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더 좋아하는 남자옷
지금 여자가 남성복 매장에 드나드는 건 남자친구 옷을 골라주거나 선물을 사기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직접 입을 옷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 두 손에 잡힐 것 같은 허리와 부러질 듯 가늘고 긴 팔과 다리의 남자 모델들이 스키니 팬츠를 입고 등장한 디올 옴므의 컬렉션 이후로 남성 컬렉션의 판도는 판이해졌다. 에디 슬리먼이 창조한 이 어여쁜 소년들은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데 주저하던 남성들이 지금처럼 당당해질 수 있었던 건 아마 이때부터였을 거다. 그리고 수많은 패션하우스에서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애매한 남성복 컬렉션을 쏟아낸 것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이런 ‘아름다운 남성복’은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새로운 부류의 남자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고, 동tl에 여자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남성복 사이즈는 여자가 입을 수 있을 만큼 (때로는 여자에게도 작을 정도로) 급속히 줄어들었고, 페미닌한 옷에 질색하거나 뭔가 좀 다른 옷을 찾던 여자들이 남성복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녀들이 남성복을 입는 이유는 크게 3가지 정도다. 허리 라인이 잡히지 않고 몸의 라인을 따라 뚝 떨어지는 시크한 라인과 불필요한 디테일을 덜어낸 간결한 디자인, 그리고 낯간지럽지 않고 위트 있는 포인트. 쉽게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아무리 한 사이즈 큰 트렌치코트를 골라도 여성의 것은 잘록하게 허리 라인이 들어가 있거나, 귀엽게 보이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둥근 칼라나 큰 단추가 붙어 있기 일쑤인데 남자의 것은 그런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없다. 그냥 담백하게 본래의 매력에 충실한 트렌치코트. 그런 트렌치코트를 사기 위해 여자들도 디올 옴므 매장에 간다는 거다. 이런 비슷한 이유로 여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남자 옷 브랜드는 디올 옴므 외에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스테판 슈나이더 등이 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남성복의 스몰 사이즈 티셔츠는 독특한 절개선이나 유치하지 않은 프린트로, 스테판 슈나이더의 재킷은 요란하지 않은 소소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템 1순위로 꼽힌다. 또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헨릭 빕스코브 남성 라인의 아기자기한 소품은 브랜드의 아방가르드한 매력은 유지하면서 여성 라인보다 절제되고 무심한 디자인으로 역시 여자들에게 더 사랑받고 있다. 국내 디자이너 정욱준과 최범석, 우영미도 여성들에게 더 인기 있는 남성복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이 만든 남성복 역시 아름다운 남성과 매니시한 여성의 매력을 합쳐놓은 것 같은 중성적인 모습으로 여자들의 지지까지 받고 있다.
- 에디터 : 이윤주
- 일러스트 : 김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