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나기로 가는 길은 우측에 코카서스 산맥과서 알라자니 강과 그 강으로 인해 형성된 알라자니 평원을 보며 간다.
알라자니 평원을 가로질러 30분 정도 더 가자 오르막길로 들어서고 소 코카서스 산 자락의 동남쪽의 산 자락에 자리한
시그나기가 나온다.
코카서스 산맥 반대쪽이다....앉는 방향이 반대편이라서...
양쪽이 다 포도밭이다.
시그나기로 가는 이정표...시그나기를 보고 보드베도 들른다.
시그나기 주차장에 도착을 하고...
걸어서 전망대까지 올라가는데....덥다.
Signagi 또는 Sighnaghi는 조지아의 가장 동쪽 지역인 카헤티에 있는 도시로 조지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중 하나이지만,
시그나기는 조지아의 와인 재배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그림 같은 풍경, 파스텔 톤의 주택 및 좁은 조약돌 거리로 인해 인기있는 관광지 역할을 한다. 790m의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시그나기 멀리 코카서스 산맥이 보이는 광활한 알라자니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그나기(Sighnaghi)라는 단어는 투르크어로 피난처 또는 참호를 의미한다고 하며, 1762년 조지아의 헤라클리우스 2세는 이 도시의 건설을 후원하고 다게스탄 부족의 약탈적인 공격으로부터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요새를 세웠다고 한다.
시그나기는 주변 평야지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전쟁 때 피난지로 삼기 위해서이다. 시그나기는 1762년에 피난용 성곽마을
로 조성되어 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살아서 이후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였으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마을의 규모
가 줄어들어 농업 위주의 작은 마을로 퇴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좁아서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시그나기와 코카서스 산맥과 알라자니 평원....시그나기가 해발 770m로 이곳에 성곽을 쌓아서 외부의 침략을 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없어서 파란 동선으로 전망대까지만 다녀 오고 말았다....주차장도 협소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길도 협소하여 차량 교행이 불가능하여 동네를 들어오느데와 나가는데 한 시간 정도가 낭비가 되었는데 방법이 없다고 한다.
외부에서 들어올 때 'ㄴ'자로 꺽인 곳은 차가 하나밖에 지나갈 수가 없는데 이 나라도 교통질서가 그리 발달된 곳이 아니라서 계속
엉킨다.
전망대쪽으로 올라간다...약간 오르막이고 날씨가 더워서 그늘이 없다면 여름에는 힘이 드는 길이다. 3시로 가장 뜨거울 때이다.
정망대 쪽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경치...이곳이 유명한 것은 역사적 의의 때문이 아니고 경치 때문이다.
성벽을 통과해서 나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오라막을 힘들게 올라오는 일행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경치이다.
헤라클리우스 2세에 의해서 1762년도에 만들어진 성곽과 요새...사람이 올라가서 전망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성곽을 걸을 수 있게 되어 있다고..구글사진
전망대에 있는 카페...
이곳에서 찍는 사진이 가장 아름답게 나오기 때문에 이곳을 들러서 경치나 인증샷도
찍는다.
전망대의 다른 쪽에서...흰 구름이 있는 곳이 코카서스 산맥이다...아래 마을들은 시그나기가 아니고 주변의 도시들로 외부의 침입
이 있게 되면 이 성 안으로 피난을 온다.
위에서 보는 여러 사진들...
교회의 종탑처럼 생긴 것은 성의 망루이다.
코카서스 산맥에 눈이 있는 모습...인터넷
사람들이 전망대에 가장 많이 있다.
‘솔로몬 도다쉬빌리(Solomon Dodashvili, 1805-1836)’의 동상. 시그나기 태생의 문학가이자 역사학자, 계몽주의 철학자로 ‘니코
피로스마니’와 함께 시그나기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누군지...솔로몬 도다쉬빌리 공원에서 내려오는데 있는데 명판을 알아볼 수가 없다.
World War Ⅱ Memorial 기념공원으로도 불린다고 했다. 부조는 포도농장에 일하는 농부들을 그리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러 나가
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평화를 바라는 염원을 올리브나무와 비둘기로 표현하기도 했다...명판은 전사자들의 명단이라고
소련에 대항하여 트빌리시에서 벌어졌던 시위 때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는 ‘4월9일 비’라고 했다. 참고로 ‘4월 9일의
비극(트빌리시 대학살, 트빌리시 비극으로도 알려짐)’은 1989년 4월 9일 그루지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트빌리시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의 반-소비에트 시위는 소련군에 의해 해산되었고, 20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4월 9일은 ‘국가통일의 날’로 기억되며, 조지아에서는 공휴일이라고 한다.
4월 9일 공원에 있는 담벼락의 부조이다.
소련의 위성국가들은 모든 나라들이 이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누군지..찾아봐도 정보가 없다.
이것도 궁금하고...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1862–1918)’의 흉상 원초주의라 불리는 독특한 화풍으로 조지아의 전통과 자연, 사람들의
삶을그린 화가다. 그는 정규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고, 상점 간판이나 초상화 등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사후에 유명해졌으며, 피카소와 같은 유명한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니코 피로스마니는 짝사랑의 노래 ‘백만송이 장미’의 주인공이다.
피로스마니는 시그나기에 머물렀던 프랑스 여배우이자 댄서가수 마르가리타(1885년생)를 홀로 사랑하여 자기 전 재산을 팔아 장
미를 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해외공연 온 그녀가 꽃을 좋아한다는 풍문을 듣고, 나중에는 자기 피를 팔기까지 한 돈으로 수만 송이 장미를 사서 수레에 싣고 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그녀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 앞에 수만 송이 장미를 깔아 사랑을 고백하자 감동을 한 마그리타가 부자인줄 알고 나와 입맞춤을 했
건만 빈털털이인줄 안마르가리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버렸다고 한다.
니코 피로스마니 자화상
그가 그린 그림
그가 사랑했던 마르가리타의 그림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은 1981년 라트비아의 방송국이 주최한 가요콘테스트에서 “마라가 준 삶”이란 제목으로 ‘아이아 쿨레(Aija
Kukule)’와 어린 소녀‘리가 크레이츠베르가(Liga Kreicberga) 두엣으로 불러 우승한 곡이다.
가사 내용은 ’백만송이 장미‘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라트비아가 처한 지정학적 운명과 비극적 역사를 모녀관계에 빗대 부른 것이라고 한다.
운명의 여신 Mara가 ‘라트비아’라는 딸을 낳고 정성껏 보살펴 키웠지만 가장 중요한 행복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성장
한 딸에게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운명을 노래한 것이다.
당시 발트3국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소비에트로부터 독립 전에 나온 노래로 소련의 검열에 걸리지 않고 방송에
나온 것은 라트비아 신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이 노래를 러시아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번안해서 부른 곡을, 한국의 가수가 다시 불렀는데, 멜로디만 같을 뿐 가사는 개사하여
전혀 다른 내용이다.
개사 이유는 원곡의 가사가 우리나라 정서와 너무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가사를 바꿔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모래시계의 OST인 白鶴과 함께 러시아 민요로 잘못 알려져 있는 '백만송이 장미' 의 진실이다.
https://youtu.be/ESe8Ya7LAOM?si=cBlkFskIo9Y8pN-A....백만송이 장미 원곡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시청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크베브리(Qvervri) 항아리 위에서 사슴이 서 있다.
시그나기 시청사(Signagi Municipality administration). 결혼식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 시그나기가 사랑의 도시라고 소문
이 나서 결혼하려는 커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시청에서는 혼인신고 등록소를 365일 24시간 운영하여 언제든지 공증인 앞에서 결혼하고 증명서에 사인만 주어지면 결혼을 인정한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들은 24시간 언제든지 결혼을 하고 이를 증명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사랑의 도시라고 하는데 이는 니코 피로스
마니의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하여 후세에 이곳에 이런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아마도 그럴 것이다.
결혼 등록비용은 우리 돈으로 7,500원이라고..
덥고 시간도 없고 해서 곧바로 버스를 타고 옆에 있는 보드베 수도원으로 간다.
병목 현상 때문에 차가 막혀서 기다리는 중에....다른 쪽 시그나기 ... 차가 엉키는 바람에 귀중한 시간 30분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