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첫만남>
"할머니, 전 여기가 좋아요.
이제 어느정도 자리가 다 잡혔는데 이제와 그러시면 절더러 어떡하라구요....
네, 네....저 이만 학교가야 되요. 끊을게요..."
휴우.......
아침을 긴 한숨으로 시작해야 하다니. ...
왜 갑자기 내려오라 하시는 거지?
몇년을....잘 해왔는데.....
이제야 겨우 혼자 서는 법을 배워가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친척들은 할머니가 계신 부여로 내려와 함께 살길 바랬다.
아무래도....엄마 흔적이 자꾸 눈에 띄면 너만 힘들지 않겠냐며....
하지만 난 서울에 남았다.
오히려 엄마 흔적이 많아, 이곳이 더 좋다고.
엄마와 함께 갔던 시장의 순두부가게도 그대로 있고, 주말이면 나란히 목욕가방을 짊어지고 향하던 목욕탕도 그대로고, 가끔 잠안올때 맥주한잔씩을 기울이던 작은 호프집도 여전히 거기 있으니까..
그런 이동네를, 지금 할머니가 등지라 하고 있는거다.
할머니는 전형적인 충청도분이시다.
유교사상이 상상도 못할만큼 뿌리깊게 박힌 부여란 땅에선, 아직도 남녀가 겸상하는 일이 드물다.
아니, 적어도 우리 외갓집만은 그랬다.
여자는 그저 다소곳이...지내다가 좋은남자 만나서 시집만 가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우리 할머니...
원래 친손자 외엔 거들떠 보시는 일도 없지만, 난 가여운 년이라 그런가.
할머니는 나한테 만은 관대하고 자상한 편이시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외손녀한테만은.......
"으악~~~"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된거지?
잡념은 시간잡아먹는데 일등이라더니.....어느새 시간이.....
이러다간 꼼짝없이 지각이군.
아..가만...가방이 어딨지...? 양말은 어디간거야.......
이 좁아터진 원룸에서도 이렇게 숨을 곳이 많았나....? 젠장....
'뛰어야 해.
지각하면 그 공포의 '여고괴담'이 또 쓰레기를 잔뜩 주우랄거야.
아침부터 쓰레기와 뒹굴순 없어. '
있는힘을 다해 뛰었다.
다리가 안보일 정도로. (만화를 많이 본 사람만이 상상할수 있다. 다리가 원을 그리며 뛰는장면.)
버스정류장까지만 가도 안정권인데....란 생각으로 코너를 돌때였다.
퍽!
"아야!"
-----------------------------------------
<선진- 첫만남>
퍽!
아....뭐야.....골목에서 과속하는 인간은...?
"괜찮으세요??? 죄송해요....제가 지금 좀 바빠서....죄송합니다~~~~!"
헉...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코너에서 미친듯이 달려와 나와 정면으로 충돌한 아이는 죄송하단말만 하고 쏜살같이 내뺐다.
이건....엄연한 뺑소니다.
첫출근 아침부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응? 근데 저건 뭐지?'
나가 떨어진 내 핸드백 옆으로 작은 가죽지갑이 보였다.
그렇다면...저것은.....
사고현장(?)에, 범인이 남겨둔 단서..!!!
똑딱소리를 내며 지갑이 열리자 바로 주민등록증이 보였다.
주민등록증을 살짝 꺼내자 그밑에 딸려 올라오는건, 학.생.증.
짧은 단발머리에 동그란 눈, 작은 얼굴에 살짝 치켜올라간 입술끝이 상당히 귀여운 여자애였다.
성신여고???
'우리 학교잖아...? 3학년 7반 이재정????'
후후.
이걸로 단서는 충분하다.
파렴치한 뺑소니 소녀....기대하시라.....죄인의 말로는 처참하리니....
-------------------------------------------------
<재정-버스안에서>
아...아까 부딪힌 충격으로 아직 오른쪽 어깨가 좀 쑤시는듯 하다.
부딪혔던 아가씨한텐 좀 미안하긴 해도,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걸...
이해해 줄거야.....(늘 이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아. 버스왔다! 잘하면 안늦겠는걸...?? 가만....근데...지갑이 어디있지....????'
지갑의 행방을 생각해내기도 전에 정류장의 푸쉬맨들은 가차없이 내몸을 밀어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하자 나도모르는사이에 난 버스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갑은 아까 부딪히면서 떨어진듯하다.
나도 나지...어떻게 손에 들린걸 잊어먹고 올수가 있담???
이걸 어쩌지...? 아저씨한테 사정을 해볼까....? 난 이버스 매일 타는데...
하고 운전사 아저씨 얼굴을 흘낏 보니, 터미네이터도 그보단 더 정감있게 생겼을거다.
아무래도 기사아저씨는 포기하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보려 뒤를 돌아보니,
헉.
그들의 눈은 내가 입구를 떡하니 막고있는데에 대한 분노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저씨, 둘이요~"
어랏? 그때였다.
생전 처음본 아줌마가 (여기서 아줌마라 함은 '선진'이다. 이 엄청난 말실수에대한 책임은 나중에 추궁토록 한다.) 내 버스비를 내주는게 아닌가?
"아..저...감사합니다....지갑을 잃어버려서 당황하고 있었는데...."
"아니에요. 살다보면 그런 사고가 생기잖아요.
지갑을 잃어버리고 그냥 버스에 탄다거나....사람하고 부딪히고 뺑소니를 친다거나..."
"네?"
"아, 아니에요. 후훗 ^ ^"
이상한 아줌마였다.
어디선가 본것같긴 한데........
낮은 코에, 외커풀. 큰눈과 두터운 아랫입술...그런데로 뭉쳐놓고 보면 꽤 호감가는 얼굴이다.
아줌마 치곤 패션감각도 꽤 뛰어나군. 봄분위기 물씬 나는 비취색 바지 정장이라....
푸훗. 근데 아무래도 머리가 좀 커. 히히.
아무튼 이아줌마 덕에 위험은 넘겼으니까. 후후.
그러나,
이것이 그아줌마(?)와의 두번째 만남인줄은,
그리고 엄청난 세번째 만남이 재정을 기다리고 있을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첫댓글 운영자님도 글을쓰는군요 몰랏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