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신앙과 생각과 가치관을 바꾸라!”
+ 본 문 : 빌립보서 1장 27절 - 30절 (신약 319쪽)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아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충전 배터리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자주 충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충전배터리라고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전배터리도 수명이 있어서, 수명이 다된 배터리는 아무리 오랜 시간 충전기에,
꽂아놓아도 축전(蓄電) - 전력이 쌓이지 않습니다. 모든 건전지가 다 그렇듯이,
축전지도 사용하면 전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그 때마다 다시 충전을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힘인 영력이 곧 전력에 해당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힘인 영력을 충전하는 시간이, 바로 예배시간입니다.
만일에 한번 충전으로 한 달을 쓴다든지, 일 년을 쓸 수 있는 배터리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요? 그러나 한번 충전으로 한 달, 일년을 쓰는 배터리가 없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한번 예배로, 한 달, 일 년을 쓸 수 있는 영적 힘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예배는 물론, 찬양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자주자주 드려야만, 그때 그때 필요한 영력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충전배터리와 같고, 예배시간은 충전시간과 같다고 했는데,
그러면 배터리 충전은 왜 합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크고 작은 전기제품들 가운데,
충전 배터리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카메라, 비디오, 시계,
컴퓨터, 계산기, 면도기, 전기차 등 등, 거의 대부분 전자제품에 배터리가 사용됩니다.
충전해야 전력이 축전되고, 비로소 카메라도 쓸 수 있고, 시디, 휴대폰도 가동이 되고,
시계, 컴퓨터, 계산기, 면도기, 전기차 등 등을 사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든 배터리는 자기를 희생시켜서 불을 밝히기도 하고, 소리를 내기도 하고,
크고 작은 기계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작동시키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고 또 그분에게 예배를 드립니까?
복 받기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복이란 무엇입니까? 돈 잘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게 복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돈이 많아 매일 먹고 노는 부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다 복 받은 사람들입니까?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복은 돈이 많거나 먹고 노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알고 있다면 착각입니다.
여러분! 노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불행한 일인지 아십니까? 할 일없이 놀아보세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노는 것만큼 지겹고, 짜증나고, 쉽게 질리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먹고 노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큰 자극을 찾아 나서게 되고,
술, 도박, 주식, 게임, 마약에까지 손을 대면서 마음과 육체를 망치고 맙니다.
여러분! 이걸 아십시오. 진정한 의미에서 복은 일하고 봉사하는 데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봉사를 하다보면, 성취감도 생기고 보람도 느낍니다.
여기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서로 나누며 살게 되면 만족은 더욱 더 커집니다.
그렇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목적이 배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목적이 배터리를 배불리고, 배터리를 살찌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배터리의 목적은 그가 가진 전력으로 불을 밝히고, 기계를 작동시키는데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주일 예배당에 모여서 함께 찬양하고,
경배와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섬기는 목적도,
그것들을 통해서 영적인 힘을 충만하게 얻고, 세상에 나가 어둠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교회가 살고, 우리 자신도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광주에서 할인점을 운영하는 49세의 여인이 "악귀와 재앙을 쫓아준다는,
역술인의 말을 믿고, 7년간 2억 6,600만원 어치의 부적을 샀으나, 결혼한 딸이,
가정불화로 가출하고, 10억 여 원의 빚까지 졌다." 며 66세의 역술인을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를 했답니다. 부적은 악령이나 악귀 또는 여러 가지 불행을 막고 행운이나,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집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미신적인 도구입니다.
부적으로 쓰이는 재료는 다양하지만, 보통 우리가 부적 하면, 대개 한지에,
붉은 색으로 이상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손 바닥만한 쪽지를 말합니다.
붉은 색을 쓰는 이유는, 붉은 색이 태양의 상징으로 악귀를 쫓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이쪽지가 과연 불행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귀신이 그까짓 종이쪽지에 무서워 떨기라도 한다면,
불행을 겪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까짓 종이쪽지 몇 장 얻자고,
2억 6,600만 원을 날렸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입니까?
또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까? 그 돈 가지고 좋은 일을 했으면,
좋은 일해서 기쁘고, 자녀는 좋은 일하며 살아가는 가정에서 자랐으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올바른 인생관과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며, 돈도 있겠다, 가정이 그렇게까지 파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여인이 불행하게 된 이유는 돈이 없고, 사업이 안돼서도 아니었습니다.
그 여인이 불행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녀의 잘못된 신앙관 때문이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겪었던 불행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서? 아닙니다. 불행한 일을 겪지 않는 것이,
복이라면, 유대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더 많은 저주를 받은 민족일 것입니다.
또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많은 신앙인들은 어리석은 바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자손손 물림시킨 야훼신앙 때문입니다.
그 신앙에서 올바른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신앙관이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신앙과 정신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닥치는 불행을 극복하게 하였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고, 세계의 주목과 부러움을 사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서구 유럽사회가 앞서가는 문명을 이룬 것이, 지하자원이 많아서 입니까?
그렇다고 서구인들이 우리보다 머리가 더 좋아서입니까?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도, 우리보다 머리가 좋아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난 2천년 동안 대물림시킨, 위대한 기독교 신앙과 정신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다른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인구비율로 보아서 기독교인도 많고,
타 종교인도 많습니다. 종교를 갖지 아니한 사람이 그다지 많지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씨가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란,
책을 보면, 우리 한국을 "염치없는 나라" "무법천지 아, 대한민국" 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마모루씨는 "교통법규 지키시오. 아멘" 이란 글에서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묻습니다.
“그토록 기독교 신자가 많은 나라가 왜 나 같은 외국인한테서 '무법천지'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도대체 그 이유를 진실로 납득할 수가 없다.” 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관이 변해야 삽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변해야 우리나라가 삽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고 일렀습니다. 이어 빌립보서 1장 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복을 누리는 삶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도 달게 받는 것이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물질의 풍요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6장 1절에서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 했습니다.
또 7~12절에서는 땅이 비를 빨아 들여, 농사짓는 사람에게 유익한 농작물을 내줘야,
하나님께 복을 받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면 저주를 받아서 불에 타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오직 믿음과 인내로, 성령의 능력으로 열성을 다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시는 일을 할 때, 거기서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실로 추구할 것은 물질의 복,
그 이상의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결코 행복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로 돈이 없다고 불행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돈이 없으면, 많은 불편을,
겪습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 중에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돈의 노예이지 주인은 아닙니다. 돈 때문에 망한 사람도 많습니다.
돈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항상 가난합니다. 욕심을 부리는 한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은 현명한 사람에게만 행복을 가져다주지,
돈이 바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가난을 벗기는 했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팽배한 물질만능사상, 모든 게 돈이면 다 된다는 돈으로 통하는 한심한 사회,
삭막한 인간관계, 돈 때문에 황폐해진 환경, 등등, 너무나 잃은 게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고 고난도 달게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복을 받게 됩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신앙, 올바른 생각, 올바른 가치관으로,
진정한 건강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