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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처럼 사라질 인생이 구원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순간을 사는 인생이, 영원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여쭈었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 10:17)
그는 정말 수준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에만 집중되어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는 먼 미래에 대해서도 다가오는 장래에 대해서도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결론, 핵심이 무엇인지 꿰뚫어 볼 줄아는 통찰력도 있는 사람같아 보입니다.
영생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할 기세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결말입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2)
그러게 간절히 원했으면서도 왜 근심하며 슬픈 기색을 띠고 뒤로 물러갔을까요?
그 스스로의 결단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영생에 이르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그의 결단이 정작 예수님이 그의 마음의 문제를 지적했을 때, 돈에 노예가 된 자신, 재물의 노예가 된 자신을 해방시켜 주시려는 주님의 제안에 대해서는 귀를 막습니다.
왜그럴까요?
사실은 그의 모든 동기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한 영생,
자신을 위한 신앙,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 마저도 수단으로 삼으려는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의 주체는 자신이었습니다.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계명을 잘 지켰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참으로 알고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참으로 알고 깨달으면, 그 사랑이, 그 사랑의 성령이 우리안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십니다.
내 뜻, 내 목적이 우선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천국이, 구원이, 하늘나라가 우리 신앙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또 하나의 금송아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목사들의 타락입니다. 성도위에 군림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슬픈 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닮아가면, 모든 것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모할 유일한 것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 개념을 잘 정립해야 하는데, 천국 가려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좀 맞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실하게 산 결과로 천국이 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천국에 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올바른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천국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하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분들에게 수많은 설교를 하면서 자주 사용하던 문장과 생각들이 있습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 경건을 연습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 "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 곧 향기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생명의 향기를 맡게 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는 그런 향기가 되라는 것입니다. 악취를 풍기지 말고, 사람들이 우리의 언행과 행실을 보고 "어떻게 저런 향기가 날까? " 감동하여 그들도 하나님을 믿도록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죠. 그다음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화목하라"는 말씀들을 제가 주로 많이 드렸습니다. 제가 많은 예언 강의를 하고 교리적인 것들을 말씀드리지만, 성경을 교리적·예언적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 출석 잘하는 것 중요합니다. 헌금을 후하게 드리는 것 중요합니다. 교회 일을 헌신적으로 하는 것 중요하지요.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구제와 봉사 잘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 지식이 많고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 이것도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입니다. 물론 다 좋은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무엇을 사랑하며 사는가?'' 무엇을 기뻐하며 사는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겉으로 나타난 행동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마음의 중심에 동기가 삐뚤어져 있거나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있으면, 겉으로 아무리 좋은 행실이 나와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 특별히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늘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마음도 상하고, 사람 때문에 용기도 얻고, 희망도 갖고, 좌절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좋게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화와 영향력을 주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별한 차이를 두고 마음과 뜻을 구분한 것은 아닙니다. 동의어에 가깝지만,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아버지에게는 자녀가 있으므로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바라시는 소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가 어려움 당하고 재앙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너희가 평안한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한다. "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수준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함부로 추측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스겔 33장 11절에는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일반 교회에서 가르치는 '예수 안 믿고 죽으면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영원히 지옥 불에서 고통받는다'는 교리는 하나님의 품성과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다 돌이켜 하나님을 믿고 살기를 원하시지만, 끝까지 거절하면 의인의 구원과 우주의 조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악인을 소멸시키시는 것이지,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죄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 마귀를 아비로 둔 처지가 됩니다. 계속 마귀를 아비로 모시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 아버지를 바꾸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그 원리가 명확히 나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죄된 본성으로 태어난 운명에서 벗어나 신분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과 10절에도 두 자녀의 신분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 .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 곧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명령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이라고 표현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 후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늘 배우고 실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의 연습'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자녀와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아버지의 울타리 안, 품 안에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바로 '탕자의 비유'입니다. 둘째 아들이 유산을 미리 받아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아들 걱정으로 하루도 편할 날 없이 매일 동네 어귀를 바라보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탕자는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돼지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는 비참한 처지가 되어서야 생각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 자신은 아들의 자격을 잃었으니 품꾼으로라도 써 달라고 간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단 한 번도 종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침례를 받고 때로 타락하거나 넘어졌을 때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자녀로 여기시며 속히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집을 나간 탕자만 탕자가 아닙니다. 집에 남아 있던 큰아들도 '집 안의 탕자'였습니다. 동생이 돌아와 잔치를 열어 주자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집 나간 아들이나 집 안에 있는 아들이나 모두 품어야 할 자식으로 보십니다. 교회 안에서 변화가 더디고 연약할 때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려는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성령의 역사이며,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탕자가 일어나 집으로 향할 때, 아직 거리가 먼데도 아버지가 먼저 알아보고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 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바로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얻은 자녀를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끊임없이 성령을 통해 깨우쳐 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아버지의 마음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평안한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세상의 사소한 일들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늘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② 자주 대화하며 친밀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무 말 없이 묵묵부답인 자녀보다, 비록 실수하고 부족해도 재잘거리며 다가오는 자녀가 부모에게는 더 사랑스럽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히 소통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 말씀처럼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 세 번 정규 기도와 더불어 매 순간 호흡하듯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③ 행복과 건강과 영생을 위해 주신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과 계명은 하나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행복과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순종해야 참된 평안과 건강을 얻고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④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고 성숙하게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 8장 9절:"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지만 영적인 존재입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영적 양식을 먹고 자라나야 합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영적 젖먹이로 머물러 작은 시험에도 토라지고 실족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에 근심이 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 말씀처럼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장성하게 자라나야 합니다.
⑤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교회 안에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갈등이 생기면 즉시 회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할 때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명하십니다.
⑥ 소유한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임을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물질은 다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학개 2장 8절:"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 하셨으니 우리의 모든 소유도 주님의 것입니다.
⑦ 자녀들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재림을 통해 영원한 본향에서 자녀들과 함께 거하시는 것이 궁극적인 소원입니다.
산상수훈의 팔복과 마태복음 5장 13~16절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헌장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개인으로 세상에 나아갈 때는 빛과 소금이 되고, 교회 안에서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⑧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그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된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관계를 견고하게 지켜 주는 거룩한 장치가 바로 안식일입니다. 에스겔 20장 20절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토요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날이 아닙니다. 일주일 내내 안식일을 기억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표징입니다.
따라서 금요일 예비일을 구별하여 철저히 준비해야 안식일이 진정으로 즐겁고 존귀한 날이 됩니다. 해 질 때부터 시작되는 거룩한 시간을 소홀히 보내지 말고 온전히 구별해야 합니다.
⑨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성도들 간의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겸손히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요일 3:14, 4:20, 갈 5:13, 빌 2:3~4).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며 오래 참아야 합니다(엡 4:1~3, 골 3:12~13).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어도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서로 동정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해야 합니다(롬 12:15~16, 고전 12:25).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며 한 몸의 지체처럼 돌보아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