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계절 / 원종린
인생의 폭풍우가 불어 올 때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할 중요한 일은 아무리 그것이 모질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구름 뒤에는 항상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문필가 O.S. 마든의 수양서의 한 구절이다. 태양은 자주 희망의 상징으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태양은 첫째 이 세상의 광명과 열기의 근원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무가 연소될 때 빛과 열을 발산하는 것은 자라는 동안에 축적된 태양의 빛과 열이 밖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과학 적인 근거가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 발상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양은 또 에너지의 근원으로서 오곡이 여물고 과실이 익는 것은 다 태양 에너지를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남아 여러 지방에서는 태양숭배의 종교가 꽤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미개인의 종교라고 내리쳐 보는 경향도 없지 않은 모양이지만 별․ 나무․바위․강․우물 등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토속신앙에 견준다면 생명의 근원인 태양숭배의 신앙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부족들은 이 하늘 밖의 태양을 딴다고 감히 활을 겨눈다니 ‘기상천외’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은 기상천외까지는 모르지만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면서까지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기발한 착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잡스러운 일에 비하면 태양을 겨냥하는 일은 허황하기는 하지만 그 기상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게 있다고나 할까? 태양에다 활을 쏘는 일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어느 부족 추장 승계의 중요한 절차라고 한다. 이 관습을 오래 기리기 위해서 뉴욕시의 교외 주거지역인 몬트크레아시의 미술관 앞마당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던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예술적인 조형 속에 든다는 이 작품은 인디언 소년이 태양을 향해서 활을 쏘고 추장인 그의 아버지가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추장은 그의 대를 물려받을 사람에게는 꼭 활을 쏘게 해서 화살이 태양에 이르지 못하면 대를 물려주지 않는다고 전해온다. 땅을 물려받을 자는 태양을 쏘아야 하고 태양을 쏘는 자는 용감해야 한다. 태양을 쏘는 자는 광명을 바라보는 자라야 하고, 광명을 바라볼 수 있는 자는 청렴하여 마음에 어둔 곳이 없어야 한다. 태양을 쏘는 자는 정기를 축적해야 하며, 정기를 축적하는 자는 근신하는 자라야 한다. 이런 것이 그 동상의 상징이라고 한다. 용기․청렴․근신은 ‘인디언’ 부족의 최상의 덕목이었던 것 같다.
오늘 동상 속의 부자는 항진하는 화살의 방향을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동상의 소년처럼 당당하게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처세가 긴요하지 않을까?
태양이 작열하는 7,8월 성하의 두 달을 우리는 유독 ‘태양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어찌 7,8월뿐이랴! 밝고 바르고 굳세며 끊임없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면 1년 4계절 모두가 다 태양의 계절일는지도 모른다.
[원종린] 1965《현대문학》등단. 공주교대 정년퇴임.
* 수필집 《하늘 높이 차올리는 구두》 《홀가분한 마음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등등.
* 제1회 수필문학대상, 문학사랑 대상, 대전예술상 등등.
원종린 선생님의 수필은 기지와 해학이 돋보이는 글 일색이다. 선생께선 대학을 퇴직하시면서 2005년, 자비를 출연해 <원종린수필문학상>을 제정했고, 2021년 17회를 맞았다. 현재는 아드님인 원준연 중부대학교 교수께서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문학상’을 자비 출연한 일도 대단하지만, 각박한 현실에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계승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선생님과 원준연 교수께선 제자를 가르치거나 일상생활에서도 “당당하게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처세”를 하셨음을 글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밝고 바르고 굳세며 끊임없는 희망을 가지고 계심을.
첫댓글 대단한 분이 많지만
원종린 교수님도 굉장히 훌륭하십니다
어느 때나 태양의 계절이지요
이해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태양을 볼 수 없는 날에도 늘 행복하소서^^^
가을비 오는 날
들녘을 나갔다 왔는데요,
얼마나 좋은지요
감사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