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6일 묵상 본문 : 히브리서 9장 11절 - 22절 - 복음의 능력으로 무뎌진 양심과 더러운 행실이 변하여 생명의 능력을 얻고 전하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주말의 아침을 시작하며 은혜의 보좌를 향해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자기의 의를 드러내면서 서로를 대적하고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평안이 없으며 기쁨이 사라지고 마음은 공허함과 갈증으로 살게 합니다.
쉽게 분노하며 만족이 없고 의롭게 살아가는 자를 쉽게 판단하고 가볍게 여깁니다.
아무것도 소망할 수 없는 세상에서 참 소망 되신 주를 바라봄이 복임을 고백합니다.
주의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고 그 복을 전하는 자로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게 하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이끄시고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본문 해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손으로 짓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의 대제사장으로 오셨으며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위해 성소에 들어가셨음을 선포한다.
또한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한다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사람의 양심과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써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셨으며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유언의 특성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죽음의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그 유언이 유효한 것이 되며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는 것처럼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그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그래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피흘림을 통해 세워진 것임을 말한다.
그 예로 출애굽기 24장 3절부터 8절에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두루마리와 백성에게 뿌렸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때 하나님이 백성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고 외쳤고(출24:8) 그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음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었는데 이는 피 흘림이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피 흘림이 죄사함의 전제 조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의 조건은 죄에 대한 속죄에 있으며 첫 언약에서도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음을 제시한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에서도 염소와 황소와 피를 제단에 뿌렸으며 암송아지를 태우고 남은 재를 가지고 정결함을 얻는 물을 만들었음을 제시한다.
또한 동물의 피로 육체의 정결함을 얻게 했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더러워진 양심과 죽음과 심판으로 향하는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만드는 것임을 선포한다.
그래서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얻게 되었으며 행실을 바꾸고 무뎌진 양심을 온전하게 하는 힘도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주어진 것임을 선포한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속죄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짐승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으며 온전한 그리스도의 속죄는 다른 모든 제사의 속죄와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선포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한 더러움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선포하셨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7~11)
이는 진정한 속죄는 마음으로부터 나타나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세워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계명과 교훈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며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본성을 뛰어 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마음의 정결함과 죄에서의 자유가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뛰어넘게 만든 것이 그리스도의 속죄요 복음의 능력이며 성도는 복음을 통해 무뎌진 양심과 죄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날 나의 삶에는 늘 사람들과의 갈등과 해결되지 않는 미움의 마음이 있었다.
교회 사역에 대한 갈등은 목회자로써의 길을 고민하게 만들었으며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사람들을 향한 지워지지 않는 미움으로 남아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을 다시 듣고 깨닫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
사람과 시스템에서는 결코 찾거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복음이 선명하게 가르쳐준 것이다.
복음은 교회의 사역과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으며 사람과의 갈등의 원인은 자기의 의로부터 시작하기에 자기부인의 복음을 통해 해결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장사됨과 부활과 영광이 담겨져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알고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은 성도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도는 그리스도가 먼저 가신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야하며 그 길에서 죽음의 자기부인을 경험하는 자가 될 때 부활의 능력과 은혜를 깨닫고 주와 함께 함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주어지지 않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온전히 연합되는 자가 속죄의 은혜를 깊이 누리며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얻게 된다.
복음을 알아가며 복음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수록 성도의 양심과 행실에는 변화가 주어진다.
또한 복음을 통해 주께 나아가 교제함의 기쁨을 누릴수록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며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복음(약속)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제시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일은 복음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자들이 가지는 삶의 특징이다.
비록 연약하여 반복적으로 죄의 더러움에 빠지는 모습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 성도가 바른 양심과 행실로 나아가는 길을 온전한 속죄를 얻고 새로움을 얻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궁극적인 삶의 모습은 자신을 죄에서 얼마나 정결하게 하여 주와 교제하기를 힘쓰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여전히 나의 모습은 영적 성숙에 더디고 주와 교제하는 일에 빈약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 나아가면 가야 할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시고 그 길에서 얻는 기쁨과 소망이 무엇인지 더욱 확실하게 깨닫도록 인도하여 주신다.
오늘도 그 변화의 모습, 주와 교제하기를 힘쓰는 모습에서 거룩함과 능력과 온전함과 기쁨과 만족의 모습이 나타나기에 그것을 기대하며 나아가는 주의 백성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사람의 양심과 행실의 변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고백하며 주와 교제하는 자가 될 때 열매 맺게 됨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르며 방황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방황하지 않지만 여전히 죄에 익숙한 삶은 영적 성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주께 나아가는 삶이 더욱 깊어지고 많아지게 하시며 주와 교제함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육신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주를 아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밭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기쁨으로 기꺼이 수고와 희생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