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강성희(리디아)
“파견 성가(천주교에서 미사를 마치고 신부님이 퇴장하실 때 부르는 성가)는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부르겠습니다.”
성모승천대축일 전야 미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이미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하고 미사의 마무리 인사까지 마쳤고 나는 버릇처럼 성가책을 들고 전광판을 바라다보았다. 그런데 전광판에 마침성가를 안내하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교우들도 성가 몇 장을 불러야 할지 안내를 기다리며 전광판을 바라다본다. 그 때 전광판 안내 대신 낭랑한 음성의 성가 안내에 나도 교우들도 깜짝 놀랐다. '오늘의 파견 성가는 애국가입니다?' 뜬금없다는 생각은 잠시, 이미 애국가의 반주는 시작되었고 나도 다른 교우들도 모두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미사 중에 ‘애국가’라니......그것도 미사를 마치며 파견 성가로 애국가를 부르다니 처음 겪어보는 새로운 충격? 에 모두들 조금은 당황해하면서도 신기해하는 분위기다. 내일이 광복절이라서? 내가 알기로 이런 예는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애국가 반주에 따라 애국가를 따라 부르면서도 왜?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영문을 모르기는 주변의 다른 교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두 경건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열심히 부르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 젊은 부부, 나이드신 어르신 모든 세대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진 애국가가 성전의 벽에 닿아 메아리로 울려 장엄한 미사곡만큼이나 아름답고 감동스럽게 들린다. 4절까지 가사를 다 알고 계실까? 하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미리 연습을 하고 온 것처럼 가사도 정확하다.
초등학교 들기 전,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라는 말과는 다른, 고저가 있고 장단이 있으며 가락이 있는 말, 그런 말을 노래라고 한다는 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되었었다. 그 때 언니나 오빠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처음 배운 노래가 애국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의미도 모르면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애국가 1절을 다 외웠었다. 입학식을 며칠 앞 둔 어느 날은 엄마가 장에서 사 오신 란도셀 가방을 매고 식구들이 보는 앞에 서서 애국가를 불러 보았다. 애국가를 부르고 못부르고 하는 것이 입학의 자격이라도 되는 듯, 옆집에 사는 순이네 할머니는 ‘아이구, 희야는 이제 학교 들가도 되겠구마는, 동해물가도 끝까지 다 부를 줄 아는가배,’ 하고 칭찬을 해 주셨다.
애국가가 중요하긴 중요한 노래였나 보았다. 엄마의 손을 잡고, 란도셀 가방을 자랑스럽게 매고, 가슴에 하얀 무명 수건을 달고 입학식을 하던 날, 학교 운동장에서 가장 먼저 했던 의식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모든 학부모들과 선생님, 언니 오빠들이 태극기를 향해 엄숙하고 바른 자세로, 그리고 우렁차게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나의 자존감은 한껏 고무되었다. 학교에 입학한 이 후로 일주일에 한 번, 아니 그 이상으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애국가를 불렀다. 아침 조회가 있을 때 마다, 학교의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우리들은 꼿꼿하고 바른 자세로 서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개구쟁이 친구라도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절대로 움직이거나 장난을 치지 않았다. 흡사 성묘를 할 때나 차례를 지낼 때 차례 상 앞에 서 있는 아버지와 큰 아버지의 모습처럼 진지하고 눈빛이 빛났다. 학년이 올라가며 새로 받은 음악책에는 새로운 동요가 실리고, 지나간 동요는 더러 잊히기도 했지만 애국가는 변함없이 음악책 표지의 첫 장을 차지하며 그 위상을 더해갔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 하세’하는 가사의 대한 사람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국호가 대한민국임을 알게 되고 애국가 가사의 의미를 새기면서 노래를 부를 만큼 생각도 자랐다.
국기 게양식이나 하강식 때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길을 가다가도 모두가 멈추어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며 애국가를 마음으로 따라 불렀다.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우리들의 가슴에는 애국의 불씨가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듯 했다. 우리나라가 아직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 머나먼 외국 어느 스타디움에서 울려 나오는 애국가를 흑백 T.V에서 보는 날이면 선수들도, T.V 앞의 국민들도 같이 애국가를 부르며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황무지 나라, 세계에서 꼴찌에서 첫째, 둘째였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이었을 때도 우리 국민들은 애국가를 사랑했고 대한민국을 사랑했다. 몇 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착착 성공적으로 완수되고 새마을 운동으로 나라가 나라다워지며 하루하루가 희망의 빛으로 행복 지수를 더해 가던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대한민국. 우리는 극장에서도 애국가를 불렀고, 집에서 T.V를 마감할 때도 애국가와 같이 하루를 마쳤다. 애국가는 우리 대한 사람의 기도였으며 신앙이었다.
애국가가 주술이 된 듯, 다른 나라 사람들은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던 극동의 한 귀퉁이 가엾고 작은 나라 한반도, 대한민국이 조금씩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90년대의 끝 무렵 경제위기가 있어 한 차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 대한 사람들은 다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그 또한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리고 무역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위대한 대한민국이 되었다. 각종 운동경기대회, 예술 대회, 골프대회, K-팝 등과 같은 문화 콘텐츠, 대한 사람의 우수성을 알리는 여러 성과 앞에 세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을 얕보지 못한다. 그 성과만큼 자주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는 세계의 지붕 아래서 울려 퍼지며 대한 사람의 자존심을 높여 주고 있다. 세계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알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며 친해지고 싶어 한다. 우리는 세계 사람들 속에서 더 이상 주눅들지 않고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달고 그들과 경쟁한다.
이런 대한민국, 우리의 조국을 우리 대한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한다.
지금도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우리의 기상이며, 가을 하늘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이다. 무궁화를 사랑하는 대한 사람들은 여전히 이 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 하여 즐거우나 괴로우나 이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할 각오로 충만하다.
이러한 나라 사랑의 마음을 가슴 깊이 뿌리내리게 한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이 노래가 요즘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조롱을 받고 있는 듯한 안타까운 느낌이 있다. 작곡가가 친일을 했다고 하고 작사가도 친일파라서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도 아닌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종종 들려온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면 국민들의 마음을 떠보고 있는 듯하여 불쾌하고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고 살았던 사람 중에 겉마음이든, 속마음이든 친일을 1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선의 왕이었다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사람부터도 일본식 황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단발을 해야 했으며 조선 백성의 8할이 창씨 개명을 해야 했던 시대이다. 신학문 교육이라도 받은 사람이면 신사참배는 싫든 좋든 했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 침략자를 윗사람으로 모시고 그들의 의향에 맞추며 일도 했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친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국민 8할을 친일로 만들며 편가르기를 해서 남는 게 무엇인가? 침략자의 놀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우리 국민이 모두 신교육도 거부하고 산골에 들어가 풀뿌리나 캐며 금수같은 삶을 영위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라는 침략자의 발 아래 내팽겨 쳐두고 대한 사람 모두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만주로 떠도는 방랑자 생활을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경부선 철도를 다 걷어내고 다른 길로 다시 철로를 낼 수 있을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1번 국도를 다 허물고 다른 길로 다시 도로를 닦아야 할까? 인류의 역사 이래, 어느 민족이든 옳고 바르고 흐뭇한 역사만 있어 왔던 건 아닐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도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럴 때 마다 때로는 전쟁이라는 고통으로, 때로는 외교라는 지략으로, 때로는 굴종이라는 아픔을 남기며 한민족의 맥을 이어 왔다. 역사 속의 인물들과 그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불만족한 한민족의 사연들을 모두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역사는 과거다. 이미 잘못된 역사를 지금 거슬러 바로 잡을 수는 없다.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교육하며 되풀이해서 실수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지혜를 키워야 함이 옳지 않을까?
물론 친일을 미화하거나 편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정상 참작은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 그 때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이완용과 같은 명명백백한 매국노를 제외하고는 우리 민족 모두가 피해자이며 불쌍한 어린 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척하며 밑으로는 암암리에 독립의 자주정신을 민족에게 전파하고 계몽하기 위해 책을 펴내고 시를 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구한 자본을 독립운동의 군자금으로 보낸 이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 배워온 신학문과 신기술을 우리 한민족 후예를 길러 내기 위해 힘쓴 사람들도 있었다. 친일을 위한 친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렇게 우리 한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며 장엄하고 아름다운 애국가 가락이, 한마디 한마디마다 나라 사랑의 마음이 절절이 묻어나는 저 노랫말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 없이 곡으로 만들어지고 노랫말로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설령 나중에 변절을 하였을지라도 저 곡을 만들 때의 마음은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였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반세기 이상을 국민의 마음 속에서 나라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며 사랑받아온 노래, 대한 사람의 기도였으며 신앙이었던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노랫말과 같이 마르고 닳도록 이 노래가 이어지며 우리 후손들의 가슴에도 기도와 신앙처럼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다. (끝) 2019. 08.15
첫댓글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맞는 말씀입니다. 일본과 경제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작금의 나라 현실에 비춰볼때 무작정 반일감정만 고조 시키는 위정자들이 한번쯤 읽어야할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00%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지금 과거를 들추어 내고 편가르기 하는 사람들의 조상들부터 파해쳐 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김삿갓처럼 삿갓쓰고 방랑 길 떠나야 할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닐것 같습니다. 역사를, 과거를 폄훼하고 편가르기 하는 사람이 판치는 나라가 잘 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정말 국기와 국가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지는 요즘입니다. 글을 읽으니 공연히 화가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친일의 기준을 너무 광법위하게 설정하여 전국민을 친일로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정책을 펼치지 않고 자꾸 예전 일을 파헤치는데 집중하는 이 정부를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제부터라도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국가(그나라의 노래)가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한테 모으고 단결할 수 있는 국가의 상징적인 노래 애국가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작금이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선생님의 애국가에 대한 깊은 사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정말 가슴 후련한 글 잘 읽었습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며, 애국가는 국민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성경의 구절과도 같은 노래입니다.
글 내용에 대하여 전적으로 공감하며, 추운 겨울철에도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면 경건한 마음으로 부동자세로 서 있던 그시절을 떠올리며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어수선한 시기에 8.15 광복절을 맞아 파견성가를 애국가로 부르게 하신것은 교우들에게 애국가를 부르면서 나라사랑을 더더욱 상기시키려고 하신 의도임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한소절 한소절 불러가면서 작곡작사 하신 분들의 애국심이 담겨진 노랫말 처럼 우리나라가 짓밟힘과 전쟁으로 인한 폐허속에서도 국민전체가 한마음으로 결집하여 경제대국으로 이루어졌나 싶어 가슴 뿌듯합니다.애국가가 친일파가 작사 했다고 말한 그 분의 조상부모들의 애국심을 들추어 보고싶네요.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익태 선생님 고맙고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파견 성가의 뜻을 정확하게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애국가 4절까지 가사 외워쓰기, 부르기 등 학생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쳤던 일이 생각납니다. 애국가를 함께 부를 때의 마음만은 모두 같으리라 짐작합니다. 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6,25노래 가사도 바뀌었다는 것을 얼마전에 알고 화가 났는데 애국가 마져 바꿀려고 한다니 너무 화가 나네요. 리디아님의견 너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해온 것은 지금까지 모든 역사가 반석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을 송두리재 뒤엎을려고 하니 나라가 이렇게 어수선한것입니다. 인정할것은 인정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함께 나아가는 건강한 사회가 그립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