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꿈
정동식
아내는 자유를 찾아 어디든 갈 수 있는 새가 부럽다고 한다.
답답한 일상의 틀을 벗어나 넓은 창공을 훨훨 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봄까치꽃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 때는 몽골로 돌아가는 기러기를 부러워하다가, 황백색 회화나무꽃이 필 무렵이면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되고 싶다고도 한다.
그러다 차나무꽃 피면 하얀 별풍선에 웃음을 가득 싣고 은하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맏딸로 태어난 아내는 어린 시절, 속절없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보고 속상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동생들과 오밀조밀 자라면서 콩과 팥을 구분할 정도의 눈썰미가 갖춰지면 농사일을 도왔다고 했다. 그렇다고 엄청난 전답을 가진 부자도 아니었다. 외할아버지로부터 받은 갈치등더리 만한 논과 손바닥처럼 귀여운 밭떼기로는 그 많은 식구가 먹고살기엔 역부족이었다. 거기다가 장인 어르신은 낙천적이어서 점심 드시고 아무리 바빠도 낮잠 한숨은 관례였다. 오히려 장모님께서 더 바지런하셔서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하셨다 한다. 오래 뵌 건 아니지만 장인 어르신은 농사지을 폼이 아니셨다. 그보다는 면 서기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훤칠한 외모에다 인정이 많아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급부행정에 어울리시는 분이셨다. 빈농의 아들이니 본인 곳간에서 인심을 쓰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아내는 그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쌀밥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 이, 삼 년마다 생기는 동생에 질렸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었을까. 언젠가 속세와 인연을 끊으려고 스님을 찾아뵌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스님은 출가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9남매의 맏이를 거두는 것은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며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거룩하신 뜻과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최근에 아내와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추진하던 일이 하나 있었다. 장인 어르신의 국립호국원 이장인데 두 번의 보훈처 심의에 상정되었지만 확실한 입증이 되지 않아 조만간 비대상으로 결론 날 확률이 높아졌다. 우리가 작년부터 1년 이상 준비해 오던 숙원 사업이었다. 이장 여부에 따라 우리가 모시고 있는 장모님의 향후 유택을 어디로 해야 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절히 원해서 그런지 아내는 어느 날, 장인 어르신 꿈을 꾸었다.
내용은 이랬다.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러 가겠다고 천상문을 두드렸다. 하늘을 지키는 문지기가 작은 문으로 나와 ‘볏짚을 가져왔는가?’라고?’ 물었다.
문을 통과하려면 고향 논에서 가을걷이한 볏짚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미처 준비하지 못해 다시 인간세계로 내려와 외양간에서 잘생긴 황금빛 볏짚 한 가닥과 여분으로 두 가닥을 챙겨 넣었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문지기에게 볏짚 하나를 보여주니 드디어 출입이 허용되었다. 천상계의 대문이 열렸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지나가는 선녀에게 아버지 함자를 내밀었다. 친절하게도 아버지의 집까지 안내해 주었다.
명패가 있었다. 틀림없는 아버지 함자 김성로가 보였다. 한문으로 金聖魯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라 심장이 터질 듯 빨리 뛰었다.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외출하셨는지, 낮잠을 주무시는지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번 눌러보았다.. 그래도 감감무소식이다.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자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가실 확률도 있었다. 그래서 문지기에게 돌아와서 사연을 얘기했더니 다른 사람을 찾으려면 볏짚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두 가닥을 예비로 가져오길 참 잘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번째 볏짚을 문지기에게 건넸다.
다시 출입을 허용받았다. 할머니 박두술을 찾기 위해 이번에는 선남에게 물었더니 아버지가 계시던 곳의 반대편으로 안내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반응이 빨랐다. 할머니를 만나면 포옹하며 가슴을 헤집고 파고들 상상을 했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 안부를 물을 참이었다. 모자지간이니 당연히 아들 근황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다. 만일 아버지가 할머니 댁에 놀러 와 계신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다. 이름도 박두술이 분명하다고 했다.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나는 다시 천상문을 나와 할아버지를 찾기로 했다. 그러나 존함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분의 볏짚 한 가닥이 남았지만 할아버지 성함을 몰라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인간세계로 내려왔다. 할머니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곰곰이 꿈을 돌이켜 보았다. 실수가 하나 있었다. 할머니 성함을 잘 못 말했다. 박두술이 아니라 권두술이었다.>
아내의 꿈 얘기를 듣고 나는 아내를 위로했다.
비록 아버지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명패를 확인했고 조상님 얘기가 꿈에 나온 것만이라도 좋은 일이니 순리대로 받아들이자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하얀 별풍선을 타고 어느덧 은하계를 향해 다시 날아오르고 있었다.
(23.6.07)
첫댓글 사모님이 9남매의 맏이라면 평생 양가의 짐을 지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일심동체로 양가를 돌보심은 귀감이 될만합니다. 양가의 존경받는 어른으로 남으시고, 행복한 여생되시기 바랍니다.
꿈과 현실은 다르지만 늘 마음에 두면 현몽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