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더운 날, 딸이 바람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저는 아이스커피를 두 잔 사들고 뒤따릅니다. 바람이는 9년 전, 우리 식구가 된, 하얀 털을 가진 진돗개입니다. 진돗개 고유의 특성상 실외 배변을 해야 하기에 하루에 두 번 산책하러 나갑니다. 덕분에 두 딸이 걷기 운동도 하니 감사할 일이지요. 공원 안쪽으로 걸어 내려가니, 바람이가 저를 보고는 먼 길 다녀온 엄마를 반기듯 꼬리를 흔들며 다가옵니다.
벤치에 앉아서 간간히 스치는 여름 바람에 제 몸을 맡기니 이내 작은 행복이 따라 옵니다. 바람이가 더위에 지쳤는지 숨을 헐떡입니다. 딸이 바람이를 일으키려고 목줄을 당기려는 순간, 제가 먼저 일어나 수돗가로 갔습니다. 컵에 물을 가득 담아 바람이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물 들이켜는 소리가 대단합니다. 돌아오던 길에 딸이 물었습니다.
“엄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나는 바람이를 수돗가로 데려가서 물을 먹이려고 했거든.”
딸은 바람이 대신 제가 수돗가로 가서 물을 떠다 먹인 게 인상 깊었나 봅니다. 자기는 생각도 못했다며 ‘그런 방법이 있었네.’ 라는 말을 연신 읊조렸습니다. 공원 출구 오른쪽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보기도 좋고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고 정겹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딸이 말합니다. “오, 이렇게 해놓으니까 좋다. 새들이랑 고양이가 물을 마실 수가 있겠네.” 그 순간 저는 “어머, 정말 그러네. 나는 그런 생각, 미처 못 했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날 저희 모녀는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 두 가지 상황을 마주하면서,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거나 자기 생각만 주입하려 했다면, 이런 교감을 나누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벤치에 앉아 맛본 여름바람의 그 결처럼, 우리의 대화는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섬세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걸 너는 알고 있었구나.’했던 나의 반응과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네.’하는 딸의 반응은 사실 같은 맥락이었던 거죠. 나에게 없는 것을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감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겸손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모녀는 진돗개 바람이와 함께 걸으며, '섬세함'이라는 보물을 발견한 겁니다. 뭔가를 더 채우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섬세함’을 놓쳐 버리는 자신을 마주할 때, 비로소 꽉 쥔 손의 힘을 풀게 됩니다. 저희에겐 그날이 그랬습니다. 각자의 마음 안에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느낌들이 있는데, 너무 섣불리 판단하거나 왜곡하는 건 아닌지 성찰해봅니다. 저장해두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니 말입니다.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관심가져 주시고 좋은 글 게시하심에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