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 옆 원단가게 사장님은 둘둘 말아 놓은 천을 풀어 보여주시는데 아득한 바다가 출렁대는 줄 알았어요
바위에 붙어 있는 게 굴만 있겠어요 저기 좌판 한 자리에 앉아 수십 년 동안 곰피를 팔아 온 할머니 손등 위에 물결무늬가 깊게 새겨졌네요
흥정은 늘 미끄럽기 마련이지요 손 안의 물고기처럼 자칫하면 놓쳐버리고 말아요
하루하루 쳐지는 나의 감정도 얼음조각으로 덮어 놓으면 조금 더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바위에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파도 물길을 잃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요
골목의 해류를 따라가다 보면 지느러미를 펄떡이는 물고기들
나는 잊었던 기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출처: 전북일보(https://www.jjan.kr) ----------------------------------------------------------------------------------------------------------------------------------------------------------------- 속이 보이지 않는 것은 싱싱해요 벌려지지 않는 조개는 살아 있는 거래요
시를 읽게 만들려면 첫 행의 시작을 잘 해야한다고 배웠습니다. '활어'의 이미지를 가져오기 위해서 '싱싱하다' '살아있다'와 같은 표현을 가져왔습니다. 조개를 주우러 가 보면 죽어있는 것들은 모두 입을 벌리고 있지요. 입을 앙 다물고 있어야 살아있는 겁니다.
나를 단단히 여미고 싶을 땐 시장에 가요
자 이제 시인은 '시장'이란 단어를 가지고 옵니다. 본격적으로 시장에 대해서 적겠다는 거죠. 시장도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단단히 여미고 싶을 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위의 2행에서 '벌려지지 않는 조개'와 이미지가 닿아있습니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시장에 가는거죠. 한 연도 한 행도 그냥 허투루 쉽게 적지 않았다는 게 보여집니다.
횟집 옆 원단가게 사장님은 둘둘 말아 놓은 천을 풀어 보여주시는데 아득한 바다가 출렁대는 줄 알았어요
횟집 옆 원단가게 입니다. 횟집의 물고기들이 바다에서 온 것이니까, 천이 출렁거리는 모양이 바다를 닮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냥 바로 횟집 얘기만 하면 뭔가 조금 싱거운 것 같은데 바다를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단가게에서 가져왔습니다. 옷 가게에서 주름 치마를 가져와도 되고 어물전에서 미역 주름을 가져와도 되겠죠.
바위에 붙어 있는 게 굴만 있겠어요 저기 좌판 한 자리에 앉아 수십 년 동안 곰피를 팔아 온 할머니 손등 위에 물결무늬가 깊게 새겨졌네요
바위에 붙어 살아가는것은 굴만 있는게 아니죠. 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좌판 할머니나 바위 옆의 굴이나, 그 비유가 정말 살아있습니다. 할머니 손등 위의 물결 무늬는 역시 파도의 물결이겠지요.
흥정은 늘 미끄럽기 마련이지요 손 안의 물고기처럼 자칫하면 놓쳐버리고 말아요
시장에서의 흥정은 물고기 처럼 미끄럽습니다. 거래가 되겠다 싶지만 어느 순간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죠.
하루하루 쳐지는 나의 감정도 얼음조각으로 덮어 놓으면 조금 더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살아있던 물고기가 펄떡이는 대야에 시원한 바닷물과 더불어 얼음조각이 둥둥 떠 다닙니다. 아니면 금방 죽은 생선위에 얼음을 얹어 신선하게 유지하려고 합니다.
바위에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파도 물길을 잃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요
인간들은 늘 길을 잃지만 파도는 물길을 잃은 적도 없네요. 우왕좌왕하는 인간들에 비하면 자연은 늘 그대로입니다. 꾸준히 한 길을 가는 파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골목의 해류를 따라가다 보면 지느러미를 펄떡이는 물고기들
골목의 해류는 물론 시장 안이겠지요. 시장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좌판을 펼쳐놓은 사람들. 시장에서의 하루가 펄떡입니다. 삶의 활기를 잃었다면 시장에 가 볼일입니다. 살아있다는 걸 확연히 느낄테니까요.
나는 잊었던 기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단단히 자신을 여미기 위해 시장에 왔던 시인은 이제 활기를 찾았습니다. 다시 살아가야할 이유를 시장에서 찾았습니다.
바다를 시장에 비유하고, 바다에 사는 활어를 시장에서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의 활력과 비유한 글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시장에 갈 때마다 유심히 시장을 관찰했을 거예요. 이런 생동감은 무엇인가? 그걸 활어로 끌어낸 작품입니다. 깊은 사유가 좋은 작품을 만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