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판 해외까지 넘어갔다…예상치 못했던 K-오컬트의 기록"
이런 기사들이 연이어 나오고,
파묘가 천만이 넘었다는 뉴스가 나와서 맘이 급해졌다. 극장 상영이 곧 내릴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집 근처 메가박스에 예매를 해서 보았다~ N차 관람했다는 사람들도 많은거 보니 숨은 코드, 의미 찾는 사람들이 많은 듯~
유투버들이 나름 각자 생각하는 의미들을 보고나니 나도 다시 찬찬히 보고싶어진다~ ott 나오면 다시 봐야지뭐~
음양오행이니 무속, 굿, 보이지않는 존재들, 영적인 세계, 동양오술, 풍수,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ㅎㅎ
무라야마 준지 라고 이름을 교묘히 거꾸로 해놓은게 잼나기도 했는데
무라야마 지준에 관해서는 제라울의 언급이 있었던게 기억이 나서 관련 서적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이건 내용이 길어지니 따로 정리해서 올려야 겠음.
김고은 연기 너무 잘하고 이쁘고~ 이도현 너무 멋있음. 팔에 문신보니 나도 하고 싶어짐 ㅎ
MZ 무당 이라는 말이 나오던데.. 영화 내용중 도깨비놀이가 인상 깊었는지 영화 끝나고 나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두고, 자기들끼리 구수한 사투리로 재미난듯 돌아가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익살스럽기도 하고 살살 구슬리는듯 장난치는듯 홀리는듯 아슬아슬하다가 도저히 못참겠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대화에 참여하는 이도현의 연기가 굿~
오니에 대한 설명부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 대해 나와서 이걸 찾아봐야 했다.
그나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말 참외와 은어를 좋아했을까? ㅎㅎ
이 감독의 전작인 사바하를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게 봐서(3번 정도 본듯)
다음 영화도 기대된다 ^^
참참참! 한국 귀신과 일본 귀신 비교하는 말들이 영화에 나오는데. 이거 보는 순간 딱 이 글이 떠올랐음!
그럼 앞으로의 마구 방향에 대한 어림을 말할 것입니다. 대강이라는 거죠.
간단히 말하면 서구의 문화를 보면 화학제품 같죠. 그러니까 나무는 살아 있는데 나무를 잘라서 말려서 가공해버리면 나무의 생명은 없고 그냥 나무인 거죠. 정수랄까 핵심이랄까 생명이랄까 하는 그것이 빠진 건조하며 질척거림 없고 끈적임 없고 메마르고 간소화된 것이 됩니다.
그것이 과학을 만들고 산업을 만들고 세련되기도 하고 도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것에 우린 질척거리고 간단하지 않으며 생명을 느끼고 싶고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수량화해서 무미건조하게가 아니라 그 숫자에 얼마나 심장 떨리고 소중한 사람의 기억이 사연이 아픔이 정성이 있는지 아는가입니다.
과학이든 경제든 뭐든 수량화로 그 안의 우리들의 사연을 제거하니까요. 단팥 빠진 찐빵 같은 서구문화에 그 단팥인 심장을 마음을 감정을 영혼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우리의 귀신은 사연이 있습니다. 따돌리거나 경배하거나 죽어야 하거나 해롭거나 한 것이 아니라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남의 사연을 들어야 생명이 존중될 것이고 남의 마음 아픔을 알아야 인권이 성장될 것입니다. 우린 숫자로 계량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정성 들이고 신경 써야 할 마음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뽀나스 (tistory.com)
<세키가하라 전투>
(출처: 나무위키)
1600년(게이초 5년) 음력 9월 15일에 일본 미노국 세키가하라(지금의 기후현 후와군 세키가하라초)에서 벌어진 전투.
일본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를 가른 중요한 전투들 중 하나로, 이시다 미츠나리를 중심으로 뭉친 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한 동군 간에 벌어진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내전이다. 이 전투의 승자에게는 향후 265년간 일본을 지배하는 권력이, 패자에게는 죽음과 가문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규모면에서는 양군 통틀어 17만이라는 대군이 맞붙었고 역사적으로도 일본사의 큰 흐름을 결정짓게 되는 이 전투가 진행된 시간은 단 3시간에 불과했다. 한편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를 넓은 의미로 보아 동군과 서군 간 벌어진 일련의 내전을 총칭하는 것으로 하면 세키가하라 전쟁은 도호쿠, 호쿠리쿠, 규슈 등 일본 전국에서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전투 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여 도요토미 정권이 몰락하고 에도 막부가 수립되었고, 이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는 조선에게 사과서신을 보내며 유화책을 펼쳐 조선과의 관계가 상당히 개선되는 데다가 서군을 지지한 다수의 다이묘들이 가이에키당하여 멸문지화(가문자체가 망하는 일)되거나 전봉되는 등의 파급효과가 일어났으므로 정치적인 의의도 크다. 세키가하라 합전(合戰), 동서합전이라고도 부른다. 워낙 일본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투라서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세키가하라'라고 하면 일종의 '중대한 승부처'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합, 사건 등을 가리키는 관용구로 쓰인다. 창작물에서도 가끔 "이 곳이 우리의 세키가하라!"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시기적으로는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사(病死)로 인해 임진왜란(정유재란)이 종전한 지 2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 임진왜란 때 조선을 공격했던 가토 기요마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구로다 나가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토도 타카토라, 타치바나 무네시게, 우키타 히데이에, 모리 테루모토,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요시아키, 호소카와 타다오키 등 일본군 장수들이 다수 참전했다.
https://youtu.be/IoFnc3V4iOY?si=h5Cq9ckQkDZImRC2
https://youtu.be/8IaS54cdqIo?si=l1EaMXuAy8nIoA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