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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진리 중의 진리, 궁극의 진리, 불변의 진리는 또 무엇입니까?
가끔 우리는 진리가 아닌 거짓, 허위를 접합니다. 때로 유명인사들의 거취에 대한 허위사실들이 순식간에 유포되어 입장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저도 며칠 전 한 신자로부터 한 선교사 신부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럴 리가 없는 데’하며, 즉시 펙트 체크를 했습니다. 당사자께서는 이미 부활하셔서 삼시 세끼 밥 잘 드시고 계신답니다. 이런 일까지 있었으니, 당신 명줄이 길겠다고 좋아하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큰 혼란으로 몰고 가는 거짓, 허위, 헛소문들이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때로 이런 그릇된 정보가 부당한 공권력을 등에 업고, 진실인 양 공공연하게 유포되기도 합니다. 분명 거짓인데 그럴싸하게 포장되고 편집되어 일반화된 것을, 비판력을 상실한 관용 매체를 타고 진실인 양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우리 앞에 매일 펼쳐지는 세상만사, 다양한 사건 사고 들 앞에서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인지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식별력과 정보력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보면 분명 거짓이요 악인데, 사탄의 우두머리인데, 그럴싸하게 스스로를 포장해서 진리처럼, 예언자처럼 행세합니다. 아직도 두꺼운 가면을 쓰고 다니며 선량한 사람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그릇된 지도자들과 사이비 교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근원적, 태생적으로 나약한 우리 인간들입니다. 거짓과 헛소문 앞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늘 필요한 존재가 한분 계십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진리, 진리 중의 진리, 궁극의 진리, 불변의 진리는 또 무엇입니까?
그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자체이시며, 그분께서 공생활 기간 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신 생애 전체이며, 그분께서 선포하신 복음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 악이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 진흙탕 같은 세상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진리가 아닐까요?
때로 부담스럽고 때로 거추장스러운 내 이웃, 그래서 피하고 싶은 이웃이지만 그 사람 안에서도 엄연히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시고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의 회개와 성장, 그리고 성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계심이 진리가 아닐까요?
우리네 인생 여정에서 수시로 다가오는 갖은 고통과 시련, 유혹과 십자가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진리, 이 구질구질하고 때로 꼬질꼬질한 인간 현실 속에서도 하느님의 성령께서 활발히 역사하고 계신다는 깨달음의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무력하게도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 끝끝내 적대자의 폭력 앞에 저항 한번 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수동의 예수님이시지만, 그 예수님께서 고통과 죽음을 극복하고 물리치시고 승리하리라는 깨달음의 진리, 십자가 길의 여정에서 처참했던 몰골의 바로 그분께서 참된 하느님이시며 우리를 영원한 불멸의 삶으로 이끌어 주실 구원자임을 깨닫게 하는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신성을 선물로 받는 법
며칠 전에 어떤 형제가 자기 가문 조상들의 무덤을 500개 관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분은 매우 열성적으로 말씀하셨지만, 저는 ‘왜 저런 고생을 사서 하실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많은 돈과 시간, 무거운 비석을 메고 오르내리며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내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며느리 자랑하기 시작하십니다. 장손을 낳은 며느리가 아이가 크면 가르쳐주겠다고 이 모든 것들을 시간 있을 때 아버님과 함께 가서 배우고 기록해 놓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장손이 이 일을 해야 하지만, 장손은 아직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중간에 누군가 그것을 이해시켜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님께서 오셔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 말씀드린 한 학급의 감동적인 사연을 떠올려봅시다. 발을 다쳐서 네 차례나 수술하고 반에 돌아왔을 때 선생님과 아이들이 반겨주지 않아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벤트였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준비해 준 케이크와 노래를 합창했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선물입니다. 선물은 누군가의 노력이고 피와 같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령님의 역할은 누군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 전하며 이해시켜 주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성령님께 모든 것을 주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이해시키시기 위해 노력하셨기에 아버지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게 되신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이렇게 받아 전해서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는 이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 곧 신성을 주십니다. 하느님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이해시키기 위해 성령님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느님 자녀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위의 형제님도 노후를 위해 준비한 땅이 조금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고 손자에게 전해주겠다는 며느리가 너무 예뻐서 모든 것을 며느리에게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손자에게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에게 무엇인들 줄 수 없겠습니까?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기도』 북 콘서트 때 세 분의 형제·자매가 제 책을 먼저 읽고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증언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성의 단계를 알아서 무엇하냐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읽어야 하는 이유와 좋은 점을 조목조목 말씀하시며 신자들이 책을 많이 사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받은 모든 이익금을 그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정은표 씨도 아이들이 공부보다는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공부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엄마는 아빠 편을 듭니다. 이때 남편은 아내에게 무엇을 주고 싶을까요? 다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때 자녀들도 마음의 평화를 찾고 좋은 성품과 능력의 자녀로 성장합니다. 성령처럼만 살면 하느님께도 배우자에게도 세상 상사에게도 사랑받고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원리를 이해합시다. 그래야 하느님 자녀가 되고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느님 자녀가 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드님께 모든 것을 주시고, 아드님은 성령님께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세 분 하느님은 모두 같은 ‘모든 것’, 곧 신성을 공유하시기 때문에 같은 하느님이 되십니다.
이제 우리도 성령님을 이해하게 할 수 있다면 그분의 신성을 받게 되어 같은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는 법을 잊지 맙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요한 16,12-15: 진리의 성령이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13절) 성령 안에 살 때,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참된 삶이 무엇인지, 참된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성령 안에서, 즉, 사랑 안에서 더 충만한 지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살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성령 안에서 모든 말씀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13절)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오신다. 성령께서 계신다는 것과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들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아들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들의 말씀이며, 아버지의 뜻이다. 아들도 성령께서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신다.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13절) 성령께서는 아들이 가르친 것을 말씀하실 것이다. 그 말씀들은 아들의 말이고 그분의 가르침을 확인해 주는 말씀이다. 많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아,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하여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의 삶을 이 땅에 미리 앞당겨 살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은사를 통하여 하늘나라의 기쁨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 하느님 안에 살 때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14절)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충만케 하시어 아들을 분명하게 드러내실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와 가르침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아버지에게서 받았듯이 성령께서 당신에게서 받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아들의 것이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이것들을 아들에게서 받지만, 또한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기도 하다.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시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은, 아들이 주시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여 성령께서는 우리를 평범한 인간적 삶에서 벗어나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시고 그분의 생명에 우리를 참여시켜 주신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산다는 것, 즉 성령 안에 산다는 것은 영원한 파스카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이미 천국으로 건너간 삶을 살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를 맡겨드리고 따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청해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는 우리가 위로의 하느님보다 하느님의 위로를 찾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위로만을 찾게 되면 거짓 위로를 만나서 하느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형제님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 매일 같이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지금의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기를 위로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가 들어주신 것인지 그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쉽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만이 자기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고 외쳤습니다.
몇 년 뒤,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정말로 계시는 것일까? 계신다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자기를 이렇게 외면 하실 수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신앙을 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위로만을 찾는 사람은 이렇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위로의 하느님을 찾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즉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상관 없이 하느님께 위로받게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위로만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에 다가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며 하느님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위로받기 위해 엄마 아빠를 찾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다가도 엄마 아빠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위로를 주는 부모님께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위로가 아니라, 위로의 하느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교회와 모든 믿는 이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이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이라는 진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게 해줍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 안에서 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많은 순교자가 그러했습니다.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삶 안에서 기쁨을 간직했고, 또 힘차게 하느님을 증거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을 매 순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당연히 사랑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느님의 위로를 찾지 말고 위로의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진리의 영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로 충만해지고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네.
그동안
감당해내지 못하였던
진리들이
우리를 훈육하기 시작하면
말씀이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기 시작한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진리를 가리는 영적 식별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께서 해 주시는 일입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살아갑니다.
성령께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 사람은
이기심과 욕심이 사랑으로 바뀐
새로운 질서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따르는 삶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삶이 됩니다.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복음 말씀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