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6]어느 ‘성지聖地 순례’와 논개論介 이야기
우리나라 도시 중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 밀양密陽과 진주晉州였다. 영남루嶺南樓가 있는 밀양은 영화 <밀양>이 한참 뜰 때 딱 한번 가보았다. 빽빽할 밀에 볕 양, 도시의 이름이 참 멋지다. 햇빛이 무한정 쏟아지는 곳인가. 누각에 올라 아랑의 전설을 들으며, 연극이나 오페라로 만들어 많은 사람이 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촉석루矗石樓가 있는 진주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그제(5일), 정읍의 형님과 처음으로 하루 다녀왔다. 진주는 이제 ‘김장하 어르신’이 사시는 곳으로 각인된 명품 도시가 아닌가.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을 읽고, <어른 김장하> 다큐와 영화를 보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감히 어르신을 만나뵐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십 수년 은밀한 취재 끝에 그 어르신을 세상에 알린 김주완 기자만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 만났고, 그 계기로 촉석루에 올랐다. 이 시대 ‘의로운 기자’라 할까? ‘참 언론인’을 만나 악수라도 나누며, 응원하고 싶었다. 어르신이 자주 찾는다는 중국집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눴다. 그에 앞서 ‘남성당한약방’에서 ‘성지聖地’ 인증샷을 그와 함께 찍었다. 하하.
# 나는 왜 ‘남성당 한약방’을 성지라 하는가?
평범한 이웃 할아버지 중의 한 분일 뿐인 어르신(김장하)이 그곳에서 50여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며, 수없이 많은 좋은 일을 티 하나 내지 않고 묵묵하게 한, 바라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현장이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살아있는 예수나 부처라는 별칭으로 불러도 부족할 분이기에, 이 시대 그곳이 성지가 아니면 어디가 성지일 것인가. 좋은 일이란 파악도 되지 않은, 1천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고등학교를 세워 어떤 조건도 없이 국가에 헌납했고, 형평사운동 기념사업을 비롯한 환경단체, 진보 언론사, 여성운동 등에 아낌없는 후원과 지지를 보낸 것들을 말한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진주의 작은 시민’(형평사 강상호선생 묘비에 새김)으로 자족한 어르신 삶의 실천철학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서슴없이 ‘살아있는 성인聖人’이라 부르는 것이다. 시에서 그 건물을 인수했다니, 그분을 오래오래 기리고 기억할 수 있는 기획을 했으면 좋겠다.
# 논개 이야기는 무엇인가?
임진왜란 때 진주성싸움은 두 차례 이뤄졌다. 1차 진주성전투(1592년 10월)에 김시민 장군이 순절했으나 이겼으며(3800여명의 군사와 성민의 힘으로 왜군 3만여명을 물리침), 2차 진주성전투(1593년 6월)는 7만여명의 민관군이 재침략한 왜군 9만여명을 상대로 일주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김천일, 최경회, 황진 장군 등이 순절한 대첩大捷이었다. 2차전투에서 성이 함락되던 날,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어 강물에 함께 몸을 던진 관기官妓가 있었으니, 그녀가 스무 살의 논개이다. 1621년 유몽인이 <어우야담>에서 논개가 ‘관기’라며 그 얘기를 처음 전했지만, 그녀는 성이 주朱씨로 관기가 아니었고, 전북 장수에서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어찌어찌하여 최경회의 첩이 되었고, 그를 따라 장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주성에 들어간 것이다.
70년대 한 일본인이 전설적인 사무라이로 추앙받는 게야무라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엉뚱한 일을 꾸민 게, 남강에서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지는 의식(한일간의 역사적인 화해와 교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진주시의 협력을 받아 국화를 뿌리고 천 마리의 종이학을 띄움)을 치르고 일본 땅에 논개의 무덤을 꾸미고, 게야무라와 영혼결혼식을 시켰으며, 게야무라의 사당에 논개의 영정까지 걸어놓은 것이다. 얘기는 더 나아가, 논개가 전쟁중에 그와 사랑에 빠져 전쟁이 끝난 후 일본까지 와 해로하다 죽었다고 변질됐으며, 논개가 일본에서 부부금슬을 좋게 해주는 ‘섹스의 신’으로 받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실도 모르고 진주시가 그에게 감사장까지 준 해프닝이 있었다는데, 오 마이 갓! 촉성루 옆의 의기사義妓祠와 논개가 몸을 던진 의암義巖을 둘러보며, 왜곡된 역사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논개의 고향 장수에 있다는 그녀의 사당과 무덤도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진주 하루 나들이는 아주 잘한 일이다. 하여 성지 순례와 논개 이야기 한 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