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8일 묵상 본문 : 히브리서 10장 1절 - 10절 - 율법으로 자기 의를 세우는 형식적 신앙에서 벗어나 복음에 연합되어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은혜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제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묵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이 감사의 시간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성도들이 주와 교제함의 기쁨을 알아가고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모습이 귀함을 느낍니다.
더 깊이 주님과 교제하는 자 되게 하시고 복음과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주님과의 교제가 형식이 되지 않고 생명을 누리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고 삶을 변화시키는 주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이 정결케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의 보혈로 덮으시고 주의 보좌로 나아갈 담력을 얻어 주의 품에 거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본문 해설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고 참 형상이 아님을 선포한다.
그래서 매년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제사 드리는 자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음을 말한다.
만약 온전하게 할 수 있다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제사 드리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 마땅함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만드는데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사라지지 못하게 하기 때문임을 선포한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했던 시편 40편 6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님이 세상에 임하실(성육신) 때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을 위해 한 몸을 예배하셨음을 말한다.
이 인용은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의 내용으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맛소라 본문과 조금 다르다.
그 내용을 본문의 본래 의미로 번역하면 “내가 주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 순종하도록 주께서 그 수단으로 한 몸을 예비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속죄의 제물을 드리도록 새 언약의 제물, 즉 예수님의 육신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제시한 것이다.
이어서 시편 40편 7절과 8절을 인용하면서 순종의 마음이 사라진 번제와 속죄제는 의미가 없음을 제시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도의 진실한 순종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다윗의 대답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스도께서 두리마리 책(구약)에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셨음을 선포한다.
또한 시편 40편의 말씀을 다시 언급하면서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순종 없이는 기뻐하지 않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셨음을 제시하면서 첫 번째 것(율법)을 폐하시고 둘째 것(새언약)을 세우시기 위함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성도들은 거룩함을 얻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나의 묵상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통해 하늘의 성소와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음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율법의 본체임을 제시한다.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의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죽으심과 장사되심, 부활과 영광의 약속까지 모두 담겨져 있다.
그래서 복음을 바르게 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는 길이 되며 성도는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오해하거나 무지한 자로 살아갈 때는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게 되며 결국 분순종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무지했으며 자기의 이익과 만족을 채워주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순종이 사라진 모습이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익함과 연약함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만연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반복하지 말 것을 권면했으며 구약의 한계와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뛰어남을 증거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것임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자신을 온전히 세우는 것임을 선포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무지한 자의 모습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는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을 통해 자신의 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불순종으로 나아가며 스스로의 의를 내세우다 절망과 심판으로 가게 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1~13)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 복음에 대한 무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떠난 것과 같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 안에 거하는 모습이 된다.
복음을 깨닫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 되는 일이며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가 복음을 깊이 깨닫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이루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의 신이 될 자격이 있고 자신이 섬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순종의 마음 없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이와 같음을 제시하며 자기를 위한 신앙에서 벗어나도록 권면한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는데 그 뜻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죄와 허물을 속죄하시고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것과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순종함으로 이루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는 구약의 제사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도록 만드셨음을 선포한다.
결국 성도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하나님과의 화평과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바울도 이것을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의로움을 얻어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19~22)
성도의 삶은 복음을 바르게 알고 복음의 능력으로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달라진다.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따라 생명의 관계를 세우며 사는 것이 성도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살아갈 때 온전하게 세우시고 변화시키시는 주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히브리서 기자가 당시 성도들에게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와 생명과 능력을 얻도록 도전하고 있음을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전에는 지루하게 여기던 구약의 내용들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도구였음을 고백하게 되고 모든 성경의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주를 향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게 만들고 성도의 궁극적 목적지인 주의 보좌,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로 서게 함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땅의 발을 딛고 살아가는 자이기에 쉽게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며 율법을 통해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는 어리석은 모습은 늘 쉽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께로 나아가게 만드시는 손길은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길이 되기에 다시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 기쁨이며 감사의 조건이 됨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 고백이 오늘의 삶, 한 주간의 삶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주의 지체들도 그 소망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주의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의 능력을 깨달아 주의 보좌로 나아가려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의 모습인지를 깨닫습니다.
육신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주의 생명을 살아간다는 것이 전에는 모호한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복음을 통해 누리는 생명의 은혜를 선명하게 알아가게 됩니다.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긴 채로 살지 않게 하시고 주의 생명의 풍요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자기의 만족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소망하게 하옵소서.
인생의 어리석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모습에 있습니다.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주와 교제함으로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어제는 집사님들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하고 육신의 한계를 경험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임을 느낍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참 되시고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며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삶임을 고백합니다.
그 고백을 날마다 선포하며 주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