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념으로 왕생하다
146) 광동 법각 스님, 갑작스러운 중병에도 조념으로 왕생하다
선도대사 『왕생예찬(往生禮讚)』에 이르기를, “미타세존께서는 본래 깊고 크신 서원을 세우시어 광명명호로써 시방중생을 섭취하고 교화하신다. 다만 신심을 내어 왕생을 구하며 염불하기만 하면, 위로는 평생을 다하고 아래로는 열 번이나 한 번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처님의 원력으로 쉽게 왕생할 수 있다.”
『인광법사문초』에 이르기를, “아미타불께서는 지난 겁에 마흔여덟 가지 서원을 세워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셨다. 그 가운데 한 서원에 이르기를, ‘만일 어떤 중생이 내 이름을 듣고 내 나라에 왕생하기를 구하며, 내지 열 번이라도 염불하였는데도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이루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미타불께서는 중생을 제도하시기를 맹세하셨지만, 중생이 스스로 부처님의 영접을 구하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사바세계를 벗어나기를 굳게 서원하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자비로운 섭취를 받지 않는 이가 없다.”
광동성(廣東省) 인화현(仁化縣) 단하산(丹霞山) 금석암사(錦石巖寺)의 비구니 법각 스님(釋法覺)의 왕생은 다시 한 번 “아미타불의 근본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석법각 비구니는 호남성 악양(嶽陽) 사람이다. 속성은 석(石)씨이고, 이름은 원지(元枝)이며, 1971년 음력 6월 3일에 태어났다. 1996년 견성(見成) 비구니 화상의 문하에서 삭발 출가하였고, 같은 해 9월 25일 광동성 운문사(雲門寺)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곧바로 오대산 보수사(普壽寺)로 가서 수행하며 공부하였다. 무상(無常)의 이치를 깊이 절감하고 생사해탈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였던 스님은, 2000년부터 오로지 정토법문을 닦으며 극락왕생을 구하기로 굳게 뜻을 세웠다.
법각 비구니는 생전에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행실이 단정하였으며, 성품이 온화하여 늘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돕고 대중을 위로하였으므로, 스님이 머무는 곳마다 대중은 모두 기뻐하였다. 또한 몸이 허약하고 병이 많았던 스님은 자신의 병든 몸을 통해 무상과 생사의 도리를 몸소 보여 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깨워 주었다.
“사람의 목숨은 무상하고 생사는 매우 빠르게 다가오니, 결코 소홀히 하거나 게으르게 지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아야 합니다.”
2004년 음력 12월 21일, 법각 비구니는 멀리 호남성으로 가서 한 노거사를 위해 조념해 드린 뒤, 절로 돌아오는 길에 심장병이 갑자기 발작하여 돌연 사망하였다.
23일, 법각 비구니의 법체를 금석암사(錦石巖寺)로 모셔 왔는데, 얼굴에는 차마 보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하였고, 뺨과 귀, 입술은 모두 검푸른 빛을 띠었으며 온몸은 이미 굳어 있었다. 이는 병이 발작하여 임종에 이르렀을 때, 곁에서 슬기롭게 돌보고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 세속의 방식대로 황급히 응급처치를 하였고, 게다가 장거리 운반까지 겹쳐 망자로 하여금 큰 고통을 겪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참으로 사람을 안타깝게 할 뿐 아니라 깊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대중은 곧바로 법각 비구니를 위해 지성 간절하게 염불하였으며, 그 밖의 여러 선행도 함께 닦아 회향하였다. 서로 번갈아 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염불을 이어 갔으며, 애절하고 우렁찬 염불 소리는 사방에 가득 울려 퍼졌다.
법각 비구니는 살아생전 왕생을 발원하는 마음이 굳건하였고, 아미타불의 대비 본원이 허망하지 않아, 원과 원이 서로 감응하고 광명이 내려 비추며, 광명과 명호가 하나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광명에 닿아 부드러워져 얼굴은 점차 편안하게 펴지기 시작하였다.
26일에 이르러서는 얼굴의 검푸른 기운이 사라지고 불그스름하게 바뀌었으며, 얼굴은 풍만하고 윤기가 돌았고 광채를 띠었으며, 정수리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고 표정은 더없이 기쁘고 평온하였다.
이를 본 대중은 모두 감탄하였다.
“법각 스님께서는 생전보다도 더욱 장엄하십니다!”
여드레가 지난 28일에 다비(荼毘)를 거행하였다. 법체는 청정하였고 온몸은 부드러웠으며, 가부좌가 자유자재하였다. 29일에는 흰색, 녹색, 붉은색, 노란색 등 여러 빛깔의 사리화(舍利花)를 수습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비취옥과 같은 녹색 사리화가 매우 많았다. 대중 스님들이 기쁜 마음으로 사리화를 수습하여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찬란하고 눈부신 상서로운 광명이 서쪽 하늘로부터 곧장 비추어 내렸다. 이어 그 상서로운 광명은 여러 차례 대중 앞에 나타났는데, 한 번 나타날 때마다 이전보다 더욱 수승하였으며, 매번 광명의 빛깔도 서로 달라 붉은빛, 흰빛, 노란빛, 푸른빛 등 여러 색의 광명이 서로 어우러져 나타났다.
원래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던 하늘은 그 상서로운 광명이 비추자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며 상서롭고 평화로운 기운으로 가득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대중은 모두 아미타불의 넓고 크신 은혜와 법각 비구니가 큰 원을 품고 서방극락으로 왕생한 일을 찬탄하였다.
이러한 희유하고 상서로운 광명의 모습은 모두 하나하나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관무량수경』에 이르기를,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염불하는 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아니한다.”라고 하였다. 법각 비구니는 조념 기간과 다비 기간, 그리고 사십구재 기간에도 여러 차례 서상을 나타내어, 확실히 서방극락에 왕생하여 성인의 반열에 들었음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24일 밤, 조념으로 몹시 지쳐 잠시 깜빡 졸던 어린 신도 아방(阿芳)은 문득 법각 스님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방이 묻기를,
“법각 스님, 왜 그렇게 환하게 웃고 계십니까?”
법각 스님이 대답하였다.
“아방아, 나는 이미 왕생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방 안에는 그윽한 향기가 가득하였다.
또 대중이 같은 꿈을 꾸었는데, 법각 스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일어나서는 대중과 함께 한목소리로 염불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는 참으로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
또 어떤 스님은 꿈에서, 초록빛이 뚝뚝 떨어질 듯하고 대나무가 줄지어 반듯하게 늘어선, 더없이 맑고 고아한 자죽림(紫竹林) 속에서 법각 스님이 대비관세음보살의 뒤를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그 밖에도 여러 서상이 있었으나,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다.
게송으로 말하기를:
대중은 법각 비구니께서
대중을 위해 몸소 희유한 본보기를 보이셨음을 함께 느꼈도다.
첫째, 인생은 무상하고 괴로우니
병이 오고 죽음이 닥침은 미리 알 수 없음을 보였고,
둘째, 임종에는 오직 염불뿐이니
범부의 감정에 따라 마음을 어지럽히면 그르치는 일이 많음을 보였으며,
셋째, 염불은 참으로 불가사의하여
이고득락하여 서상을 나타냄을 보였고,
넷째, 아미타불의 원력이 강력하여
범부도 그 원력을 타고 서방극락에 왕생함을 보였도다.
널리 보고 듣는 이 모두 함께 수희하며
같은 원과 같은 행으로 보리에 이르기를 발원하노라.
법각 비구니를 위하여 기원하노니,
상품 연화대에 올라 속히 무생법인을 증득하시고,
다시 원력을 타고 오셔서 널리 유정중생을 제도하소서.
곧 게송으로 말하기를:
무상을 설하고 무상을 보이시며
왕생을 발원하여 마침내 왕생을 이루셨네.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염불하는 사람을 섭취하여 버리지 아니하네.
나무아미타불!
(2005년 2월 14일, 광동성 인화현 단하산 금석암사 비구니 대중)
주: 금석암사에는 「법각 비구니 왕생기실(往生記實)」 VCD가 제작되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광동 금석암사의 법각 비구니는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임종을 맞았으나, 대중의 간절한 조념염불과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여러 왕생 서상을 나타내며 서방극락에 왕생하였음을 증명하였다.
찬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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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한 왕생사례 찬탄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원생심이 깊고 조념까지 다니시던 스님이시니 21일 심장병으로 사망 당시 바로 왕생하셨을텐데 하루가 지난 23일에 법체가 그리 변했다는 건 대중들에게 무상을 보이기위한 방편적 서상으로 봐야할지 정말 응급처치를 잘못해서 임명종 사이의 고통때문인지 의문이 드는 사례라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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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연우님 말씀에 공감하며 대단히 궁금합니다
염불행자는 어떠한 조건속에서 임종해도 부처님의 접인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더구나 평소 수행이 철저하고 조념하고 오시는 길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맺이했는데
왜 부처님의 접인이 없었을까요??
이 스님은 그 당시 순수정토의 교리를 모르고 있을 때입니다.
임종시 상태로 추측해 보건대,
전수염불을 했다기 보다 잡행을 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이런 경우, 조념을 통해 왕생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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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傳 저도 이 점이 의문이 있었는데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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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傳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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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傳 답변 감사합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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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믿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극락왕생을 발원하면
극락에 왕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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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을 찬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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