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진주군 문산면 일동(一洞), 이동(二洞), 조동면 갈전동( 洞面葛田洞), 속사동(束沙洞) 각 일부로서 소문리(蘇文理)라 하였다.
관 정 : 지금의 성당(聖堂)터는 본시 관가였다고 한다. 그 안에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관정이라고 하였다 한다.
깽 문 : 일면일촌(一面一村)으로 초가집이 많기로 유명하였던 곳이다. 이 마을은 두방사(杜芳寺) 골짜기에서 성시골을 지나 일동네를 거쳐 이 동네, 삼동네의 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문산천(文山川)이 있는데 언 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 마을에서는 깽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극심한 가뭄을 당하게 되면 민속놀이보다도 오히려 기우제(祁雨際)의 행사 (行事)로 이 깽문에서 줄싸움을 할 때만 필요하다는 웃몰(윗마을), 아 랫몰(아래마을)로 옛날부터 편이 갈라져 있다. 웃몰은 청룡이고 아랫 몰은 황룡이다. 양편에서는 여러날 걸려 마을에서 모여진 볏짚으로 새끼줄을 한데 뭉쳐 만들어진 용줄을 뻗쳐 놓으면 크기가 용머리 줄 의 너머에 서있는 장정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길이는 200m을 넘는 큰 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룡, 황룡 줄은 양편에서 동원된 장정들 이 어깨에 메고 가뭄에 마른 깽문 싸움터까지 운반된다. 이때 흥이 오른 장정들에게서 용연가(龍緣歌) 앞소리가 터져 나온다. "우이야허 허 우이야허허 우이야 소리 잘도한다. 용왕전에 들리도록 큰소리로 외쳐주소.우이야허허 우이야 허허 청룡 황룡 목이말라 비를 빌며 슬 피운다."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후렴을 외치는 그 오중창이야 말로 가 관이 아닐수 없다.
이렇게 운반된 양편의 줄은 용머리를 마주대고 동서로 뻗쳐놓는다. 기둥만한 참나무 비녀로 청룡과 황룡의 머리를 끼워 줄을 연결시킨 즉시 어느쪽이 먼저랄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하여 줄을 당기기 시작한 다. "우여차 우여차" 응원 깃발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태산이 무너지 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싸움은 시작된다. 이 순간이야 무슨 잡념(雜 念)이 있을손가? 다만 줄만 당길 뿐이다. 평소 바깥 나들이고 하지않 는 부녀자들도 줄이 끌러 갈세라 치마폭에 돌을 담아 줄 위에 깔고 앉기도 한다. 밀리고 당기기를 밤낮이 없이 계속되고 하루밤 지새면 죽단지와 밥함지, 막걸리 통이 줄을 잇는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웃 몰(청룡)측에는 머릴 함안 군북 마산 등지에서, 아랫몰(황룡)측에는 진주 사천 삼천포 등지에서 많이 모여와서 응원하면서 구경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은 쉴 사이없이 줄을 당긴다. 그 큰 줄이 덜썩 덜썩 깽문 바닥을 흔들고 너나 할 것 없이 구경꾼들도 달려든다. 그러는 중 난데없이 하늘에는 먹구름이 모여들고 순식간에 소낙비가 쏟아지 고 수라장같은 줄싸움판은 끝나고 꾕과리,징,장고 소리에 맞추어 목메 어 부르는 "쾌지나 칭칭나네"로 적군, 아군, 남녀노소 할것없이 서로 엉켜서 울고 웃으며 놀이판이 벌어진다. "청룡,황룡 결연하니 먹구름 이 모여들고, 저 건너 알미봉에 비가 묻어 오는구나. 우장삿갓 챙겨라 논밭에 나가보자" 그렇게 술렁거리든 마을은 폭풍우 개인 뒷날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더냐는 듯이 조용해지고 평온한 농촌마을로 되돌 아간다. 전하여 오는 말에 의하면 문산 깽문에서 줄싸움만 하면 비가 내린다며 참으로 영감있는 줄싸움이라고 원근 마을까지 알려지고 있 는 사실이다. 줄싸움 이야기만 나오면 이 깽문이 나온다. 70년대 이후 줄 싸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성당골 : 1905년경에 천주교 문산교회가 설립되고 포교활동은 100여년 전부 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당은 1932년에 건립된 것으로 웅장 하고 건축양식 또한 서구식이다. 이후부터 성당골이라고 불려지고 있 다.
장 터 : 교통수단이 발달되기 전인 옛날에 문산 장날은 금산면, 금곡면, 진 성면, 일반성면, 정촌면 등의 중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상당히 성황을 이루었던 곳으로서 문산「장터」라서 생긴 이름이다. 문산 중 앙지를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