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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서울-인천에서 열리는 로잔대회는 세계 기독교는 물론 한국 기독교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도전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로잔대회가 제시하는 ‘총체적 복음 사역’의 비전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총체적 복음이란 무엇인가?
로잔운동이 강조하는 총체적 복음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총체적 복음은 인간을 전인적 존재로 본다. 이는 단순히 영적인 필요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예수님의 사역 방식을 모델로 하며, 인간의 총체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는 복음이 단순히 개인 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교회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는 방법이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 구조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변혁적 제자도를 추구한다. 이는 신앙이 개인의 내면적 경험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신앙과 일상생활,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로잔운동은 개인 간, 집단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복음이 단순히 개인의 구원을 넘어 사회적 화해와 정의 실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세계 곳곳의 교회가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참여하거나 분쟁 지역에서 평화 중재 활동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철폐 과정에서 교회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좋은 예다. 따라서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고려해야 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복음의 본질은 유지하되, 그 표현 방식은 문화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이러한 접근은 복음이 특정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모든 문화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임을 보여 준다.
또한 환경 보호와 생태계 보존을 위한 노력을 통해 창조 질서 회복에 힘쓴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돌보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만들어진 세상으로 인식하는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환경 문제는 단순히 세속적인 이슈가 아니며 신앙의 영역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로잔운동은 이러한 활동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중요시한다. 모든 믿는 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전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의 주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총체적 복음의 실천을 통해 교회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가 보다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교회가 사회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돼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총체적 복음 사역이 필요한 한국 교회
특히 한국 교회에 총체적 복음 사역이 더욱 필요하다. 우선, 최근 한국 교회는 여러 사회적 문제로 인해 신뢰도가 하락했는데, 총체적 복음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이를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젊은 세대는 교회가 사회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데, 총체적 복음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세대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더불어 총체적 복음은 개인의 영성 강화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가능케 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말씀 선포와 함께 사회 참여를 통한 선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이러한 접근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총체적 복음을 통해 한국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로서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인해 한국 교회에 총체적 복음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총체적 복음의 확대: 사회적 책임
이러한 총체적 복음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로잔 언약〉 제 5항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루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므로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별, 나이와 무관하다. 그리스도인은 정의와 화해를 추구해야 하며,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 교회는 사회의 양심 역할을 해야 하고, 불의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은 기독교 의무의 두 가지 표현이며, 둘 다 중요하다.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 등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로잔 언약〉 제5항이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이다. 한국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될 수 있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실천될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설교를 통한 공감대 형성
먼저, 교회가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면 교회 내적으로 충분한 공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설교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 교회의 설교는 교회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주제에 편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예배, 기도, 헌금, 봉사 등 주로 주일에 교회 내에서 이뤄지는 일에 주목한다. 이해, 공감, 용서, 사랑 등의 주제들을 다룰 때도 그 대상이 교회 밖이 아니라 주로 교회 성도 간 관계에 적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밖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평일에 몸담고 있는 더 넓은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설교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설교 주제의 편중은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이 교회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양육된 성도들은 교회 밖에서의 삶의 태도와 행동을 신앙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교회 안에서의 삶과 교회 밖에서의 삶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그리고 교회 생활에 더 열심일수록 이 간극이 더 크게 나타난다. 최근 이뤄진 한 설문 조사에서 많은 비그리스도인이 기독교를 ‘이중적’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한 것은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설교 주제를 정함에 있어서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균형을 이루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책임을 설교 한 편 전체의 주제로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한 편의 설교 안에서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렇게 균형 잡힌 설교로 양육된 성도들은 사회적 책임 또한 복음의 한 측면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적 차원의 실천
이렇게 설교를 통해 교회 공동체 안에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교회적 차원에서 책임 있는 활동을 함께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성도들에게 이런 공감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개인적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회가 공동체적 차원에서 함께 행동하며 그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교회는 재정과 인력의 차원에서 규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하기 힘든 일을 시도할 수 있으며, 개인이 시도했을 때와 비교할 때 더 크고 빠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지역사회를 돕고 기여하는 일에 이미 많은 교회가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개 교회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우리 교회와 규모와 재정 상황이 비슷한 교회에서 하고 있는 일 중에 효과를 보고 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도전해 보면 좋다. 이런 시도 가운데 더 다양한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시민 교육의 장소로 기능하는 것도 훌륭한 기여가 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와 소통의 부재다. 이는 성숙한 대화와 토론을 가능케 하는 시민 교육의 부재와 연결된다. 교육 기관은 대학 진학과 취업에 함몰돼 있고, 사회는 성공 블랙홀에 빠져 버렸다. 그 어디에서도 이런 시민 교육을 받기 어렵다.
한편, 교회는 오랫동안 시민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해 왔다. 교회는 공동의회, 제직회, 당회 등의 협의체를 통해 의사를 결정한다. 민주적 대의제로 운영되는 교회가 많다. 만약 교회가 평소에 이런 회의 절차를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면 그 교회에서 보고 배운 성도, 특히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사회에서 훌륭한 민주 시민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와 환대의 샬롬 공동체를 지향하는 기독교의 비전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작금의 교회가 이런 모습을 보여 주는가에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는다. 이런 회의 절차가 사라진 교회가 많으며, 설사 이런 회의 절차를 고수하고 있더라도 거의 요식 행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회의에 참여하는 대표자의 구성에서부터 민주적인지 갸우뚱한 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회는 먼저 교회 안에서 회의체의 민주적 구성과 회의의 민주적 진행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이는 교회의 질서와도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성도들이 대화와 타협 그리고 공의로운 결론 도출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 시민으로 양육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교회 건물 안에서 진행하며 지역 주민이 동참하도록 하는 것도 좋다. 다만 주의할 것은 교회와 목사 또는 성도가 주인공이 되고 지역 주민을 단지 들러리로 참여시키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 주민들은 금세 그 의도를 눈치챌 수 있고, 더 이상 교회의 초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환경을 제공하고 지역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 운영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개인 차원의 실천
이렇게 양육된 성도들은 또 각자의 삶 속에서 ‘평화의 사도’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의 갈등 요소에 대해 대화를 통한 해결을 모색한다. 이 사역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가족 구성원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를 만든다.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가정을 넘어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면서 샬롬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교회가 주최하지 않은 봉사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독교의 사랑을 실천한다. 직장에서는 정직하고 윤리적으로 일한다. 동료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차별이나 부당한 처우에 반대한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한다.
교회에서 시민 교육을 함양한 성도들은 시민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투표에 참여하고, 지역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현한다. 인권, 환경, 빈곤 퇴치 등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면서 사회 정의 운동에 참여한다. 통일 담론이 갈수록 사그라드는 상황 속에서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 논의를 적극적으로 형성, 확대해 가는 것도 분단 국가의 그리스도인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날 많은 지역 현안이 경제적 이익과 편의성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생명, 존엄 등의 가치관은 정책 결정에 낄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경적 윤리관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윤리적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한국 그리스도인은 로잔운동이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을 일상과 공공 영역에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변화로 시작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제4차 로잔대회를 위해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몇몇 보수적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부정적 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잔운동이 사회적 책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부정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포용주의와 종교통합운동을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로잔운동은 이미 공식 문서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로잔 언약〉 제5항에서 사회적 책임을 설명하면서 “물론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라고 언급하며 사회적 책임이 복음 전도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제3항에서도 “우리는 또한 모든 종류의 혼합주의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거부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잔운동의 이런 경향이 염려스럽다면, 참여를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 방향성을 제공하고 수정하는 데 힘쓰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표적 보수 신학 연구 기관인 기독교학술원의 김영한 원장은 최근 발표에서 “로잔운동의 총체적 선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를 사랑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함을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며 4차 로잔대회에 거는 기대를 표현했다.
앞에서 언급한 노력은 단순히 교회 밖 활동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이 땅에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진정한 ‘총체적 복음’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로잔운동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이 성찰하고,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