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잔치 안내장을 만들다가
시를 찾으러 들어간 옛 싸이월드 미니홈피.
옛 다이어리를 뒤적이다
궁금해졌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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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돼지인 단비
(2005. 10. 20)
우리 반은 아니지만 3월 첫날부터 눈길을 끌던 아이가 있다.
김단비...
어찌보면 참으로 귀엽기도 하고
어찌보면 참 희한하게 생기기도 한 아이.
성격도 뭐라고 할까...
유별나다고 하기엔 밉지 않고 평범이라 말하기엔 너무 특이한 단비.
의령읍에 출장이 있어 늦게 퇴근하던 길에
여자 애들 너댓명이 날 발견하고 또 집까지 쳐들어왔다.
배고파 하는 그들에게 집에 남아있던 햄과 오뎅등을 섞어 내 주식인 라면을 끓여주었다.
맛나게 먹는 아이들.
우리 반 뿐 아니라 다슬이와 단비도 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 아이들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다른 반(이라고 해봐야 한 반 밖에 없지만) 아이와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안그래도 이곳 의령 신반의 아이들의 성향에 대해
관심 이상의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다른 반 아이들에 대한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단비, 그리고 그의 오빠 동호(6학년)
신반에서 좀 떨어진 옥동마을에 사는 아이들.
부모가 버려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 답지 않게 예의바르고(?) 가정환경에 비해 밝게 큰 듯한 오누이
그래서 그들이 난 좋았다.
라면을 먹으며 다른 반 아이들에게도
요즘 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물어보는 '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다른 아이들이야 또래 아이들처럼 연예인, 가수 등이 주를 이루는데
뜬금없는 단비의 표현
"난, 돼지요!"
"엥? 뭐라고? 돼지?"
"네, 돼지요."
" 왜? "
"돼지는 밥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
대답하면서도 계속 라면을 먹느라 정신없는 단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라면 속에 있는 햄만을 골라먹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얄밉기도 하다.
'뭐 애들이 다 그렇지. 지 좋아하는 것만 먹으려 하는...' 이라고 생각할 진 몰라도 여기선 그런 게 아니다.
정말 '걸신들렸다'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먹는 것에 집착이 강하다.
물론 그건 단비만의 일은 아니다.
이곳 신반에서는 해가 뜨고 지듯 그냥 흔한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선생님, 단비는 급식때 맛있는 거 나오면 두번 세번 계속 먹어요."
주위 아이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귀에 거슬린다
아이들의 놀림에도 단비는 눈치없이 라면에서 햄과 오뎅을 골라먹는다.
"단비야, 돼지는 많이 먹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되지?"
돼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단비가 갑자기 너무도 미워서, 눈물나게 미워서
조금이라도 다른 것으로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돼지가 잘 먹는 이유는 죽기위한 것이라는 면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단비는 햄, 오뎅을 다 골라먹고,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고 있다. 마치 내 질문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단비야, 돼지는 결국 죽기 위해서 먹는거란다. 단비 니가 그럴 필요는 없지."
"난 많이 먹을 수 있으면 죽어도 좋아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하는 단비.
미워 죽겠다. 정말 너무너무 미워 죽겠다.
어찌 먹는 것을 위해서 저리도 진지하게도 죽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가?
생각해보니 단비의 저 모습이 어디서 본 듯 하다.
엊그제 의령군 육상대회를 마치고 간 중국집에서의 동호(단비 오빠) 의 모습
자장면과 만두를 시켰는데, 만두가 나오자마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란 존재는 아랑곳없이
일어나서 군만두를 손으로 집어서 먹고,
다른 한 손에는 누가 뺏어먹을까 만두 한 두개를 손으로 집어서 가지고 있던 동호.
그런 행동에 내가 버릇없음을 나무라자 슬그머니 만두를 내려놓은 동호.
하지만 동호의 눈 속에 보이는 군만두에 대한 집착까지 내려놓게 할 순 없었다.
결국 다른 테이블까지 돌아다니며 만두를 먹던 동호의 모습.
그런 동호와 단비가 오버랩된다.
잘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쩌면
식욕, 아니 식탐도 인간의 당연한 본성일진데
난 왜 그런 모습이 미워 보이는 지 모르겠다.
그런 모습이 맘에 안쓰러워 오히려 화가 날 정도다.
'가난'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얼마 전 남자 아이들 몇을 태우고 목욕하러간 합천에서도 그러했다.
음식점 앞에서 눈을 띄지 못하는 아이들.
먹고 싶으면 사주겠다는 말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롯데리아와 짜장면집에서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 못내리던 아이들.
난 그런 아이들이 미워서,
너무 너무 미워서 햄버거 세트를 먹이고
또 길 건너 중국집의 짜장면을 먹였었다.
먹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미련스럽게도 먹을수 있을거라던 아이들.
그런 모습이 미워서 햄버거에 짜장면을 다 먹은 후에도
또 먹고 싶은 것 없냐는 나의 비야냥 거리는 질문에
너무도 순진하게도 다시 분식점에서 꼬치와 오뎅을 사달라던 아이들.
배 안부르냐는 나의 질문에
언제 와서 또 이렇게 먹을지 모르는데
미리 미리 배 채워 놓아야 하지 않겠냐며 천진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아이들.
그렇게 먹고 합천서 의령 신반으로 돌아오던 길,
그 굽이굽이 산길을 돌다보니
정말 무리한 과식으로 인해 차에서 내려 오바이트를 하던 아이들.
그리고 멍하니 오바이트 한 것을 쳐다본 후, 차에 타며 하는 말.
" 아깝다."
정말 가슴을 후벼파는 그 말. 아깝다.
밉다. 정말 밉다.
아이도 밉고, 가난도 밉고, 그런 아이에게 이런 식으로 상처를 주는 나는 더 밉다.
의령...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령.
이런 가난한 환경속에서
아이들 역시 살아야한다라는 본능으로 인해
욕심이 많아지고 그런 욕심들의 충돌로 인해 아이들이 거칠어지고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들의 인심이 거칠어진 곳, 신반.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가난이 미워
아이들까지 미워보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