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부순환도로, 마장램프에서 빠져나와 마장역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면 꽃게 음식점 몇 집이 주르르 붙어 있다. 으레 고깃집이 연상되는 마장동에 웬 꽃게 식당들인가 갸웃하지만 이곳에 대한민국의 꽃게 일인자 김정임씨의 ‘목포산꽃게아구찜탕’집이 있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 오래전 공전의 히트를 쳤던 광고 대사 속 그 게맛을 아는 이들을 감동시키고도 남을 이 집의 대표메뉴는 양념꽃게찜! 수조에서 펄펄 살아 있는 꽃게를 건져올려 콩나물을 듬뿍 넣고 고춧가루 양념으로 걸쭉하게 쪄내는 양념꽃게찜은 먹고 나서 한동안 혀에 아른거릴 정도로 특별한 맛을 자랑한다.
이 집 입구 양쪽 수조에는 크고 싱싱한 꽃게가 그득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빨간 양념이 튈 새라 앞치마를 목에 걸고 비닐장갑을 낀 채 하얀 속살을 발라먹는 손길이 분주하다. 꽃게 양념찜을 주문하면 접시 수북이 꽤 푸짐한 양이 나오는데, 언뜻 보기에는 아구찜과 비슷하다. 촉촉한 양념이 어우러진 콩나물 먼저 한 젓가락 집어 맛보면 아삭한 식감은 물론 양념 맛이 참 기가 막히다.
어쩌면 이렇게 슴슴하고 맵지 않으면서 달큰한 꽃게의 풍미가 가득할까? 양념 잔뜩 묻은 꽃게 다리를 쥐고 오동통 꽉 찬 살을 쏙쏙 빼먹다 보면 입안에서 감칠맛이 요동치면서 야들야들한 게살이 사르르 녹는다. 여기에 등딱지의 노란 알을 긁어 먹는 맛이란! 적절한 양념으로 꽃게 본연의 감칠맛이 한층 살아난다고 할까. 이제 양념 없는 하얀 꽃게찜은 맨숭맨숭할 것 같다.
개운한 꽃게탕도 이 집의 추천 메뉴다. 주방에서 꽃게를 반쯤 익혀 내오기에 테이블에서 잠깐만 더 끓이면 먹을 수 있다. 미나리와 미더덕을 듬뿍 올려 향긋한 맛이 끝내주며 불을 끈 뒤 식어도 비리지 않고 맛있다. 양념꽃게찜이나 꽃게탕 모두 통통한 낙지를 한 마리씩 넣어준다. 그런데 꽃게의 질이 워낙 좋아 굳이 낙지가 필요할까 싶지만 낙지를 좋아하는 손님들에겐 대환영이란다. 뚝배기에 고구마를 넣고 지어주는 밥맛이 촉촉하니 좋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누룽지도 구수하다.
창업주 김정임(60)씨는 출중한 음식솜씨로 마을 잔치를 도맡아 했던 할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미식에 관심이 많았다. 결혼 전부터 전국의 맛집을 두루 섭렵하던 김씨는 목포로 시집을 간 지 1년 만인 1984년 서울 노량진에 흑산도 홍어집을 열었다. 그때는 먹을 줄만 알았지 김치 하나 제대로 못 담글 정도로 음식 만드는 일이 서툴렀다. “미식가는 음식을 잘하게 되어 있어요!” 미각을 타고난 김씨는 주방장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워 개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주방을 호령하게 되었다.
198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김씨는 당시 마장동 공장지대 손님을 겨냥해 한식집을 열었다. 배달까지 마다 않는 부지런함과 맛깔스러운 반찬으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1990년대 초반 공장지대가 경기도로 대거 이전하면서 메뉴 변경이 불가피했다. 마산 출신인 김씨는 이참에 어려서부터 많이 접해본 해물 요리를 하겠다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꽃게와 아귀 요리를 시작했다. 가격이 좀 있는 데다가 흔치 않은 메뉴로 몇 년을 고전했지만 꼭 성공을 일궈내겠다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마침내 공중파 방송을 타면서 기회를 잡은 김씨는 내 집에 온 손님은 무조건 단골로 만들자는 각오를 다졌다. “너무 고단해서 5분만 앉아 쉬는 게 소원이었어요.”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무거운 팬을 쥐고 얼마나 치열하게 요리했는지 결국 양쪽 팔꿈치 관절이 고장 나 수술까지 받을 정도였다.
하루 꽃게 300~400마리 만져
▲ 대표 김정임씨
김정임씨는 요리뿐만 아니라 맛있는 꽃게를 선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덕분에 이 집 꽃게는 언제나 살이 꽉 차고 달큰한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꽃게라고 다 같은 꽃게가 아니에요.” 꽃게는 시기별, 지역별로 맛이 다르다. 처음 꽃게 요리를 시작할 때부터 꽃게를 사올 때마다 직접 맛을 보면서 살과 알 상태, 단맛, 고소한 맛 등을 꾸준히 메모했다. 그렇게 몇 년치 메모가 쌓이니 지역별, 시기별로 가장 맛있는 꽃게를 선별해내는 데 일가견을 갖게 되었다. 일주일 단위로 가장 맛있는 지역의 꽃게를 들여오는데, 질이 떨어지는 상품은 선별 후 반품 처리해 변함없는 맛을 유지한다. 배에서 바로 실어오기 때문에 한밤중이나 새벽에 도착하는 일이 잦아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김씨는 기후가 바뀌면서 산지(産地) 꽃게 품질도 변하기 때문에 거래선 유지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한다.
암꽃게는 3~6월, 수꽃게는 9~12월이 제철이다. 이 집에선 여름철 금어기와 1~2월 꽃게가 나오지 않을 때만 선동꽃게를 사용한다. 어판장에서 가장 맛이 좋은 봄철 활꽃게를 구해 수협 냉동고에 보관하는데, 살아있는 것을 바로 급랭시키기 때문에 일반 냉동꽃게와는 맛 차이가 많이 난다.
김씨는 꽃게를 슬쩍 만져만 봐도 어디 게인지, 맛은 어떨지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만큼 등딱지를 많이 따봤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120~130㎏, 하루면 꽃게만 300~400마리 정도를 잡는다. 손님이 많을 때면 둘이서 하루 1000마리씩 등딱지를 뗀 적도 있었다. 다리 부분은 먹기 좋게 가위집을 내는 등 손질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정성을 가득 들인 꽃게는 김씨만의 양념비법을 만나 감동의 요리가 된다. 들어가는 재료는 고춧가루와 마늘, 소금 등 별다를 것이 없다. 다만 소금은 보름 이상 간수를 빼서 쓴맛이 나지 않도록 준비한다. 고춧가루는 빛깔 고운 국내산을 듬뿍 넣는데, 고추향이 좋으면서도 많이 맵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특별히 매운 것을 원할 때만 청양고추를 넣어준다. 포인트는 양념의 비율! 이는 맛을 내는 핵심 비법으로, 오직 김씨가 직접 양념을 계량하고 있다. 양념을 미리 섞어 숙성시키면 텁텁해지기 때문에 즉석 양념을 하는데, 처음부터 꽃게에 넣고 삶아 게살에 양념 맛이 깊이 배도록 한다. 도시가스 대신 강한 화력의 엘피지를 사용하며 게살이 퍽퍽해지지 않도록 삶는 시간까지 세심하게 조절하는 등 꽃게 요리에 대한 노하우가 대단하다.
김씨는 가게가 유명세를 타자 바로 옆에 꽃게집들이 생겨 경쟁체제가 되었지만 오랜 세월 잊지 않고 오는 단골손님과 입소문으로 새롭게 찾는 손님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그의 아들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1년 전부터 아들 장재호(32)씨가 가게에 나와 주방 일부터 주차서비스, 카운터까지 두루 돕고 있다. 아직은 대물림 준비의 시작 단계지만 자신의 미각을 쏙 빼닮은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