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억울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사형 집행관이 사형수에게 물었다.
"나는 결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억울함을
아실 것입니다."
아내를 죽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대에 선 피고인은 그가
처음부터 절규했던 말, "나는 억울하다."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후 진범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1960년대 영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영국은 그 후 사형 제도를 폐지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흉악범에 대한 사형이라는 형벌은
꼭 필요한가? 사형은 생명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가?
① 사형은 흉악범에 대한 응징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 따라서 합헌이다.
② 사형은 형벌로서의 효력이 없고, 남용과 오판의 가능성 그리고
인도적 이유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 위반이다.
정답
어느 것이든 정답이 될 수 있다.
설명
사형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므로 형벌 중에서 최고의 형이고
그런 의미에서 극형이라고 한다. 사형은 그 형이 확정되면 법무부 장관의
집행 승인을 받아 교도소에서 교수하여 집행한다.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을
제정한 당시에 사형을 형벌로서 인정할 것인가 여부에 대해서 깊은 검토 없이
무비판적으로 도입했다.
현재 사형이 법정형으로 규정되어 있는 범죄는 형법에서 살인죄 등 약 20여 개의
범죄에 이르며, 국가보안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특별 형법에서는
약 50여 개에 이르고, 군형법에서는 약 40여 개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사형은
연간 약 20여 건 이상이 법원에서 선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도 부족해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인 물의를 빚는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인을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에 쫓겨 사형의 범죄 수를 추가해나가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사형에
관한 한 최후진국이며 세계적으로도 이미 사형의 남용 국가로 악명이 자자한 형편이다.
'사형을 형벌로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존폐의 논쟁은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왓다.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이탈리아의 체사레 베카리아는
1764년 그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최초로 사형의 폐지를 주장했는데, 그 후
서구 사회는 사형의 존폐에 관한 치열한 논쟁을 거치게 되었고 1846년 미국의 미시간
주에서 사형을 폐지한 이래 현재까지 사형 폐지국 또는 사형 제도는 있으나
집행을 하지 않는 준폐지국는 140여 개 국가에 달한다.(<2014년 엠네스티 연례 사형
현황 보고서> 참조)
사형 폐지 국가들의 면모를 보면 이른바 선진 국가들은 대부분 이를 폐지한 데 반해 아시아
아프리키의 후진 국가들, 독재 국가들이 사형을 존속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형은 폐지해야 되는가? 참고삼아 존계론의 논쟁을 살펴보자.
'존치론'의 골자는 다음이다.
첫째 사형은 생명을 박탈하는 극형이므로 일반인에게 겁을 주어 범죄 억제의 효과(위하력)가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둘째 살인이나 강도 강간, 강도 살인, 유괴 살인 등의 흉악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사회적 정의라는 것이다.
셋째 사형은 국민들이 확실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형은 인도적 이유에서 존치시킬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일회적이며 때문에 한 인간의
생명은 우주의 무게보다 무겁고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뿐인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인도적 견지에서 허용될 수 없다.
둘째 사형은 종교의 견지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절대자, 조물주, 하느님만이 허용한
것이며, 생명을 줄 수 없는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말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즉 인간이 형벌이라는
미명으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
셋째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되어 허용해서는 안 된다.
넷째 형벌의 본질은 죄를 범한 범죄인을 교육하고 교회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인데,
교육과 교화를 근원적으로 포기하는 사형은 형벌의 본질에 반하는 제도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다섯째 사형은 존치론자들의 맹신, 확신하는 것처럼 범죄 억제의 효과가 없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 사형 폐지 후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흉악 범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일치된
통계가 입증하고 있다. 사형이 일반인에게 겁을 주어 흉악 범죄를 억제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미신일 뿐이다.
여섯째 사형은 오판에 의해 저질러질 수 있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 존치론자들은 오늘날의 형사
재판은 철저한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지만, 수사와 재판에
임하는 검사나 판사도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며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인간은 선입관
고정 관념, 편견에 사로잡히기 일쑤이며, 모함, 무고, 위증, 증거의 조작 등 인간의 판단을 그르칠 수 있는
오판의 요소는 도처에 존재한다. 인간의 어떠한 재판 제도를 갖고 운영하든지 간에 무죄한 자를
사형장으로 보낼 가능성 앞에 모든 인간은 전율하고 겸허해야만 한다. 오판으로 인해 사형이 집행된
경우에 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오판의 가능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형은 폐지할
근거가 충분하다.(참고: 1965년 영국이 사형을 폐지하게 된 결정적 배경도 오판으로 인해 무죄한 자를
처형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곱째 사형은 지배자, 권력자, 독재자 등에 의해 남용되고 악용되어온 대표적 형벌이므로 폐지해야 한다.
사형은 지배자가 자기의 정적이나 반대자를 단숨에 침묵시키고 제거할 수 있는 효율적 수단으로 악용되어온
것은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엄연한 사실이다.
여덟째 사형은 불공평한 제도이므로 폐지해야 한다.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에 대한 연구와 분석에 의하면
사형수는 대부분이 '약자'다. 즉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 지위가 있는 자보다는 없거나 낮은 자, 교육을 받은
자보다는 못 받거나 덜 받은 자, 백인보다는 흑인이나 유색 인종이 더 많다. 같은 살인을 했어도 강자보다는
약자가 사형에 의해 희생된다. 이것은 정의도, 공평도 아닌 엄연한 차별인 것이다.
그리고 사형 폐지론자들은 사형 폐지의 대안으로서 종신형을 제안하고 있다. 종신형으로도 범죄의 예방과
억제, 범죄인의 교정과 교육, 피해자의 본노 등 모든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참고로 우리나라가 1990년 7월 10일 가입한 유엔 인권 규약(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서도
사형의 폐지를 권고하고 있으며, 사형을 부득이 인정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형은 '가장 중요한 범죄'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사형이 법률상으로는 폐지되지 않았으나, 1997년 이후
사형수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 또는 '준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제15대 국회 이후 계속해서 사형 폐지 특별법이 발의되고 있다.
결론
사형의 존폐는 국가의 정책적 결단에 달린 문제이고, 개인에게는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어느 것이든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사형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