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 제자>
붓다께서는 성불 후 무려 45년을 전법에 몰두하셨으니, 그 제자의 수가 『금강경』에서는
비구 1,250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재가 제자들을 포함하면 거의 수천 명에 달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들은 몇 군데의 수행처에 분산하여 거처했으며, 붓다는 수시로 이들의 거처에서 법을
설하시곤 하셨을 것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터 외에도 몇 명씩 무리지어 산속에서 수행하는
제자들도 많이 있었을 것 입니다. 붓다의 제자라 하면 우리는 ‘10대 제자’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런 선별은 아주 작위적입니다. 10명의 이름이 추려진 첫 경전은
『유마경』 제3 제자품입니다.
유마경은 승만경과 더불어 재가자를 주인공으로 한 유일무이한 경전이라 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이 유마경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하겠습니다.
유마경의 경 이름을 살펴보면, 최초의 한역본은 187년 엄불조嚴佛調 역의 ‘고유마힐경
古維摩詰經’, 223~253년경 지겸支謙 역의 ‘불설유마 힐경佛說維摩詰經’, 406년 구마라습
鳩摩羅什 역의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 經’ 등 7개의 산스크리트 원전 없는 한역본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승경전의 꽃이라는 법화경이 기원 후 300~400년경
편찬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미 기원 후 1~2세기에 한역까지 이루어진 유마경은 대승
초기의 경전임이 분명합니다. 이는 문헌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유마경의 정신은 출가 중심의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승 사상의 핵심을 밝히고자
함에 있습니다. 이 경의 무대는 바이샬리 Vais?l?라는 갠지스강 중류 지역이고,
유마힐이라는 재가신도를 주인 공으로 붓다의 10명의 수승한 제자와 유마힐이 법의
대결을 펼치는 내용입니다. 유마힐이 실존의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습니다(저는 가공된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은 붓다의 제자들은 성문聲聞에
불과하고, 대승인 유마힐이 그들에게 불법의 진수를 가르쳐 준다는 ‘모티브’에 있습니다.
이런 위치에 있는 유마경에서 10대 제자를 나열한 순서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유마경 제3품의 시작 부분을 보겠습니다.
그때에 장자 유마힐은 생각하기를, ‘내가 이렇게 병들어 누웠는데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지 아니 하시는가?’라고하자 부처님이 그 뜻을 아시고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을 방문하여 병을 위문하여라.”
사리불 다음에 나오는 제자의 이름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목건련-가섭-수보리-부루나-
가전연-아나율-우바리-라훌라-아난 이렇습니다.
위와 같은 붓다의 당부에도 오백명의 제자들이 다 유마힐에게 문병을 갈 수 없다고
난감해 합니다. 자신들은 유마힐에게 불법을 잘 모른다고 질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발뺌을 합니다.
제가 유마경을 꺼낸 이유는, 붓다의 제자들과 그 역학관계를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또한 대승론자들의 붓다의 제자에 대한 관념이나 혹은, 당시의 승단에서의 주류, 비주류,
심하게 말하면 서열을 유마를 통해 빗대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멸 후 거의 600~700년이 지난 시점의 경전인 유마경에서 거론된 제자들의 순서는
언급했듯이, 사리불-목건련-가섭-수보리- 부루나-가전연-아나율-우바리-라훌라-
아난입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붓다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이라는 사실은 경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공解空 제일 수보리는 금강경의 주인공이니, 대승 쪽에서도 가장
수승한 제자로 인정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붓다를 평생 시봉하며 그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듣고 익힌 아난을 꼴찌로 내몬점은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그 의도라는 것은 바로, 많이
들어 보았자〔多聞〕 대승의 이치를 증득하는데는 별 소용이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부동의 1위로 예상되는 가섭이 3위라는 사실도, 앞으로 제기할 삼처전심이
석연치않다는 제 주장을 도와주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