아기를 잉태하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아들 이름을 천사의 말대로 ‘요한’이라고 써주었을 때, 벙어리 된 입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요한이 태어날 때, 기적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이 세례 요한의 장래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3. 당시에, 요한은 아버지가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가만있어도, 세상 권력과 부요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노령에 나은 독자이므로, 인간적으로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평안하게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4. 이런 좋은 배경을 가진 요한이 모세처럼 가정을 떠나, 광야로 나가서 살았습니다.
권력과 부요가 보장된 가문을 버리고, 사람이 살지 않고 짐승이 우글거리는 광야로 나가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요한이 노년에 낳은 독자이므로, 부유한 가정에서 평안히 커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례 요한은 안락한 가정과 부모를 버리고, 일부러 광야로 나갔습니다.
5. 이것은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로 죄악의 낙 누리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한 것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면, 마음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마음에 세상 것, 세상 명예와 부귀와 향락이 가득하든지, 세상 염려나 근심 걱정이 가득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마음의 그릇이 비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잘 아시는 대로, 마태복음 5장 3절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는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은혜를 얻기 위해서, 세상 것을 모두 마음에서 내려놓고,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6. 요한은 광야에 나가서,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옷은 짐승 가죽을 입고 살았습니다.
완전히 야인(야생 인간) 생활을 하면서, 악하고 죄 많은 문화 인간들에게서 떠난 생활을 했습니다.
(1) 문화 인간들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짐승보다 더 악하게 싸우고, 짐승보다 더 더러운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2) 그러나, 세례 요한은 짐승이 우글거리는 광야에서 홀로 살면서도, 오직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았고, 거룩한 생활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자신의 욕심을 다 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습니다.
(3) 온실 속에서 사는 나약한 문화 인간이 아니라, 광야에서도 성령 충만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강건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늘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습니다.
(4)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하고 훈련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아무 욕심 없이 순종하고, 생명도 하나님께 맡기고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교회의 일꾼이 되려면, 역경 속에서 신앙으로 사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이기심으로써, 연단을 받고, 훌륭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 이처럼, 세례 요한이 좋은 가정과 세상을 버리고,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과 함께 생활한 것을 중심으로, 오늘 설교 제목을 <광야로 나간 요한>이라고 정했습니다.
8. 이제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의 훈련을 다 마치고, 문화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요한은 성령 충만하여, 죄악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쳤습니다.
권력욕을 따라서 싸우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부도덕한 생활을 하는 남자들과, 돈 욕심과 이기심으로 사는 여자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실 것이니, 회개하고 “메시아를 영접하라”고 외쳤습니다.
9. 그러자, 수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에게 가서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10. 그러나 당시 세상 권력을 쥐고 있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세상 권력을 쥐고 있던 권력자들은 세례 요한을 ‘백성들이 권력층에 대항하도록 선동하는 반역자’로 보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 소리를 듣고, 막상 회개해야 할 사람은 백성을 압제하고 죄악과 욕심으로 가득 찬 권력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층인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세례 요한에게 대들면서, 그를 정죄하고, 투옥시키려고 했습니다.
11. 이처럼, 세례 요한이 많은 백성들에게 세례를 줄 때, 예루살렘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찾아왔습니다.
19절.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서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요한의 증언이 이것이라. (This is the testimony of John, when the Jews sent to him priests and Levites from Jerusalem to ask him, "Who are you?")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Καὶ αὕτη ἐστὶν ἡ μαρτυρία τοῦ Ἰωάνου,
and this is the testimony of John,
직역하면 ‘이것이 요한의 증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στὶν)는 현재형입니다(is).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ὅτε ἀπέστειλαν πρὸς αὐτὸν οἱ Ἰουδαῖοι ἐξ Ἱεροσολύμων, ἱερεῖς καὶ Λευείτας
when sent to him the Jews from Jerusalem, priests and Levites
‘보내어’(ἀπέστειλαν)는 부정과거러서(sent) 확실이 보낸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ἵνα ἐρωτήσωσιν αὐτόν, Σὺ τίς εἶ;
that they might ask him, You who are?
직역하면 “그들이 그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는 뜻입니다.
‘물었을’(ἐρωτήσωσιν)은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they might ask) 확실히 물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 때, 세례 요한에게 찾아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19절에, 이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제사를 관장하거나,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들로서, 당시 유대 나라의 권력과 부를 한 손에 쥔 실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제사 업무를 수행하고, 제사에 적격인 짐승을 팔게 해주고, 일반 화페를 성전에 바칠 돈을 바꾸어주면서, 막대한 이익금을 챙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수많은 백성들에게 인기를 모으자,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위협을 느꼈던 것입니다.
2. 당시에 백성들은 요한의 행적이 마치 모세와 같았기 때문에, 요한을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가 아닌가 심중에 의논하니라.
3. 오늘 성경 말씀은, 두 가지 문제의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문제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이냐는 질문과 답변입니다.
둘째 문제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왜 세례를 주느냐는 질문과 답변입니다.
첫째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찾아와서, <네가 그리스도냐?>고 질문하고 요한이 대답한 내용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물음과 세례 요한의 답변이 20-23절에 나와 있습니다.
(1) 먼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누구인가?>라고 질문했습니다.
19절.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20절.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가 고백하고 숨기지 않았는데,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고백했다.(And he confessed and did not deny, but confessed, "I am not the Christ.")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καὶ ὡμολόγησεν καὶ οὐκ ἠρνήσατο,
and he confessed and not denied
직역하면 ‘그가 고백하고 부인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두 동사(ὡμολόγησεν, ἠρνήσατο) 모두 부정과거로서(confessed, denied) 확실하게 고백하고, 확실하게 숨기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καὶ ὡμολόγησεν ὅτι, Ἐγὼ οὐκ εἰμὶ ὁ Χριστός.
and he confessed that, I not I am the Christ
직역하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그가 고백했다”는 뜻입니다.
‘고백했다’(ὡμολόγησεν)는 부정거로서(confessed) 확실하게 고백한 것을 가리키고, ‘아니다’의 동사(εἰμὶ)는 현재형으로서(am)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2) 그러자, 다시 <네가 엘리야냐?>고 물었습니다.
답변은 <아니라>였습니다.
21절.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들이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네가 그 선지자냐?” 그러자 그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They asked him, "What then? Are you Elijah?" And he said, "I am not." "Are you the Prophet?" And he answered, "No.")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καὶ ἠρώτησαν αὐτόν, Τί οὖν;
and they asked him, What then?
직역하면 “그러자 그들이 ‘그러면 무엇이냐?’고 물었다”는 뜻입니다.
‘묻되’(ἠρώτ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asked) 분명하게 물은 것을 가리킵니다.
네가 엘리야냐?
σὺ Ἡλείας εἶ;
you Elijah you are?
‘네가’(σὺ,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동사(εἶ, you are)는 현재형입니다.
이르되 나는 아니라.
καὶ λέγει Οὐκ εἰμί.
and he says, not I am
직역하면 ‘그가 이르되, 나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가 이르되’(λέγει)와 뒤의 동사(εἰμί)도 현재형입니다.( he says, I am)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Ὁ προφήτης εἶ σύ;
the Prophet you are you?
‘또 묻되’는 번역상 첨가한 것이고, 직역하면 ‘내가 그 선지자냐’란 뜻입니다.
동사(εἶ)는 현재형이고( you are), ‘네가’(σύ,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대답하되 아니라
καὶ ἀπεκρίθη, Οὔ.
and he was answered, No
‘대답하되’(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answered) 확실하게 대답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1. 말라기 4장 5절에는,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엘리야를 보내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열왕기하 2장에서, 산채로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승천한 엘리야가 문자 그대로 다시 세상에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시 오겠다고 한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즉,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는 것은, 세례 요한이 불타는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메시아를 영접하라>고 외친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나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은, 제사장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문자적인 엘리야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3) 그러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또 다시 <네가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냐?>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답변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선지자>라는 것은,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곧 메시아를 하나님이 보내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그 선지자냐?”고 묻는 것은, “네가 그리스도냐?”고 묻는 것과 같은 질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군중들의 심리가 매우 고조되어 있었으므로, 메시아로 자처할 만한데, 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시에 역사 기록인 사도행전 5장에는, 드다와 갈릴리 유다가 자신을 메시아로 자처했다가, 로마 군인들에게 죽임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이 진실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4) 그러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러면, 도대체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답변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였습니다.
22절.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자 그들이 ‘너는 누구냐? 우리를 보낸 자들에게 우리가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그에게 말했다. (Then they said to him, "Who are you, so that we may give an answer to those who sent us? What do you say about yourself?")
또 말하되 누구냐
εἶπαν οὖν αὐτῷ, Τίς εἶ;
they said therefore to him, Who are you?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누구냐?’고 했다”는 뜻입니다.
‘말하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입로서(they said)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뒤의 동사(εἶ)는 현재형입니다(are you)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ἵνα ἀπόκρισιν δῶμεν τοῖς πέμψασιν ἡμᾶς·
that answer we might give to those having sent us
직역하면 “우리를 보낸 자들에게 대답을 우리가 주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게 하라’(δῶμε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we might give) 확실하게 주게 하라는 뜻이고, ‘보낸’(πέμψασιν)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nt) 과거에 분명하게 보낸 사실을 가리킵니다.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τί λέγεις περὶ σεαυτοῦ;
what say you about yourself?
직역하면 ‘너는 너 자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느냐?’란 뜻입니다.
‘말하느냐’(λέγεις)는 현재형으로서(say you) 현재 말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23절.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English Standard Version: “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로다”고 그가 말했다. (He said,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wilderness,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as the prophet Isaiah said.”)
이르되 나는--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ἔφη, Ἐγὼ φωνὴ βοῶντος ἐν τῇ ἐρήμῳ
He was saying, I voice of crying in the wilderness
‘이르되’(ἔφη)는 미완료과거(was saying)로서 ‘그가 계속해서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외치는’(βοῶντος)은 현재분사로서(crying) 현재 외칙로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Εὐθύνατε τὴν ὁδὸν Κυρίου,
Make straight the way of Lord,
‘곧게 하라’(Εὐθύνα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 ‘확실하고 단호하게 곧게 하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καθὼς εἶπεν Ἡσαΐας ὁ προφήτης.
as said Isaiah the prophet
직역하면 ‘선지자 이사야가 말했던 것처럼’입니다.
‘말했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과거에 확실히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0장 3-5절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이 말씀은 죄를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자신을 <소리>라고 표현한 것은, 실체는 왕 되신 예수님이시고, 자신은 소리처럼 외치고 사라져버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과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고서는, 소리처럼 헤롯 안디바의 손에 목 베임을 받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세례 요한처럼, 광야에서 훈련받고, 오직 주님만을 증언하다가 소리처럼 사라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을 통해서 주님이 높임을 받고, 성도님들은 주님께로부터 칭찬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했습니다.
25절. 또 물어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들이 그에게 묻기를 “그러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고 있느냐”고 말했다. (They asked him, and said to him, "Why then are you baptizing, if you are not the Christ, nor Elijah, nor the Prophet?")
또 물어 가로되,
καὶ ἠρώτησαν αὐτὸν καὶ εἶπαν αὐτῷ,
and they asked him, and he said to him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그에게 물었고 그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물었고’(ἠρώτησαν)와 ‘말했다’(εἶπα)는 둘 다 부정과거로서(asked, said) 확실하게 물었고, 확실하게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Τί οὖν βαπτίζεις
Why then you baptize,
‘세례를 주느냐’(βαπτίζεις)는 현재형으로서(baptize) 현재 세례를 주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εἰ σὺ οὐκ εἶ ὁ Χριστὸς, οὐδὲ Ἡλείας, οὐδὲ ὁ προφήτης;
if you not you are the Christ, nor Elijah, nor the Prophet?"
직역하면 ‘만일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아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니라면’이란 뜻입니다.
동사(εἶ)는 현재형이고(you are), ‘네가’(σὺ“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1. 원래 <세례>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깨끗이 씻음 받았다는 표입니다.
구약시대에 <결례>를 행한 것이 세례로 변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통해서 죄 씻음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이러한 성전 제사 행위를 통하지 않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 용서를 받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2. 문제의 핵심은,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해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돈벌이가 될 것인데, 세례 요한이 그냥 마음으로 회개하고, 공짜로 물세례를 받으면, 죄 용서를 받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처럼, 돈벌이 문제와 직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세례 요한의 세례 문제를 시비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3. 이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26-27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26절.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물에서 세례를 주고 있지만,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으로서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다”고 말했다. (John answered them saying, "I baptize in water, but among you stands One whom you do not know. It is He who comes after me, the thong of whose sandal I am not worthy to untie.").
요한이 대답하되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ὁ Ἰωάνης λέγων
was answered them the John saying
직역하면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대답하여’(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nswered) 확실하게 말하게 된 것을 가리키고, ‘말하기를’(λέγων)은 현재분사로서(saying) 현재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Ἐγὼ βαπτίζω ἐν ὕδατι·
I I baptize in water
‘세례를 주거니와’(βαπτίζω)는 현재형으로서 ‘나는 지금 물로 세례를 주고 있지만’이란 뜻입니다.
‘나는’(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μέσος ὑμῶν στήκει ὃν ὑμεῖς οὐκ οἴδατε,
but among you has stood (One) whom you not you have known
직역하면 ‘그러나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이가 서 있다’는 뜻입니다.
‘너희’(ὑμεῖς)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섰으니’(στήκει)와 ‘알지’(οἴδατε)는 둘 다 현재완료형(has stood, you have known) 이미 서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아지 알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ὁ ὀπίσω μου ἐρχόμενος,
the (One) after me coming
‘오시는’(ἐρχόμενος)은 현재분사로서(coming) 오고 계시는 것을 갈기킵니다.
감당치 못하겠노라
οὗ οὐκ εἰμὶ ἐγὼ ἄξιος
of whom not I am I worthy
직역하면 ‘나는 그에게 합당치 못하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εἰμὶ)는 현재형이고(I am),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ἵνα λύσω αὐτοῦ τὸν ἱμάντα τοῦ ὑποδήματος.
that I should untie of him the strap of the sandal
‘풀기도’(λύσω)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I should untie) 확실히 푸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28절.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NASB: These things took place in Bethany beyond the Jordan, where John was baptizing
이 일은--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Ταῦτα ἐν Βηθανίᾳ ἐγένετο πέραν τοῦ Ἰορδάνου,
These things in Bethany took place across the Jordan
직역하면 ‘이 일들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일어났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took place) 과거에 확실히 일어난 사실을 가리킵니다.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ὅπου ἦν ὁ Ἰωάνης βαπτίζων
where was being the John baptizing
직역하면 ‘그것은 요한이 세레 베풀던 곳이었다’는 뜻입니다.
‘세례 베풀던’(βαπτίζων)는 현재분사로서(baptizing) 현재 세례를 베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었다’는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과거부터 계속 그 장소인 것을 가리킵니다.
이 ‘베다니’는 요단강 건너편 즉 동편의 베다니(Bethany, beyond Jordan)를 가리키고,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 동쪽 감란산 기슭 마을(Bethany, the home of Lazarus, Martha, and Mary, near Jerusalem)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1. 세례 요한의 대답을 쉽게 풀이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는 당신들과 돈 문제로 시비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소. 내가 물로 세례 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이요. 당신들은 세상 권력과 돈에 혈안이 되어 있지 말고, 당신들도 회개하고 죄 씻음을 받고, 메시아를 영접하시오.>
2.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공격을 당했던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미미한 존재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발 끈을 푼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센들 같은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걸어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발에 먼지와 때와 고린내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집에 들어오면, 종들이 얼른 대야에 물을 떠다가, 주인의 신발을 벗기고,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그래서, <신발 끈을 푼다>는 것은 ‘종노릇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사장들이 시기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 푸는 종 노릇도 못 할 정도로 예수님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2. 이처럼, 세례 요한은 세상 욕심을 다 버리고, 예수님만을 높이는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것은 좋은 가정환경을 떠나, 광야에서 오랫동안 하나님만을 높이고, 섬기는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님들도 세상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높이며, 담대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 대신에 어떤 것도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일 뿐, 어떤 다른 것도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우상 숭배가 됩니다.
우상 숭배는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길 때, 참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우상이 되거나, 권력자가 우상이 되거나, 혹은 자식이나 남편이나, 심지어 텔레비전이 우상이 되지는 않았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 이처럼, 세례 요한은 영적으로 밝히 눈을 떴고, 육신적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예수님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세례 요한의 위대한 점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경배하고, 자신을 종보다도 더 낮은 존재로 겸손히 낮춘 점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높이고, 자신을 종보다도 더 못한 존재로 낮춘 세례 요한을 예수님은 <인간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4. 요즘 선거철에 입후보하시는 분들도 세례 요한 같았으면 좋겠어요.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의 종노릇하기에도 부족한 존재라고 고백하는 그런 후보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세례 요한을 본받아, 세상 욕심을 버리고, 주님만을 높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세례 요한을 본받아서, 세상 육신의 욕심에 어두워지지 말고, 영적 눈을 밝히 떠서, 예수님을 높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큰 자라고 칭찬을 받으시고,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