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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예수님과 함께
고린도전서 12:3-13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와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부터 성령강림절기가 시작된다. 주님의 부활 50일째를 맞는 날은 구약시대의 명절 오순(五旬)절과 일치한다.
이날은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다. 성령강림절이라는 새로운 절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강림의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도행전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수님은 십자가 이전과 부활 이후 여러 차례 성령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성령강림의 현장에 120명이 함께 하였고, 이를 외국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 순례자들이 지켜보았다.
이제 바야흐로 성령강림절은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다. 올해의 경우 교회력 끝 주일까지 26주일 동안 지킨다. 꼭 한 해의 절반이다. 특히 후반부인 9월부터는 창조절을 병행하여 지킨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달력을 사랑한다. 하루하루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달력은 얼마나 중요한가?
긴 성령강림절 동안 그리스도인다운 일용할 영성, 일상의 영성을 통해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영적 성장과 성숙을 꾀하기를 바란다.
1)
예수님은 성령을 말씀하실 때에 성령의 여러 가지 성격을 가르쳐 주셨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보혜사 성령’이고, ‘진리의 성령’이다. ‘진리의 예수님과 함께’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집중훈련하는 마지막 자리에서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평화와 함께 증인의 사명을 말씀하셨다. 두 가지 모두 제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자기 마음조차 평안을 유지하기 힘든 제자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주님의 평화를 전할 수 있을까? 또 종교 권력의 위협과 우상숭배의 풍조가 만연한 세상에서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인이 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주님의 평화와 증인의 사명을 당부하신 직후에 이어서 강조하여 성령을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요 20:22), 또 “위로부터 능력”(눅 24:49)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행 1:8)을 말씀하신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주님의 평화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이 강림하셨고, 우리가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듯이 제자들은 주님의 평화와 함께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목숨을 걸고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고, ‘진리의 성령’이다.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 9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모두 같은 성령이다.
보혜사는 라틴어(fortis)로 ‘용기와 힘을 주시는 분’이다. 이제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든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경험할 수 있다. 진리의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신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차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영을 자기 사람들에게 전해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성령의 첫번째 선물은 믿음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이는 성령이 내 안에서 활동하신 결과이다. 내가 믿음으로 사도신경을 암송하고, 고백하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 덕분이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어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을까?
바울은 말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일’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 불가능하다. 누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는 그 믿음은 이미 성령이 내주(內住)하셔서 활동하신 결과라는 것이다.
2)
성령의 선물의 첫 번째가 믿음이라면, 두 번째는 은사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한 말씀을 우리를 향한 교훈과 경계로 귀담아 듣고, 명심해야 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신비하고, 초월적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성령 체험을 이교도와 같이 황홀경에 빠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한다. 이교도는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 사랑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은사(恩賜)는 그리스어로 카리스마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의미한다. 보통 선물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선물을 가지고 있다. 확인해보라. 내게 주신 은혜의 선물은 무엇인가? 은사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라고 내게 주신 선물이다.
바울은 초대 교회의 대표적인 은사 9가지를 소개한다. 모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은사를 나열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싶은 것은 얼마나 다양한 은사가 있는가가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 분이 바로 같은 성령이라는 사실이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
성령은 ‘성령의 선물’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와 그 나라가 자라고, 꼴을 갖추고, 든든하게 하신다.
성령의 은사의 목적은 그 은사를 통해 ‘사랑의 섬김’으로써 자신과 세상을 바꾸어내는 것이다. 각 사람이 어떤 은사를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 은사를 주신 ‘성령의 뜻’이 더욱 중요하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가 몸을 사랑하여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듯이, 영적 건강검진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현듯 영적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머리와 심장 등에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을 대면 영적으로 제가 얼마나 건강한지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건 없을까요?”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적 건강은 성령과 동행하는 삶과 직결된다. 우리는 매 순간 성령의 교제와 은총을 우리의 삶 한복판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성령의 선물로 9가지 은사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로 9가지 상태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도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마 12:33)고 하시지 않았는가?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 5:22-23/새 번역).
지금 내 삶 속에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있는가? 인내와 친절과 선함으로 사는가?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사람인가? 그런 거룩하고 복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라.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이 나를 도우셔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하신다. 그 열매를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라. 가까운 이웃과 우리 사회에서 선한 영향을 나누면 좋을 것이다.
성령의 선물 세 번째는 공동체이다. 바울은 공동체, 즉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12)이 된 교회,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13)이 된 교회를 말하고 있다.
교회는 공동체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구별이나 차별이 없다. 한 성령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의미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주님의 사랑과 인격과 희생을 통해 형성하고, 유지된다.
성령의 선물인 다양한 은사는 공동체 안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은사는 서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것이지,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곳이다. 서로 존경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높이는 곳이다. ‘즐함우함’(롬 12:15)이 대표적이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3)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구원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죄인인 우리를 죄 없다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셔서 가능하게 되었다. 이를 신학 개념으로 ‘칭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믿음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 믿음은 성장해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지만, 그 믿음은 어린 아이에서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장하는 믿음을 가리켜 신학 개념으로 ‘성화’(聖化)라고 부른다.
성화는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과 신앙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인 새로운 집을 재건축하려는 것이 감리교회이고, 이러한 신앙운동을 통해 영적 부흥을 시작한 분이 존 웨슬리이다. 그 시대의 역사적, 시대적 산물이다.
존 웨슬리는 ‘진리의 예수님과 함께’ 신령한 집을 짓고, 영적인 삶으로 재건축한 분이다.
영적인 삶은 늘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배하는 생활, 경건한 삶을 통해 가능하다. 예배와 경건 생활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요,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내 삶을 고치고, 영적인 삶을 새롭게 한다.
과연 나는 어떤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사람인가?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는가? 그 속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는가? 성령이 없는 교회는 곧 빈 교회이듯이,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하지 않고, 그 은총 안에 살지 않는다면 몸은 멀쩡하나, 영적 생기를 잃은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부요하고, 풍성하여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은 그 성령의 힘으로, 내 안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적인 삶을 재건축한 존 웨슬리는 평생 경건한 생활 원칙으로 유명하다. 그는 “하루의 시작은 성경으로 시작하고, 하루의 마감은 일기로 끝낸다”고 하였다. 22세였던 1725년 4월 5일부터 88세를 사는 동안 평생 일기를 썼다. 그의 기록은 영적 유산이 되었다.
위대한 존 웨슬리의 회심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회적인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평생 하나님 앞에서 치열한 경건과 성찰의 삶을 산 덕분이다.
그의 이러한 경건한 생활과 신앙의 원칙 위에 하나님에 대한 은혜가 임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론의 종교를 은총의 종교로, 머리의 종교를 가슴의 종교로, 입술의 종교를 삶의 종교로, 의인의 종교를 죄인의 종교’로 전환 시켜 냈던 것이다.
성령강림은 겨우 1년에 한 번 기념하는 연중행사일 수 없다. 성령강림절기는 생명의 풍성함을 돕는 기간이다.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강림은 유일회적 사건이지만, 개인의 성령체험은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산 체험이어야 한다.
이것은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가능하다. ‘진리의 예수님과 함께’하기 위해 진리를 사모하는 뜨거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현실에서 경험되는 산 체험, 사랑에 목말라하는 간절함이 요청된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강림절기는 영적인 성장과 내면적 성숙을 꾀하는 푸른 절기이다. 돈 보스코는 영적 성숙의 과정으로 ‘일상(日常)의 영성’을 이야기한다.
일상의 영성은 매일매일 일상의 삶에 충실한 영성, 매일매일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영성, 매일매일 가족과 이웃에게 충실한 영성, 매일매일 주어지는 소소한 업무들에 충실한 영성, 더 나아가 매일매일 와 닿는 고통스런 상황들 즉 십자가까지라도 기꺼이 수용하는 영성이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풍성한 선물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