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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이기우
일어나 비추어라!
- 말씀, 하늘과 별 그리고 빛
이사 60,1-6; 에페 3,2-6; 마태 2,3-12 / 주님 공현 대축일; 2025.1.5.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갑진년 2024년이 지나가고 을사년 202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120년 전 읈사년에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게 외교권을 강탈당할 만큼 나라의 기운이 가라앉았었지만, 새로이 맞이한 을사면에는 국운이 일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12.3 비상계엄과 내란이 수습되지 못해 매우 찜찜한 새 해를 맞이하고 있지만, 한 줌도 안 되는 쿠데타 세력을 능히 물리칠 만큼 시민의 의식과 실천 수준이 성숙했기에 도리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닌 빠른 회복력에 놀라는 외국 여론 덕분에 대한민국의 호감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권력을 손에 쥔 세력에 의해서 자행된 친위 쿠데타를 시민의 힘으로 평화적으로 물리친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이 말했듯이,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고 과거가 현재를 돕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1980년 5.18 광주 항쟁과 1987년 5.17 신군부 쿠데타의 경험에 의해 다져진 민주주의 면역력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이것이 현 시기 우리에게 보여진 시대의 징표입니다.
내란 음모 세력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는 있지만, 헌법과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그들에게는 명분도 없거니와 국민 여론의 대세와는 거리가 멉니다.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자면,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을 대통령 직에서 파면할 것이고 내란에 공모한 세력은 처벌될 것이며 이에 동조했던 언론 역시 여론의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국민의 힘 당 역시, 정권이 교체된 후에는 과거 통합진보당이 그러했듯이 위헌 판결을 받아 해산될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정국은 급속도로 안정될 것이고, 안보와 외교 그리고 경제와 민생도 이전보다 더 튼튼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맞이한 2025년 을사년은 120년 전 1905년의 을사년과는 달리 국운의 상승세를 전 세계에 보여줄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한 걸음씩 전진해 온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저력을 만방에 떨칠 때가 온 것입니다. 이를 공현이라 합니다. 새 해 첫 주일인 오늘은 주님 공현대축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일어나 비추어라!" 입니다. 이 초점에 따라 '말씀-하늘-별-빛'이라는 소주제로 묵상한 바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1. 말씀
공현은 성탄의 완성입니다.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것이 공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장차 메시아를 보내시리라는 것을 전해 받은 이사야는 일찌감치 이렇게 예언해 놓았습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이사 60,1).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예언은 그 대상이 '예루살렘아!' 하고 친근하게 부를 정도로 의인화 시킨 이스라엘 백성을 염두에 두고 전해 준 말씀입니다(제1독서).
그런데 그 예언대로 이스라엘 땅에 태어나신 메시아를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동족인 유다인들이 아니라 뜻밖에도 머나먼 동방에 살던 이방인 박사들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을 주변 민족들도 전해 듣고 있었기에 동방에 살던 박사들도 이 빛이 언제 올지 궁금한 나머지 매일 밤마다 하늘의 별들을 관찰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평소에 보이지 않던 큰 별이 나타나자 메시아께서 태어나셨다는 뜻으로 해석하고는 이 별이 비추이는 곳을 향하여 길을 떠나 드디어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복음).
하지만 사도 바오로는 생전의 예수님을 만나 뵈옵지는 못했어도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겪은 기적적인 체험과(사도 9,1-18 참조) 신자들과의 만남에서 들은 증언(사도 9,19 참조) 그리고 십여 년 동안(갈라 2,1 참조) 기도와 성경 묵상을 통해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믿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야말로 진리의 빛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에페 3,2-3). 여기서 고백하는 ‘은총의 직무’란 사도 바오로가 뒤늦게 알아본 메시아 예수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사도의 직분과 선교사의 소명을 뜻합니다. 그러고 나서 바오로는 그분으로부터 직접 영적으로 계시 받은 그 신비 즉 메시아의 삶과 가르침에서 비추이는 빛을 이방인들에게 비추어주고자 나머지 일생을 바쳤습니다(제2독서).
이것이 오늘 공현 대축일에 들려오는 말씀의 흐름입니다.
2. 하늘
머나먼 동방에서 별을 보고 메시아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 귀한 예물까지 들고 와서 경배를 했던 박사들이 살던 고대에는 밤 하늘의 별들의 움직임과 변화를 보고 하늘의 뜻을 읽고자 했고 그 뜻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질서가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한 해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고, 한 달은 달이 지구를 도는 시간이며, 하루는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입니다. 인류가 농경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더 자세한 시간 구분이 필요해서 정해진 것이 24절기입니다. 바닷물이 밀려오는 밀물과 빠져나가는 썰물의 때도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긴요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기본적 시간 정보를 넘어서서 별들의 움직임과 변화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으리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천문관측 활동을 ‘점성술’이라고 부릅니다. 천문학과 관측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술(呪術)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과학이요 문명행위였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관찰한 별자리의 움직임이나 변화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상을 통해서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읽고자 했었다는 동기였습니다. 이 점이 천문학과 천체관측술이 발달하여 우주와 천체에 관한 지식은 쌓였지만 막상 하느님의 뜻을 한 치도 읽지 못하는 현대인들보다 점성술을 통해 하늘의 뜻을 읽어내고자 했던 고대인들이 영적으로 더 앞서 있는 면모로 보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천동설을 진리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고대 점성술사들은 특이한 천문현상이 나타나면 대개 전쟁이나 큰 변란 등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로 보았었지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메시아가 태어나실 좋은 징조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점성술의 근본 취지를 이해했던 그들은 모든 구도자들과 신앙인들의 예표였습니다.
끊임없이 밤 하늘의 별들을 관측하던 동방박사들이 발견한 '그분의 별'(마태 2,2ㄴ)은 지구에서 관측할 때 목성과 토성의 궤적이 겹쳐져서 마치 하나로 결합된 듯 나타난 큰 별이었고, 이는 11년에 한 번 태양을 공전하는 목성과 29년을 주기로 공전하는 토성이 규칙적으로 만나는 현상을 알고 있었던 그들이 천문 현상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전문적 식견의 결과였습니다. 더군다나 바빌론 제국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꿈을 해석한 다니엘의 예언(다니 2,31-48 참조)도 알고 있었던 지라, 바빌론-페르시아-그리스 제국의 순서로 지역 패권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로마 제국의 시대에 드디어 메시아가 나타나시리라는 고대 동양 현자들의 통찰도 빛을 발했습니다. 이는 무려 8백여 년만에 나타날 수 있는 매우 드문 천문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별을 발견하고서는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한 그들이 그 별을 놓친 이유 역시, 마침 그 때가 태양이 그 곁을 지나가는 바람에 마치 개기일식 현상처럼 목성과 토성의 별빛이 가려졌던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동방박사들은 헤로데를 찾아 물었고, 헤로데는 성서학자들을 불러 메시아께서 태어나실 곳을 알아보게 했으니, 그곳은 바로 미카 예언자가 예언해 놓은 베들레헴이었던 것입니다.(미카 5,1 참조) 이 처럼 동방박사들이 지녔던 하늘의 지혜 속에는 매우 과학적이고도 성서적인 통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보내시기로 한 메시아를 얼마든지 그 시점에 맞추어서 보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알아보려는 점성술 관습을 이용해서 메시아를 보내신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한 직후 시점을 택해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신 하느님이시라면, 인간의 생각과 형편을 고려하면서도 이를 넘어서 자유자재로 당신의 뜻을 계시하는 것은 그분에게는 너무도 쉽고 또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밤하늘을 관측해 왔습니다.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7만여 기의 고인돌 가운데 그 절반 이상이 한반도와 만주에 남아 있는데, 이 고인돌 중에서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인천 강화도 그리고 청주에서 발견된 고인돌에는 그 당시 관측된 별자리들을 정교하게 새겨 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국가기관급 단위에서 천문관측을 해 왔음은 단군시대의 기록에도 남아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검증된 바 있습니다. 즉, 서기전 1733년 7월 13일 초저녁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해와 달 사이에 한 줄로 모인 것이 관측되었는데, - 이를 ‘오성취루(五星聚婁)’ 현상이라 합니다. - 예나 지금이나 우주의 별들이 운행되는 질서는 매우 규칙적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과거 어느 시점의 천문현상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박성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같은 오성취루 현상이 2022년 6월 18일 새벽 동틀 무렵에도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니까 3천 7백여 년 만에 다시 반복될 만큼 오성취루는 아주 드문 천문현상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량이 다르고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달라서 자전과 공전 주기가 제각각인 별들이 지구에서 관측하는 우리 눈에 일렬로 늘어선 것처럼 모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오랜 옛날부터 앞선 천문관측 기술로 하늘을 탐구하고자 했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방박사들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던 점성술이었을까요?
우리 민족에게 하늘은 오랜 옛날부터 경외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점성술보다는 더 차원 높은 종교적 동기에서 세상 만사를 주관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적인 존재를 하늘로 떠받들었고, 다른 사물처럼 그냥 ‘하늘’로 부를 수가 없어서 경칭 조사를 붙인 것이 '하늘님', 즉 '하느님'이라는 이름입니다. 그러다가 유학을 종교로까지 떠받들게 된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주희(朱熹, 1130~1200)가 달아놓은 주석 이외에는 모조리 금지시켰는데, 만일 이를 어기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것도 각오해야 했습니다. 이 시절에 특히 문제가 되었던 문자가 ‘하늘 천(天)자’였습니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주자는 이를 ‘자연의 하늘’과 ‘마음의 하늘’로만 해석해 놓았는데, 공자 이상으로 주자의 학문을 떠받들었던 조선 시대에는 감히 다른 해석을 하지 못하던 살벌한 지적 풍토가 지배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6세기에 서양에서 온 이태리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하늘 천(天)’자를 초월적인 하늘 즉 인격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신로서의 하느님으로 해석해 놓은 ‘천주실의’ 서적이 조선의 이벽의 손에 들어와서 천진암 강학회에 모인 선비들을 통해 민간에게 알려지자, 마치 4천 년 이상 오랜 세월 동안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던 하느님 신앙이 봇물 터지듯이 분출되는 바람에 천주교 운동이 하나의 거대한 민중 운동처럼 일어났기에, 총력을 다해 박해하던 조선 왕조가 스러질 지경에 이르렀고, 실제로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3. 별
천동설 대신에 지동설을 과학적 진리로 알게 된 오늘날에도 하늘에 떠 있는 별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별은 태양과 같은 항성의 빛을 반사해서 비추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었던 동방박사들도 별을 관찰하다가 메시아 탄생을 알리는 큰 별을 보고 그 별이 빛을 비추는 곳으로 가서 메시아를 경배했듯이, 이벽을 비롯한 한국 초대교회 선각자들, 이들을 이은 두 사제 김대건과 최양업, 그리고 이들을 배출한 박해시대 교우촌의 신자들 모두가 조선의 어둠을 비추어 줄 빛을 찾다가 드디어 천주교 교리에서 빛을 찾았고, 그 빛이 알려준 메시아께 기꺼이 자신들의 삶을 예물로 바쳐서 조선의 백성을 비추는 별이 되었습니다.
헨리 반 다이크가 쓴 소설 ‘네 번째 동방박사(The Four Wiseman, 1895)’는 오늘날 교회와 신앙인들이 주님의 공현을 묵상하면서 지녀야 할 자세를 일깨워준 책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아르타반은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마련한 보석 세 개를 가지고 메시아를 경배하러 떠났지만, 번번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 보석을 다 주어 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채로, 그것도 죽기 직전에 영으로 메시아를 만나 뵙게 됩니다. 그래서 예물 없이 경배하기가 죄송했던 아르타반에게 메시아께서는 이미 그 예물을 다 받았노라고 안심 시키시면서 아르타반을 천국에로 이끌어주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리하여 네 번째 동방박사였던 그도 역시 믿는 이들의 상상력 안에서 생겨난 또 하나의 별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세상에 오신 메시아께 경배드리고 세상에 주님의 공현을 선포해야 하는 당사자로서 네 번째 동방박사와도 같은 처지입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이 가리키는 대로 길을 떠나야 하며, 그 뜻이 가리키는 곳에 가서 진리이신 주님께 경배 드리면서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예물을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4. 빛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당시에 이미 또 한 사람의 네 번째 동방박사로서 살아갔던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된 신비는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에페 3,6).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는 역사적 진실이지만,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으로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살던 바오로 사도로서는 천 년 이상 간직해 오던 그 고유한 선민의식을 포기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이라 부르며 전해주었던 공현의 예언은 우리 민족을 포함한 모든 민족에게로 활짝 열린 셈이 되었습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희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이사 60,1-2).
동방 박사들이 그 옛날 큰 별이 나타난 현상을 보고 메시아를 경배하러 찾아왔던 구도자들이었듯이, 아시아의 동방에서 반만년 전부터 살아온 우리 민족도 초창기부터 낮에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밤에는 별들을 관측하여 하늘의 뜻을 알아보는 전통을 간직한 구도자들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전해 듣지 못했어도 동방박사들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부터 점성술보다 더 차원 높은 종교적 진리를 추구한 것입니다.
그렇게 메시아를 찾아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그들의 삶의 발자취로 인하여 후대의 구도자들에게 또 다른 별이 되었듯이, 진리와 평화로써 하느님께로부터 빛을 계시받은 우리 민족의 선조들도 후손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는 별들이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18세기에 이벽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정약종은 순 한글로 쓴 ‘주교요지’를 남김으로써 박해시대 교우촌에 살던 신자들이 백년 박해를 견디어 내도록 받쳐준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진리의 빛을 비추어 준 별이었습니다.
5. 말씀의 빛
그러니 교우 여러분! 이사야의 예언대로 우리도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바오로의 사도적 권고에 따라서 우리도 메시아의 빛을 받고 있는 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평화의 빛은 우리 한국 초대교회의 선각자들이 반사해 줌으로써 더욱 뚜렷하게 말씀의 빛으로 전해졌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보여준 모범대로, 진리와 평화의 가치를 담은 이 말씀의 빛을 이제는 온 겨레 앞에 드러내어야 하며,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 빛을 받아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공현 대축일의 메시지입니다.
이와 아울러, 2025년 새 해에는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정치를 정상화함으로써 외교와 안보 그리고 경제와 민생도 되살려서,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공현의 빛이 한민족 모두에게 비추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