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머리 고등학교 삼 학년 일곱 명이 모여서 새끼손가락에 흠집을 내고 피를 소주잔에 모았다. 그리고 각각의 술잔에 피를 나누어 넣었다. 하얀 소주잔이 연분홍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잔을 부딪치며 소리쳤다.
“빅 브라더스, 건배!”
그리고 나에게 ‘대송’란 호를 지어 주었다. 일반고생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졸업 후 방산업체에 입사해 오 년 이상 근무하면 군대에 가지 않는 특목고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대학 진학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한마음’이라는 시모임을 함께 하며 시를 논하고 자신의 습작을 가져와 토론했다. 여름방학이 되기도 전에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취업이나 실습생으로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특목고 삼 학년은 말이 고등학생이지 사회인과 비슷했다.
일반고 학생은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위해 밤낮으로 공부할 때 낮에는 일을 하고 주말 저녁엔 친구집에 모여 술을 마시며 인생을 논했다. 지금 생각하면 개똥철학이지만 그때는 전부였다.
술을 마시다 우리는 주어진 길을 거부하기로 했다. 정해진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진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하지 않은 공부, 부모님 설득, 대학 등록금 문제 등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고 무조건 진학하자고 잔을 부딪쳤다.
“빅 브라더스, 가자!”
여섯이 진학하고 한 명은 취업했다. 모임마다 술이 따라다녔고 술은 자연스럽게 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계엄령이 선포되고 시국이 어지러웠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장이 되었다. 우리는 막걸리를 마시며 시국을 논하고 우리와 선배들의 진로를 토론했다. 고향에 내려와도 텃세나 선후배 간의 갈등으로 심심찮게 다툼이 일어났다. 그냥 못 본 척하면 될 일을 성인군자인 척 뛰어들어 같이 뒹굴기도 했다. “그래 군대나 가자”
군 복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입학했으나 병장으로 제대했다. 아직도 힘들거나 아플 때면 입대 통지서를 받는 꿈을 꾼다.
대학 사 학년 때는 지도교수님 댁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진로에 대해 의논했고 결국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회사에 입사했다.
민주화 요구와 파업이 열기를 더해 갈 때 현장 기사로 근무했다. 생산과 품질향상을 위해 뛰어다녔고 동기들과 제품개발을 위한 일본 연수을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연수를 위한 보안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교직 발령 통지가 와 있었다. 고민 끝에 교직을 선택했다. 나로 인해 연수 기회를 날린 동기와 기회를 준 사장님께 미안하고 죄송해서 술을 마셨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요구는 회사와 달랐다. 회사는 실적을 수치화하여 그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데 교직은 복합적인 요소가 많아 성과를 수치로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교직은 미성숙한 인간의 발달을 돕고 공적인 사업으로 봉사 정신이 필요하며 일의 성과는 현재가 아닌 미래, 내가 아닌 타인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교과 지식과 인간 발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학생의 발달을 돕는 전문가로서 자질도 요구했다.
교직의 생활은 학생과 학부모, 동료 교원과 상호 작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술을 먹는 기회가 많았고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인해 동료에게 사과한 적도 있었다. 교직이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같이 해보자”라는 선배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삶을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먹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보다 힘든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술을 적당하게 먹어가며 즐겁게 살자”라며 술을 삶의 윤활유로 생각하며 살았는데 적당하게 먹지 못한 것 같다. 아내는 “술에 진 사람. 술만 먹지 않으면 최고인 사람”이라 한다.
몇 해 전부터 오른쪽 귀에 온 이명과 함께 살아가자니 맑고 청량한 머릿속이 그립기만 하다.
“그래, 나도 한번 최고가 되어보자”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스며들어 나의 생활을 지배한 불청객인 술을 이제 돌려보낸다. 그리고 다른 세상을 맛보려 한다.
2024.11.17. 김주희
첫댓글 술에관한 이야기 잘읽었습니다
술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불청객 가고 나면 좋습니다. 새로운 삶을 글 읽고 글 쓰고 힘차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