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헌화소녀 증명되다
- 서울의 칼기 음모사건 폭로되다
마침내 의문의 헌화소녀가 평양에 생존해 있음이 밝혀졌다.
바로 정희선교사이며 1살짜리 아기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3월초, 1972년 당시 남적대표에게 꽃다발을 전해주었던 소녀가 자기임을 입증함으로써, 지난 11월에 있었던 칼기 폭파사건의 범인이자 북한 공작원 ≪김현희≫ 혹은 ≪마유미≫의 어릴적 모습이라 우겨대던 서울측 주장이 허위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총련의 수석부의장 이진구에 의해 열린 도쿄의 한 기자회견에서 폭로되었다.
기자회견에서 이진구는 정여사와의 인터뷰가 실린 비디오테입과 몇장의 증거사진을 제시하였는바, 이는 헌화소녀가 평양에 생존해 있다는 북한 정보당국의 3월 6일자 발언을 확증하였다. 28세의 정여사는 총련에서 파견된 조사팀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남측대표가 평양에 도착했을 때뿐만 아니라 떠날 때에도 꽃다발을 전달했던 것은 분명 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의 안기부는 그 소녀가 마유미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선 그녀는 ≪제나 ≪마유미≫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이보다 먼저 3월 5일에 안기부는 일본공산당의 잡지에 게재된 한 사진속 소녀가 틀림없이 김현희라고 보도했다.(그 사긴속의 한 소녀가 김현희와 생김새가 유사하다는 사실이외에는, 이것을 밑받침할 어떤 구체적 언급도 없이 안기부는 김현희야말로 그 사진속의 한 소녀라고 단정지었던 것)
기자회견에서 정희선은 서울이 김현희라고 주장하는 소녀를 가리키며 ≪이것은 접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1972년 당시 어떻게 곷다발을 전달했는지를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그 사진속에 같이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선명히 기억해 내었다.
≪그라프 곤니찌와≫가 촬영한 사진을 가리키며 그녀는 말했다. ≪그 사진을 보고 저는 뇌리에 검은 화살이 박힌 양 놀랐어요.≫
≪저는 진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마유미≫라는 그 여자를 여기로 데려와서 그녀의 정체를 밝혀야 합니다. 그녀는 흥분하여 말했다. 이러한 정씨의 선언은 안기부가 일본공산지의 소녀가 ≪김현희≫라고 주장한 직후 3월 6일의 KCNA의 성명을 확인시켜 주었다. KCNA는 그 소녀가 평양에 생존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마유미≫의 인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후, 대통령 선거 전날 발생한 칼기폭파사건에 대하여 서울은 올해 1월 15일 ≪북한공작원≫이라고 내세워진 범인 ≪마유미≫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도하였고, 그녀의 ≪자백≫을 방영하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자백≫을 근거로 한 ≪조사결과≫이외에는 그녀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구체적 증거가 전혀 없었으므로, 1972년 남북회담에 참석하는 ≪장기영≫남쪽대표에 꽃다발을 증정했던 평양의 소녀가 담긴 사진을 제시하며 이 소녀가 김현희의 어린시절 모습이라고 조작했던 것이다.
총련에 의해 제시된 사진을 보며 그녀는 말했다.
≪이 얼굴은 내가 아닙니다. 이 사진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군요. 이 사진의 얼굴은 조작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계속적으로 안기부의 ≪조사결과≫에 나타나 있는 인물인 ≪김현희≫나 그 비슷한 인물도 있지 않다는 것을 처음부터 주장해왔다.
평양은 서울이 이 사건을 평양당국의 국제적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악용하고 있으며 그들의 군사독재 연장을 위한 안보를 위하여 진실을 오도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서울의 1월 15일 발표 직후에 평양은 ≪서울의 주장은 허위와 기만과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라는 KCNA의 말을 인용했다. 2월 4일에야 서울이 제시했던 ≪김현희≫의 사진이 가짜임이 확실히 밝혀졌다.
그동안 총련 수사팀은 안기부가 김현희가 살았다고 한 북한의 주소를 방문했었다. 그러나 평양시엔 그런 주소가 없었으며 조금 유사한 주소지엔 한 과학자와 그의 가족이 평양의 그 집이 세워질 때부터 살고 있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총련의 수석부의장 이진구는 이 모든 사실이, 칼기사건이야말로 명백히 서울에서 꾸며진 자작극이며, 이 책임을 북한에게 돌리려는 시도가 이번 정씨의 헌화 사진의 진상과 기타의 구체적 증거로 말미암아 완전히 폭로되었다고 지적했다.
- 의혹속의 kal기 폭파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