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시작하며 / 정희연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잠에서 깼다. 피곤해서 소파에 잠깐 누었는데 잠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는 행사가 있어 서울에, 딸은 학생을 가르치러 학원에 갔다. 오전에 시골에 갔다가 냉장고에 넣어야 할 음식이 있어 집에 들렀었다. 엠비씨(MBC) ‘나혼자 산다’가 거실에서 혼자 떠들고 있다. 기안84가 ‘2023년 연예 대상’을 받는다.
기안84는 지금까지 일을 잘하지 못했다. 따지자면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장난으로 표를 몰아주어서 반장이 된 것이 전부였다. 웹툰 작가를 하면서 한 해 맞춤법을 가장 많이 틀린 작가에게 ‘올해의 맞춤법 상’을 매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최고의 작가는 아니었지만 인기가 많았다.”라고 하면서 “<방송 연예 대상>은 최고에게 주는 상이다.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나 받은 것 같다. 판타지!”라고 덧붙였다.
2023년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모였다. 분식집 운영, 숲 해설가, 해양경찰, 펜션과 카페 운영, 농업, 과수원지기, 그리고 교직에 계신 분등 직업이 다양하다.
막연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주제가 주어지면 무엇을 어떻게 쓸까 고민은 시작된다. 생각나는 대로 연관된 단어를 찾는다. 그러면서 과거를 되돌린다. 고민 끝에 범위가 좁혀지면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꾸만 빠져 나간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제대로 알지 못해서 자꾸 멈추게 된다. 길을 잃은 내 모습을 본다. 그렇게 글과 씨름을 계속하면 비로소 내가 현재와 만나는 일이 찾아왔다. 가야 할 방향을 찾고 목적지를 알려 주었다.
긴 시간 머리를 쥐어짜며 만들어진 결과에 힘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빨강색으로 가득한 교정지를 받을 때면 눈앞이 깜깜하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서는 정말 버티기 힘들다. 이때 진짜 나를 찾아야 했다. 「인간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자기 자신의 실존을 인식할 수 있다고 했던 니체의 말대로 홀로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길이 끝난 곳에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글쓰기를 놓지 않으려 한다」고 했던 글쓰기를 같이한 벗의 글이 보인다.
휴대폰(밀리의 서재), 에코백, 도서 대출 카드는 2023년을 나와 함께했다. 어디를 가든 같이 다녔다. 근무지를 대전으로 옮기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책을 챙겨 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반납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그 후로 아내와 딸의 카드까지 사용했다.
아내가 <코칭 센터>를 열었다. 학생에게 학습 코칭과 코칭 전문가를 양성한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 내가 참여한 것은 독서다. 매월 추천 도서를 선정하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매일 읽고 카톡 알림창에 읽은 내용이나 느낀 점을 기록해 올리는 것이었다. 주말이나 공휴일 쉬는 날 없이 365일 계속된다. 2, 30분 시간을 내면 되는 것이라 쉬웠지만, 매일 빠지지 않는 것은 어려웠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무엇을 쓸까로 바꾸고, 글쓰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나만의 글을 쓰자,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원칙을 새우고 가치를 추구하면 그것으로 성공한 인생이므로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2023년 ‘일상의 글쓰기’는 기안84가 말했던 것처럼 내게 판타지였다. 참 스승을 만나고 글벗과 함께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