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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남소설가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남전南田
경남소설가협회 회원 임재도 소설가가
<경남문학> 2015 가을호 특집
<이 작품을 이곳에서 이렇게 썼다>란에
장편소설 <코리아타워>(상`권)
대한 집필 경과를 발표했다.
<이 작품을 이곳에서 이렇게 썼다>
<코리아타워> (상`하권)
이 소설의 시놉시스(synopsis)
임재도
신라시대 호국의 상징. 황룡사9층탑을 현대적 조형으로 복원하여 서울의 관문에 「코리아타워」라고 이름 붙인 대한민국의 상징landmark 건물을 짓고자 했던 건축공학박사 유경준. 건설사와 시공계약서를 주고받은 그날 밤,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을 그저 우연한 사고로 여기고 슬퍼하고 있던 딸 휘진은 익명의 사람이 보낸 의문의 메일을 통하여 아버지가 모종의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사에 착수한다. 드러나는 진실 속에 판사직을 내려놓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린 그녀는 1조 원대의 민사소송을 시작하게 되는데…….
코리아타워를 되찾기 위한 신출내기 여 변호사와 거대 로펌 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 신일본제국을 꿈꾸는 일본 우익 세력과 이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국내 거대 권력의 음모, 그리고 이에 맞서는 사람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끝은 어디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관문에서 한국혼韓國魂과 일본정신日本精神의 거대한 충돌이 시작된다. 이 소설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베 정권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이다.
1. 거위의 꿈
경남 창녕 길곡 중길 산골 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원래부터 가난한 집안인데다 설상가상 아버지마저 숙환으로 앓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친정인 읍내 강변마을 남지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어린 6남매를 키웠습니다. 소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무거운 행상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 강변 둑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의 행상 보따리 위에 뚝뚝 떨어지던 그 서러운 핏빛 노을을……. 그때에는 남지 철교 아래를 흐르는 그 강물조차 왜 또 그렇게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흘렀을까요?
소년이 전학을 하여 새 친구들을 사귀기도 전 어느 봄날, 소년은 방과 후에 혼자 교실에 남아 학급문고에 비치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읽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교내 백일장이 열리는 날이었고, 바로 그 교실이 백일장 글짓기 교실이었습니다. 소년은 백일장 참가 학생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감독관으로 오신 선생님은 소년에게도 원고지를 주며 글을 적어 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적어낸 그 글이 덜컥 장원에 당선되고 말았습니다. 소년과 문학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그때부터 소년은 교내 백일장뿐만 아니라 더 큰 창녕군대회나 경남도대회 백일장의 단골 학교 대표 선수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소년은 졸업 앨범 메모에 장래 희망으로 노벨문학상, 존경하는 인물로 소파 방정환 선생을 적었습니다.
소년은 가까스로 중학교에 진학은 했지만, 어머니의 행상만으로는 먹는 것조차 해결할 수 없는 혹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중학 2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죽더라도 도시에 나가 꿈틀거리다가 죽겠다고 하면서 여전히 아픈 남편과 어린 자식들을 거느리고 부산 당감동의 곧 쓰러질 것 같은 단칸방 하나를 세내어 이사를 했습니다. 소년도 이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벌어야 했고, 전학 절차조차 취하지 못하고 중학교를 중퇴해야 했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산공동어시장에 나가 생선을 떼어 노점에서 파는 생선 장사를 하였고, 소년은 어느 동사무소의 사환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학업의 꿈마저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사환으로 일하는 고된 일과 속에서도 헌책방에서 책을 사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일 년 후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였고, 다시 일 년 후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합격했습니다. 정규과정보다 1년 반이나 빠르게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셈이었지만, 가난은 소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동사무소 사환의 월급만으로는 생계와 대학 진학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소년은 월급이 더 많은 회사에 취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당시 부산에서 월급을 많이 준다는 대한조선공사(현재의 한진중공업)의 직업훈련소에 입소하였고, 일 년의 직업훈련 과정을 마치고 정규 생산직 사원이 되었습니다. 정규사원이 되어 받은 첫 월급이 12만 원 정도였는데, 이 월급은 당시 9급 공무원의 월급 4, 5만 원 정도에 비하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로써 생계를 돌보며 야간대학이라도 가겠다는 소년의 당면한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소년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정규 생산직 사원이 된 지 불과 6개월이 지난 1979. 6. 11. 오후 1시경, 소년이 일하던 일터에서 엄청난 가스 폭발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당시 소년과 함께 일하고 있던 동료 사원 2명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불에 타 현장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소년도 전신 90~95%, 2~3도 화상과 양쪽 고막이 불에 타 녹아버리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소년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부산 메리놀병원 무균화상병동 중환자실에서의 40일 동안에 걸친 죽음과 직면한 소년의 사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살이 짓물러 녹아내리면서 붕대를 흠뻑 적시는 화농과 부패의 냄새, 24시간 한순간도 쉬지 않고 온몸의 피부를 꽉 조여 대는 붕대의 압박감, 이틀마다 붕대를 풀고 드레싱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출혈로 인한 수혈과정, 이와 더불어 찾아오는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갈증, 그 지독한 갈증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제발 의식이라도 잃어버리기를 무수하게 갈망하며 스스로 혀를 깨물어보기를 몇 번이나 했습니다. 무균화상병동이라 외부인의 출입이 일체 허용되지 않는 그 지독한 고립감, 미라처럼 온몸이 붕대에 꽁꽁 감긴 채 오직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철저하게 박탈된 신체의 자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매일 죽어나가는 옆 침대 환자들의 모습, 그러나 소년은 그 지독한 고통과 고립을 이겨냈습니다. 소년은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이후 세 번에 걸친 피부이식 및 고막이식 수술을 거치고 1981. 8. 31. 마지막으로 병원을 퇴원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고막이식 수술의 후유증으로 단 한시도 멈추지 않고 매미처럼 울어대는 이명과 문득문득 엄습하는 외상성 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1982. 봄, 소년은 산재보상금을 받아 첫 등록금을 내고 그토록 갈망하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정규과정은 또래보다 더 일찍 검정고시로 마쳤지만, 그동안의 투병생활을 거치느라 24살에 이룬 만학의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소년에게는 오직 문학만이 그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당연히 대학에 간다면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런 꿈이 있었기에 고단한 사환 업무와 폐유와 쇳조각에 절어 하루 일과를 마치는 직업훈련 과정에서의 극심한 피곤 속에서도 집에 가지 않고 집 근처 칸막이 독서실에 앉아 밤늦도록, 때로는 밤을 꼬박 새며 문학서적을 읽고 나름대로의 자작소설도 써 보았습니다. 이때까지 대학노트 10권 분량으로 쓴 《밀림의 찬가》라는 제목의 장편소설 1편과 20편이 넘을 것 같은 단편소설들, 그리고 수십 편의 시詩 원고를 문학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에서 홧김에 태워버렸는데, 이것은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그러나 소년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겠다던 어릴 적의 꿈을 접고 법대를 택했습니다. 3여 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죽음과 직면한 투병생활에 대한 보상금으로 지급된 산재보상금이 턱없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이런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고 싶었고, 그 저항심이 법대를 택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진학한 대학(동아대학교 법학과)에서 4년간 등록금을 전액 면제받는 것은 물론 1인실 기숙사와 식사 및 당시 돈으로 매달 학비보조금 20만 원까지 받는 파격적인 장학 혜택을 받으면서 법대생들의 로망인 사법시험에 몰두했습니다. 소년을 장학생으로 추천했던 교수님이나 주변의 기대처럼 사법시험 합격도 소년에게는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년의 오산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까지 3여 년에 가까운 혹독한 투병생활을 거치면서 소년의 건강은 극도로 허약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학 후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사법시험에 기필코 합격하고야 말겠다는 강박관념이 소년의 건강을 더욱 해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1학기를 마치면서 소년은 극심한 신경쇠약과 신부전증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허약한 체력을 탕진하며 오직 정신력으로 버틴 나날들이 소년의 건강을 극도로 해쳐버린 뒤였습니다. 어릴 적의 순수한 꿈인 문학을 포기하면서까지 오직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야겠다는 맹목적인 분노와 저항이 스스로를 망쳐버린 뒤였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8개월 여 동안 밀양의 작은 암자(첫 번째 소설에서 그린 〈무간암無間庵〉의 원형이 되었다.)에서 산사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참선과 명상을 통하여 그때까지의 자신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사법시험이 결코 소년의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문학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 후 소년은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였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법률사무소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소송을 하고, 범죄를 저지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문학의 품에 다시 안긴 소년은 이제는 현실의 부조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용과 사고의 깊이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순수한 꿈을 되살려 다시 집필을 시작하였고, 그 결과가 2007년에 발표한 데뷔작 《퍼펙트크라임빛은 저울로 달 수 없다》로 나타났습니다. 이 소설은 법률사무소에 재직하면서 10여 년간에 걸쳐 완성한 총 800페이지 가량의 전 3권으로 엮은 소년의 첫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소설 《코리아타워》(상․하권)의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2. 거위의 여정
첫 번째 작품을 발표한 2007년, 그때 이미 소년은 중년이 되어 있었지만, 문학에서만큼은 여전히 순수한 꿈을 간직한 어린 소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소년은 첫 번째 소설을 발표하기까지의 지난날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직장의 업무를 병행하면서 그 소설을 발표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머릿속에 얼개로 그려져 있는 이 소설은 첫 번째 소설보다 더 큰 소설이었습니다. 직장의 업무를 병행하면서 꼭 같은 길을 가다가는 어쩌면 이 소설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직장을 사직하고 오직 소설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꽤 많은 연봉을 받는 멀쩡한 직장을 사직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소설에 매달리겠다는 말을 아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년이 고심 끝에 말을 꺼냈을 때, 아내가 스스럼없이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사실 내가 조금만 더 현명하게 뒷바라지를 했더라면 당신은 사법시험도 충분히 합격하고 남았을 텐데, 그것이 언제나 아쉬웠어요. 당신이 만들어 놓은 지금의 경제적 토대만으로도 당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셨어요. 이제 사법시험보다 더 절실한 당신의 소중한 꿈을 찾아가세요. 사법시험보다 더 큰 일을 문학으로 이루세요. 풍족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경제력만으로도 우리 식구의 생활은 거뜬히 꾸려갈 수 있어요. 생활은 나에게 맡기고 이제부터는 오직 당신의 꿈을 찾아가세요."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은 소년은 직장을 사직하였습니다. 그리고 직장 업무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오직 소설을 쓰는데 쏟는다면, 이 소설은 짧은 기간에 쉽게 탈고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나름의 얼개도 구상되어 있었고, 이 작품 속 《코리아타워》의 이미지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리아타워》는 이 소설 속에서 그린 유경준 박사의 각고의 설계과정만큼이나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에 매달린 지 무려 7여 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작품 속 《코리아타워》는 상, 하 각권 약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큰 분량으로 그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글이 잘 쓰이지 않을 때마다 작품 속 코리아타워의 기단基壇이 된 무량수전이 있는 영주 부석사를 찾았고, 힘들 때마다 이 타워의 원형이 되는 경주 황룡사지 터를 찾았습니다. 한 달 동안이나 단 한 자도 쓰지 못해 조바심이 나 하루 종일 황룡사지 터의 주춧돌 위에 앉아 감포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해풍을 맞고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 작품 속 코리아타워가 탄생하기까지의 전설을 스스로 체험하고, 그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그리기 위해 이 작품 속의 소설 〈탑의 전설〉에서 그린 백두대간과 그 대간에서 가지를 뻗어 내리는 정맥의 능선을 무작정 걸어본 횟수만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7여 년에 걸친 집필 기간 동안 무려 스무 번 이상을 다시 고치고 또 고쳐 썼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소년의 능력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부족한 이 작품을 세상에 내보냅니다. 어깨 위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홀가분한 기분이지만, 한편으로는 품 안의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는 것 같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을 탈고한 지금, 앞으로 소년이 걸어가야 할 문학 여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선 소년은 가능하면 내년 6월경까지 첫 번째 소설 《퍼펙트크라임빛은 저울로 달 수 없다》의 개정판을 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년 말까지 중편소설로 발표한 〈아이스맨〉을 장편으로 개작할 예정입니다. 이 소설은 300페이지 가량의 짧은 장편이 되겠지만, 이 소설에는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와 이 문제의 해결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소년 나름의 경제관과 문명관이 담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이 끝나면 이미 자료수집과 구상의 얼개를 마친 《에밀레 프로젝트(가제)》라는 새 소설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소년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소리를 구현하려는 에밀레종의 제작과정과 당시 위정자들의 모습을 민중사관의 관점에서 되짚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끝낸 후 제목 미정의 새 소설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소설은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한중일의 역사적 대립관계를 각국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추리소설의 형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탈고하면 소년은 어쩌면 생의 마지막 소설에 착수할 것입니다. 그것은 일제 강점 말기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소년의 어머니와 소년처럼 낙동강을 젖줄로 삼아 태어나 이 강을 끼고 살았던 무수한 민중들의 삶과 한을 시기별로 복원해내는 일입니다. 아직 자료 수집 중이고 시작도 못했지만, 반드시 시작할 각오를 합니다.
행여 이런 여정의 고백이 소년의 자만이나 오만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년이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앞으로 오직 문학인으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공개적인 약속입니다.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거위의 기도
이 책을 출간한 직후 소년은 대학 때 함께 사법시험 준비를 했던 몇 분과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년과 달리 그분들은 물론 사법시험을 합격하여 지금은 중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식사 도중 그중 한 분이 불쑥 말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게 돈이 됩니까?"
소년이 말했습니다.
"돈은 무슨 돈요. 안 까먹으면 다행이지"
그분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요? 요즘은 책이 안 팔린다고 하던데, 그런 무익한 짓을 왜 합니까?"
소년은 대답 대신 그냥 웃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소년이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한들 그분들이 공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년은 그분들이 보기에 무익한 일, 아니 무익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지면을 빌려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많은 돈을 벌어놓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벌기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년은 이런 여러분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제 소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어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문명文名을 떨치고도 싶습니다. 이런 욕심이 전혀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위선이겠지요. 그러나 소년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이보다 더 절박한 곳에 있습니다. 하늘은 그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에서 소년을 살려내었습니다. 소년이 다른 길을 가자 이번에는 하늘이 그 몸을 아프게 하여 그 길을 막았습니다. 또 하늘은 문학을 이해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아내와의 인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늘이 목적 없는 존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년을 이 세상에 내보낸 하늘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듯이, 소년은 여러분들이 무익한 짓이라고 하는 하늘의 뜻과 공감하기 위하여 글을 씁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릴 적부터 앓고 있는 이 지독한 우울감과 절망감, 삶의 회의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년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년은 살고 싶습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 소년은 몰입할 수 있고, 이 몰입의 순간이 소년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야말로 소년은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돈을 버는 일보다 더 내면에 있는 것, 삶과 존재의 의미와 가치, 이를 내 삶 속에서 승화시키면서 살고 싶다는 것, 이 지독한 우울과 삶의 회의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버릴 수는 없다는 것, 글을 쓰는 이유로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이 또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소년은 오직 살기 위하여 글을 씁니다.
요즘 아내의 잔소리가 부쩍 늘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 더 많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는데, 몸을 너무 혹사하는 것 같다고, 술도 너무 마시는 것 같다고, 이제부터는 술을 자제하라고. 그렇습니다. 아내의 말은 잔소리가 아닙니다. 아내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내의 말에 순종하여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장유사에서 용지봉까지 등산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장유사 법당에서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제발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제발 현실의 지배적인 추종 가치(돈?)에 굴복하여 내 스스로 문학을 등지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그렇습니다. 거위는 날지 못해도 뒤뚱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4. 마치면서
─ 이 소설은 아베 정권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 《코리아타워》의 내용과 집필 의도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이 소설에는 제가 법조계에서 근무하는 동안 익힌 법원실무 지식이 그대로 용해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법학과 문학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통하여 이 소설이 새로운 한국형 법률문학의 효시로 평가받는다면, 저로서는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겠지만, 이것은 오직 독자들과 여러분의 몫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7여 년에 걸쳐 이 소설에 매달린 이유는 보다 더 큰 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대사에서 불행하게도 일제의 강점기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일 두 나라 사이에는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역사왜곡문제 등 긴급한 정치 외교적 현안과 갈등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이 소설을 통하여 감히 말합니다. 이 소설은 현재 급격한 우경화로 기울어 군사대국화로 치닫고 있는 아베 정권에 보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엄중한 경고라고.
그렇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관문에서 한국혼韓國魂과 일본정신日本精神의 거대한 충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설 《코리아타워》에 대하여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건전한 비평을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갑자기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소주잔에는 아마 저의 눈물이 어릴 것 같습니다.
- 오늘 저와 함께 소주 한 잔 하실 분 안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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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도 2007년 《퍼펙트크라임빛은 저울로 달 수 없다》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2011년 시인 등단. 장편소설 《코리아타워》(상, 하) 《피터팬, 법정에 서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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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임재도 소설가는 창녕 길곡면 출신으로 남지에서 성장, 부산으로 갔다가 창원에서 지금 소설 창작에 열심입니다.
장편소설 <코리아타워> 상`하권 출간을 축하합니다.
정말 창녕에는 많은 문인들이 배출되는 고장입니다.
열심히 글을 쓰는 고향 창녕출신 문인여러분
고향을 빛낼 명작을 많이 쓰시길 기원합니다.
“글을 쓸 때 소년은 몰입할 수 있고, 이 몰입의 순간이 소년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야말로 소년은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돈을 버는 일보다 더 내면에 있는 것, 삶과 존재의 의미와 가치, 이를 내 삶 속에서 승화시키면서 살고 싶다는 것, 이 지독한 우울과 삶의 회의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버릴 수는 없다는 것, 글을 쓰는 이유로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이 또 있을까요?”
문학의 혼에 사로잡힌 소년이 쓴 소설을 읽고 싶어집니다. 문운이 뻗쳐 소설이 대박나면 좋겠어요. 동향인이라 무척 반가운 마음에 불쑥 악수를 청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