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일: 2016년 4월 15일 (금) 밤 11시 35분
부 제 : 추억
원 제 : The Way We Were
감 독 : 시드니 폴락
출 연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로버트 레드포드, 브래드포드 딜맨
줄거리:
다혈질인 케이티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많고 대학에선 청년 공산주의 연맹의 회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인 여성으로, 같은 대학에 다니며 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자신과 다른 성향을 가진 허블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반대 성향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대학 졸업으로 헤어지고 몇 년 후 한 무도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해군이 된 허블은 술에 취해 케이티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정치적 주장이 강한 케이티와 안정된 삶을 원하는 허블은 조금씩 충돌하게 된다. 극작가가 된 허블은 할리우드에 입성하고 극작가로 활동하게 되는데 극단적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할리우드 연예계 종사자 중 공산주의를 추종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치적 주장이 강한 케이티는 부당한 억압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려 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는 허블은 타협하려 한다. 이상이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결국 둘 사이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랑하지만 이별하기로 한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두 사람, 두 사람의 눈엔 아직도 사랑이 남아있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각자의 길을 간다.
주 제 :
주인공인 케이티는 자기주장이 강한 정치적 이상주의자로 멋진 외모에 스포츠에 능한 허블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다. 대학 때부터 허블의 매력에 끌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에게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지만, 점점 허블의 사회적 정치적 무관심에 실망하게 되고 허블 역시 케이티의 정치적 적극성을 감당하지 못해 두 사람은 결국은 이별을 선택한다.
이 영화는 서로 상반된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케이티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서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배우자인 허블이 할리우드 극작가가 아닌 순수작가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할리우드 극작가로 데뷔하자 그를 지지하고 곁에 있어 주는데, 1950년대 미국을 초토화 시킨 극단적 반공주의의 열풍으로 무고한 할리우드 연예계 종사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비난받는 사건이 생기자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허블은 케이티의 행동이 위험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케이티 역시 자신의 이상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별을 선택한다. 이 영화는 사랑과 의식 사이의 선택을 표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 함께 할 수 없지만 애잔한 사랑을 가슴에 간직한 주인공들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존재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감상 포인트:
이 영화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테마곡 ‘The way we were'로 우리나라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로, 실제 유대인이며 정치적 성향이 강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케이티 역할을 맡아 보여준 탄탄한 연기가 흥미롭다. 개성 있지만 미인이라고 할 수 없는 그녀와 전형적인 금발 미남인 로버트 레드포드를 주인공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영화가 더욱 현실감 있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주변 상황으로 인해 늘 굴곡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의 차이가 문제의 원인인데,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로 함께할 수 없는 사랑이 더 애잔하고 아쉽게 그려지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불어 닥친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유행했던 사회적 상황과 미 정부의 감시 통제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이에 맞서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괴로워하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내면 연기는 이 영화를 더 애잔하게 기억되게 한다.
감 독 :
배우로 시작해 제작자, 감독이었던 시드니 폴락 감독은 40여 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제작했으며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명감독이다. 1934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출생한 그는 고교를 졸업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폴락은 1952년부터 1954년까지는 뉴욕에서 연기공부를 했으며 군대에 다녀온 후 같은 학교에서 연기를 지도했다. 그는 제자였던 클레어 그리스월드와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인 스티븐은 비행기 사고로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던 그는 1960년대 텔레비전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영화 < War Hunt >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를 만난 후 평생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1966년 그의 영화 ’저주받은 재산‘에서 나탈리 우드의 상대역으로 로버트 레드포드를 출연시킨 후 6작품을 같이 작업했다. 그에게 가장 큰 성공을 가져온 작품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였는데 11개 부분에 후보로 오르고 7개 부분을 수상했으며 최고 작품상과 감독상이 이에 포함됐었다.
그는 코미디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보여줬는데 1982년 작품인 < 투씨 >를 통해 놀라운 위트와 감각을 보여주었고 < 투씨 > 역시 아카데미상 10개 부분에 후보로 올랐다. 꾸준히 활동하던 그는 2005년 < 인터프리터 >를 감독했는데 이 영화는 유엔 본부 내부에서 처음으로 촬영한 영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독했던 그는 2000년 전미감독협회에서 수여하는 ’존 휴스턴 상‘을 수상했는데 2008년 5월 암으로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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