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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Urumci to Turfan, two customs derived from one cultural archetype...
1/10 SEL/ICN
우루무치Ürümqi-Wulumuqi-오로목제烏魯木齊에 간다고 하면 누구나 일 때문에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일인가.
이걸 타고 서안西安-XIAN- 다시 URMQI 한시 반 비행기
내 아들아, 너는 어느 하늘에서 살다가 어느 땅에 사는 내 아들이 되었기에 그토록 사랑스러우냐. 누군가는 아들 이름을 부르면 가슴이 저려온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도현燾鉉이라는 이름만 떠올리면 가슴에 벅찬 환의가 온다.
떠나는 날 아침, 내 아들은 할머니처럼 오물오물 밥을 먹었다. “표정이 좋지 않네, 내 아들...” 라고 말하자 내 아들은 “밥이 딱딱해서 그래” 하고 대답한다. 아빠가 며칠 집을 비운다니 딱딱하다는 핑계로 서운한 맘을 숨긴다. 저렇게 예쁘니 어디 예쁘지 않은 구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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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일신라의 대외교류(서역과의 교류)|작성자 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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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네이버 역사카페-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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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당연구원
https://blog.naver.com/hahnsudang/220191106215
[출처] 2006.9.19-우루무치(천산천지)|작성자 어디로
주남이 담은 바깥세상 이야기
서역기행(돈황-우루무치) 7개의 글
https://blog.naver.com/yh39450/221585166835
사막속 신록 투르판 포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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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고성과 소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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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XIAN 공항에서 볼펜을 산다. 중국 돈 25위안짜리는 한화로 3750원짜리라 하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운데 10개 중에서 하나도 쓸 게 없다. 복무원은 의당 그러려니 하고 10개를 일일이 점검해보고 종이 위에 긁적거려 보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준다. 그러나 그 역시 몇 자 쓰지 못하고 막혀버리고 만다.
XIAN공항의 면세점에서 관음고사觀音故事라는 그림을 본다. 56원이다. 8400원이니까 좀 비싼 셈이다. 집필중인 고려불화高麗佛畵 책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기보다는 우루무치에서 사거나 다시 서안으로 돌아올 때 사도 좋을 것이다.
성도成都 서안-진시황릉-당대문화들-그 중에는 고구려 사신의 모습도 있다. 그 묘화描畵가 서안에 있었던가.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발이다. 다른 비행기로 옮겨준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복무원은 매우 친절하다. 창문 옆에 자리를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서안에서 본 China Northwest 항공기의 로고는 분명 비천飛天이었다. 빨간 비천-Flight- 비상...그런 연상이었을까. 봉덕사 종의 비천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요정같은 존재가 아니라 땅에 혹은 연대蓮臺에 무릎을 대고 꿇은 형태로 상형된다.
7시 10분이니까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 탑승이 시작된다. 그나마 비행기가 우루무치로 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안도하고 감사해야하는 건가 부다.
기내식 빵을 먹고 급체가 왔다. 그러나 기내에서는 약이 없다. 스튜어데스는 뜨거운 병을 배에 대고 담요를 덮으라 한다. 한잠 자고 나니까 좀 낳은 듯하지만 아주 낳은 것은 아니다.
중국인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불빛에 신문을 읽는다. 라 뚜르Georges de La Tour 그림의 한 장면 같다.
우루무치의 활주로 주변에 눈이 이곳의 기후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가루눈이 비천인양 비행기를 따라 비상한다.
마중 나오기로 한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환영객들이 들고 있는 피켓처럼 크게 스케치북에 명패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열하제熱夏提라고 써서 보여주니까 러샤티Rixat라고 읽는다. 그러나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전화를 향해 가자 운전사들이 둘 달라붙는다. 전화를 한다. 가이드는 차가 없어서 못 온단다. 대신 할리데이 인Holiday Inn까지 택시를 타고 오란다. 택시비가 얼마냐고 묻자 50위안 이상을 주지 말란다.
끝까지 달라붙은 운전기사가 택시로 안내한다. 50위안을 확인하고 택시를 탄다. 아줌마까지 함께 타고 간다. 좀 안심은 된다. 아줌마가
“한국사람 카레이스키 부자예요?”
하고 묻는다.
“아뇨, 난 부자가 아니예요. 그냥 고분군古墳群 둘러보러 온 거예요”
하고 대답한다.
할리데이 인에 도착한다. 50위안을 주자 남자가
“통행료 15위안은요” 한다.
내가 항의하려고 하자 여자가 웃으며 내리란다.
가이드Guide는 착하게 생겼다. 외모가 중요하기도 할 것이다. 우르무치의 택시기사와 호텔유객의 횡포는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다.
우르무치의 호텔
성탄쾌락聖誕快樂 신년쾌락新年快樂이라고 창문에 씌어있다. 포인세티아Poinsettia가 빨간 웨이트리스Waitress의 옷과 잘 어울린다.
러샤트에게 왜 이슬람은 불교의 신상을 파괴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종교의 신상과 눈이 마주치면 영혼이 훼손된다고 느낀다는데 사실인가.
아니다.
왜 신상을 파괴하는가
무식하기 때문이다.
바미안Bamyan 석굴을 파괴한 사람들 역시 무지한 사람들이다.
유사流砂가 어디냐고 물었다. 러샤트는 타클라마칸Taklimakan Desert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칭하이靑海는 바다가 아니다. 시장=city->supermarket
1/11 우루무치
9시반 어물쩡하게 식사를 마친다. 10시에는 박물관에 간다. 싸아한 눈길을 헤치고 간다. 싸아하다는 것은 깨끗한 공기 속에 공해 없는 하얀 눈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토요일과 일요일 박물관은 문을 열지 않는다.
고화古畵를 파는 곳에서는 상화와 인쇄본 위에 채색판화가 진열되어 있다. 가까이 가본다. 보나마나 미인도이다.
어떤 양반이 말했다. 혹시 중국인이 고려불화를 알고 있을까요? 나는 대답했다. 일본에서 첫 전시를 했고 한국에서 전시한 정도이니까 모른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중국 현지의 사정상 골동품상에서 발견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하구요. 혹시 고창고성高昌古城이나 교하고성交河古城 등에서 비단조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요.
우룸치urmqi-우루무치 서점에서 400 위안어치 책을 산다. 투르판吐魯番-Turfan, 신장Xinjiang Uygur-신강유오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新疆维吾尔自治区 그리고 불교-민간신앙 등이다. 한국에서는 4400 위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현지에서 6만원에 샀는데 한국에서 샀다면 11배를 곱해서 70만 원 정도는 들었을 것이다. 여비가 빠지는 거 아닌가.
수퍼마켓 앞에서 남루한 옷을 걸친 남자가 북을 두드린다. 호객이란다. 손님이 오시랍신다. 그런 풍각쟁이를 모시기보다는 입구에 늘어뜨린-거적보다 더 너저분한-지저분하고 흉물스런 방풍막 세탁이나 하시지 그랴.
여기는 거지가 많다. 어린 남매 거지-앵벌이-앵벌이 중에는 청승스레 노래를 부르는 엄마처럼 생긴 여자도 있다. 어디거나 불구가 상품이 된다. 포장하지 않고-포장하지 않을수록-결점이 많을수록 부가가치가 높다. 다리가 없이 뱀처럼 배를 깔고 다니는 거지는 손에 목장갑을 끼었다. 잔설이 지저분하게 녹은 길 위에 손을 짚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케밥Kebab장사-요리사-손님... 모두가 작품이다. 조리대-연통 그리고 각종 인종들... 우루무치에는 80%가 중국인이란다. 그런데 이렇게 이국적인 얼굴이 많다.
오픈 바자에서 점쟁이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카드 점쟁이 여자가 욕지꺼리를 뱉으며 엉겨 붙었다. 주위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I didn't take pictures" 뿐이었다. 가이드는 멀찌감치 앞서가다가 한참 후에 진정된 후에 나타난다.
“왜 저렇게 신경질이예요?”
”저 여자는 사기꾼이예요. 경찰에 노출될까봐 신경이 날카로워요“
나는 출국 전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가위눌린 꿈속에서 어떤 강시僵尸-산 송장같은 여자가 갈퀴 같은 두 손으로 나를 움켜쥐었던 꿈이었다. 설마 이런 상황을 예지하거나 고지告知한 것은 아닐 테지...
케밥Kebaab 요리하는 연기-야생동물-커다란 장작같은 생선-수박-파인애플... 그 속을 사람들이 누비고 다니다. 어느 나른한 겨울 오후, 어느 이름 없는 도시의 노천카페에 앉아 있으면 지구촌의 모든 인종이 뒤섞인 오늘의 도시에서 그 정체성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것을 포스트 모던Post Modern이라 한다던가. 카메라나 스케치북이 아니면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내가 그들을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한다. 중국에서 부자로 오인되어 살해되지 않기 위해 무채색의 싸구려 옷을 입은 몽골로이드Mongoloid의 얼굴 그들은 나를 중국인이거니 할 수도 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쬐끔씩 익힌 중국어가 제법 쓰인다. 짧은 관용어 중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말은 워 뿌 후이 슈어 중원, 니 후이 영유마이다. 난 중국어 못하니 영어로 하랴?.. 그런 말이다.
CD-돋보기-수성볼펜... 그리고 주머니칼을 산다. 어디서든 좌판을 만나면 사과를 사서 깎아 먹어야지. 손으로 두드려 만든 것 같은 주머니칼 하나에 3원을 달라는데 1원하고 잔돈 1원도 못되는 여러 장을 주니까 뿌하이드不害臊的bú hàisào de-부끄러운 줄 알아라...그러면서 가져가라고 하는 투가 웬 거지가 다 있어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무슨 잔돈이 그렇게도 많은지. 잘 자
1950년 중국이 신장을 접수했다. 가는 곳마다 공안公安이 있다. 무장한 공안도 있고 여자 공안도 있다. 제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위협적이다.
북경北京에는 여관 층마다 관리하는 여자가 있던데 여기는 전화를 하면 그때마다 오는 여자가 다르다. 하나 공통적인 것은 “교육받은 친절”과 미소가 같다는 것이다.
할리데이 인Holiday inn은 성수기 1000 위안, 비수기 650위안이다. 진신호텔Jinxin hotel은 하루 저녁에 160위안이다. 그것도 비수기 요금이다. 밤새 기차소리가 시끄러워 방을 옮겼다. 냄새...카펫 냄새도 덜하다.
편전지便箋紙를 꽂는 북 마크처럼 생긴 연필이 있다. 그것 참 그럴싸한 아이디어이다. 단 하나 중국제답게 조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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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를 떠난다. 투르판으로 간다. 어쩌면 우루무치에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여관에 부러진 카드 값 50위안을 변상하고 테입 하나 필름 하나를 못 찾았다. 어쩌면 점쟁이 여자가 엉겨 붙으면서 순간적으로 소매치기한 것이 아닐까. 그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우루무치에서 한국 항아리보다 약간 날씬한 독들이 쌓인 곳을 지난다. 장독-Tv에는 썰매지치는 아이들이 나온다. 우리 것이라는 것이 뭔가. 여기도 우리가 어릴 때 타던 것과 똑 같은 수제手製 썰매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스케이트, 큰 맘 먹고 샀던 스케이트를 타고 폼 잡다가 얕은 얼음에 빠졌다. 그때 허탈했던 웃음이 갑자기 떠오른다.
까오샹-고창고성은 싸아한 매운 공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워낙 땀이 나도록 껴입어서 추운 줄은 모르겠는데 손과 코는 먼저 추위를 느낀다. 높은 성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조망한다. 아마도 한국에서라면 높은 산에 올라야 이런 살인적인 추위가 느껴질려나 싶다.
수성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눈으로 비벼 그림을 완성한다. 손이 금방 얼어붙는다. 가이드는 가이드답지 않게 얇은 옷을 입고 장갑도 모자도 없다. 눈과 코만 내놓도록 된 빵모자를 빌려준다. 마치 테러리스트Terrorist같다. 그래도 추워 양지쪽에서 동동 발을 구른다.
가이드는 내가 대학강사며 비디오를 찍어도 풍경을 배경으로 내 해설을 찍는다는 것을 안다. 자기가 망을 볼 테니 눈치껏 비디오를 찍으라 한다. 사진촬영하다 걸리면 40만원 정도 벌금이 기다린다. 왜 사진을 못 찍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푼돈 때문이란다. 관광객 사이에 끼어 다니다가 적발하면 진드기 붙어 결국 10만 원정도 우려내곤 선심을 쓰듯이 풀어준단다. 그 진드기에 된통 물리고서 벌금을 문 전설적인 사나이가 있었단다. 나중에 들으니 내 대학원 후배라 했다.
-아빠, 안 춥다, 안 춥다 하면 안 추워?
-그래, 안 춥다 안 춥다 하면 안 추워져
아들은 고함을 지른다.
-안 춥다! 안 춥다!.....
이어 풀 죽은 소리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래도... 춥다.
위구르 가이드와 이야기해보니 우리와 많이 비슷하다. 몽골리안 선조-난이라는 이름의 빵-도푸=두부-팽이는 중국과 섞여 있겠지. 두탕dutan-호궁胡弓...위구르 악기
우리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관습이 있다 라고 혼잣말 비슷하게 뇌까린다. 위구르 가이드가 우리도 그래요 한다. 부엌에 남자가 들어가지 않고 요리를 하지 않는 것도 같다. 그럴 리가... 물어보니 자기네 조상은 830년경에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몽골리안이란다.
중국인이 예비군복을 입고 국수를 먹고 있다. 한국의 예비군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중국제다. 이 옷을 입고 어떻게 한국 예비군과 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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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 버스를 탄다. 한사람에 50위안, 택시는 600위안정도란다. 가이드와 버스를 탄다. 말이 통하지 않거나 버스의 운행관습을 몰라 어렵지 여행 자체야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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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고성에 간다. jiyohe지야허라고 읽는다. 기적처럼 그것은 거기에 마지막 붕괴를 거부하고 서있다. 눈마저 비켜간다. 거대한 협곡과 개울사이 2천 년 전에 사람이 살고 큰절과 작은 사원을 짓고 탑을 세웠다. 관공서도 있고 민가도 있었다. 계획도시...이렇게 건조한 사막에 그들은 폐허가 된 관광단지를 후손에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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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허용된다기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다. 비디오는 찍다 발각되면 3천 위안 벌금이란다. 숨어서 비디오를 찍는다. 간간히 눈에 띌만한 곳에서는 그림도 그린다. 밑에서 망원경으로 보면 아마 화가인줄 알겠다.
그러나 가슴이 옥죄이고 목이 탄다. 가이드는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단다. 그러나 가이드라고 어떻게 믿겠는가. 결국 돈 내야하는 것은 나니까... 관광객을 가장하고 적발하는데 돈 때문이란다. 걸리면 최소한 백 위안은 날아갈 판이다. 그러나 이 겨울에...숨어서 찍겠다는데 누가 말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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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은 분지에서 여름엔 40도를 웃돈다. 겨울에도 그래서 춥지 않다. 왜 한국에서 그렇게 춥다고 알려졌을까. 그것은 정상에 서보면 안다. 오직 정상에서만 매운 한기가 코끝을 파고 든다. 금방 손이 굳는다. 맑고 향기로운 공기가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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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피=제호우럭 떠껑이 나채=나피자 모머=꽃빵
난Naan은 난이다. 큰 난 작은 난도 없다. 딱딱해서 상하지도 않을 것이다. 차에 담그면 금방 먹기 좋게 풀어진다. 이런 지혜를 가진 종족이 누구인가...가이드는 인도-파키스탄-신장으로 전래되었다고 말해준다.
1/13 투르판의 지평선-여기가 고비사막Gobi Desert이란다.
1/13 해도 뜨기 전 베제클리크로 간다. 말이 해뜨기 전이지 9시 반 출발이다. 택시는 하루에 300위안을 달란다. 그럴 것이다. 지아허, 까오샹, 아스타나, 베제클리크... 비록 먼 거리는 아니지만 몇 번씩이나 오가는 길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1/13 베제클리크伯孜克里克Bezekllik 가는 길에 산사태가 났다. 비켜간다. 이 험준한 산에 누가 굴을 팠을까. 화염산火焰山이 아련하다. 겨울에는 화염산도 맥을 못 춘다. 열시가 넘었는데 베제클리크는 문도 열지 않았다. 아예 관리인도 없다. 아스타나Astana-까오샹을 거쳐 다시 간다.
1/13 베제클리크에는 다섯 개의 굴이 열려 있다. 눈치껏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할 때 왜 이렇게 오금이 저리고 입안이 타는지... 왜 비디오는 안 될까. 사실 유리로 만든 방호벽은 어중간해서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을 거리가 되지 않는다.
구경을 미루고 부지런히 기록한다. 스쳐 지나가는 비디오 화면 속에 부처상의 눈 파먹은 자국-톱자국-붕괴된 자국이 선연하다. 비디오-기가 막히게 테이프와 배터리 타이밍이 맞는다.
1/13 고창高昌古城가오샹-교하고성交河古城지아허를 찍은 후라 큰 감명은 없다. 흰개미 탑같은 구조물이 솟아 있다. 불탑이라 하여 그 앞에서 멘트Ananouncement를 넣어 촬영한다.
1/13 아스타나Astana-열려 있는 세 개의 고분만 촬영한다. 가이드가 바람막이를 잘 한다. 카메라를 적당히 숨기면서 요령껏 찍는다. 그러나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 가이드가 톱밥난로 앞에서 관리인들과 노닥거리거나 이 정도 추위도 여기서는 추위인가 부다.
1/13 아스타나 고분과 부장품은 고구려 벽화-고려불화-분묘부장품-무속화 등 한국의 문물과 너무 닮았다. 복희 여왜 그림은 어떻고... 서초백화와 동이東夷의 관계...
1/13 베제클리크는 다섯 개가 열려있다. 촬영은 분위기 기록용이다. 미술관에서 좋은 도록을 사야지. 그러나 비디오와 사진을 차분히 검토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으려니 싶다.
주변이 너무 아름답다. 해맑은 겨울 공기 속에 싸아한 향기가 느껴진다.
1/13 식당주인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는 우물쭈물 한다. 니혼고오 하나시 마쇼까にほんごを話しましょうか하니 반색을 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폼이 적당이 배운 일본어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어를 따로 배운 일이 없단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쑤시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될까.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니까 한국어도 일본어처럼 배우시죠 했다.
1/13 막고굴莫高窟Mògāo Caves근처서 1박 2일, 돈황敦煌Dunhuang에서 1박2일 도합 2박 3일이면 막고굴과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돈황은 사진과 비디오가 허용되지 않는다. 안내가 감시인이다. 문을 열고 닫으면서 연방 카메라를 들이대는지 확인한다. 글쎄 그렇게까지 비디오를 찍어야하는지 모르겠다.
1/13 위구르인 가이드는 노영魯英 필筆 아미타팔대보살도阿彌陀八大菩薩圖Amitãbha with Eight Bodhisattras를 보는 것 같다. 노영은 출신가계 및 생애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냥 1307년 이 그림을 남긴 고려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정서나 고려불화와는 이질적이다. 시꺼먼 눈섶...길쭉한 얼굴...
노영은 초빙받거나 귀화해서 눌러앉은 서역 위구르의 화승畵僧이거나 그 후손일 수 있을 것이다. 국지주의局地主義에 의하면 서역인이 그려도 이 땅에서 그리고 그 화적畵跡이 남아 있으면 고려불화라 한다.
1/13 중국에서 혼자 여행하려면 입은 대로 돈만 여유 있게 가져가면 될 것 같다. 중국에는 여관-병관宾馆마다 뜨거운 물-히터-냉방기들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 날 그 날 부지런히 빨래만 하면 된다. 단 상사를 모시고 가는 과장은 체류일자만큼의 양말과 팬티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상사 양말 빨아주고 번 돈으로 과장 마누라는 밍크코트 입고 뽐낸다.
책을 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제목은 김영재의 한국문화원류탐사1...아스타나에 깃든 피의 약속...아스타나의 고려불화와 조선민화 등
투르판은 지하박물관이라 부른다. 교하-고창-아스타나-베제클리크...이들은 모두 땅속에 있다. 그리고 이들은 택시로 하루 혹은 이틀이면 족하다. 반경 50km 이내에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고비사막을 지나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면 경주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보다 더 도발적인 것 같다.
우르무치와 투르판에서 산 책을 우체국에서 부친다. 비행기 편은 배편보다 배가 비싸도 10일 더 걸린다고 되어 있다. 배로는 12일에서 1달 걸린단다. 230위안이면 책 값에 비해 싼 편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서 서역에서도 오지에서 낑낑거리며 끌고 다닐 생각을 해보라.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필름과 테입을 챙기는 게 급선무이다.
1/13 가이드는 택시기사를 차에 남겨두고 호텔에서 돈을 주어 우루무치로 보내자 한다. 그러면서 360위안을 달란다. 처음 이야기와 다르다. 하긴 박물관 가는 일과 우체국 가는 일 밖에 없으니 일리는 있다. 그런데 왜 단둘이 있을 때 계산을 하려고 하지?
1/14 가이드를 보낸다. 내일 아침 겨우 버스표 타는 일만 남았으니 머물 이유도 없고 무섭게 빠져나가는 돈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이제 이번 여행의 절반 이상 목적을 달성했으니 혼자 음미하며 느긋이 다닐 여행도 필요하다. 저녁 안내까지 4일 800위안을 달러USDAmerican dollar-Měijīn로 준다. 가이드 계산은 840위안...내 계산은 850위안이다. 내 책에 그만큼 도움을 주었으니 그만큼은 해주어야지. 그 돈에는 가이드의 초상권과 이름값이 포함되어 있다.
USD로 계산하면 850人民幣:人民币RénmínbìRMB가 된다. 현지계산으로는 810RMB인 모양이다. 가이드가 거슬러 주었으니까. 100달러에 40RMB라면 엄청난 차액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렌민삐는 쓰이는 곳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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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서역-그 멀고도 가까운 곳 Western Regions, Far but intimate Home
From Dunhwang to Xian, transformed Buddhistic re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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