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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다해 1월27일 수요일 [(녹)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수도회] 희망을 밝히는 마음 밭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사무 7,4-17
† 복음 마르 4,1-20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일상생활 안에서 만나게 되는 아주 흔하고 평범한 소재를
통하여 하느님에 관한 진리와 신비를 깨닫게 하시는데,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묵상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씨를 뿌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는 것이고, 둘째는 밭의
입장에서 읽는 것입니다. 13절 이하의 비유 설명은 주로 밭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복음의 앞부분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제자들에게, 뿌린 씨가 모두 싹이
터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그래도
어떤 씨는 열매를 맺을 것이니, 이 비유 안에는 계속해서 씨를 뿌리라는
말씀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이천 년 동안 줄곧 읽고 듣고 묵상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비유를 무수히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비유 말씀을 받아들이는
실제 상황에서는, 좋은 말을 전하면 사람들이 모두 다 잘 받아들이고 좋은
일을 하면 다들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애써 좋은 일을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누군가에게서 비난을 받게 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하게 됩니다.
글쎄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느꼈다면, 우리가 사도들보다도,
예수님보다도 더 뛰어나서 모든 사람을 설득시킬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저 착각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삼 년
동안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듣는 모든 이가 그 가르침에 설복하여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그렇게
뿌려지고, 신비롭게 세상 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편견으로 눈이 어두워지고 절망적인 생각으로 귀가 꽉
막혀서, 또는 게으름 때문에 무기력해져서, 이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은 아닌지요?
- 매일 미사 -
◈ [인천] 가장 값진 것은 주님의 말씀
2016년 다해 1월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네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4-17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언젠가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집에 와서 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입니다. 얼른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카드 분실신고를 한 뒤에 혹시나 몰라 집 안 전체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갑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돈도 아까웠고, 카드와 신분증을 재발급 받기 위해 할 수고를
생각하니 귀찮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아까움과 귀찮음을 모두 감수해야만 하겠지요.
다음 날 새벽이었습니다. 묵상을 하다가 새벽 묵상 글에 쓸 좋은 글귀가
생각난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묵상 글을 쓰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묵상을 통해 생각해 둔 좋은 글귀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불과 30분 전에 기억했던 것을 잊어버린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 지요. 한참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다른
내용으로 묵상 글을 썼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전날에 잃어버렸던 지갑에 대해서는 아까워하면서,
잊어버린 좋은 묵상거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비록 부족한 묵상이지만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잃어버린 지갑의 가치보다 훨씬 값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갑은 아까워하면서도, 잊어버린 묵상은 더 값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까워하지 않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더 값진 것은 소홀히 하면서 별 것 아닌 것들에 연연하고 있었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즉, 세상 것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하늘 나라의 씨앗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길, 돌밭, 가시덤불과 같다고 하시지요. 사실
주님께서는 인간 영혼의 밭에 육화하시어 우리 인간 본성 안에 당신 말씀의
씨를 뿌리십니다. 문제는 그 씨를 받는 우리의 영혼의 밭이 어떠한가 입니다.
세상 것에 얽매여 있으면 그 좋은 씨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이 주님의 말씀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밭을 비옥하게 만들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내 영혼의 밭을 비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계명인 사랑 이라는 비료를 통해서만
비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값진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의 밭을 잘 가꿀 수 있습니다.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문을 열어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우리 자신, 그리고
삶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마이클 J.로즈).
자비의 희년에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성지인 갑곶입니다.
눈을 쓸면서…….
어제 아침, 제가 있는 갑곶순교성지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쌓이는 눈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세상을 하얗게 만드는 눈을 보면서
‘예쁘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길이 미끄러워서 순례객들이
힘들겠다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눈을 치우는데 힘들겠다는
생각도 생깁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갖고 아침식사 후, 성지 직원들과 함께 넓은 성지의
곳곳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눈을 치우니 힘이 들면서
땀이 조금씩 나옵니다. 그러나 마음은 기뻤습니다. 약간의 수고로 순례객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순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기쁨이
더 커지더군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내가 억지로 해야 할 ‘일’로만 여긴다면 그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얻을 무엇인가만을 떠올려도
기쁨은 함께 할 수가 없겠지요.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삶 안에서 얻는 것은 분명히 더 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보다는 나를 위한 삶을 더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세상의 것을 더 얻으려는 욕심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그 일 안에서 내가 아닌 남을 위한 ‘무엇’을 찾는다면
어떨까요? 삶 자체가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갑곶성지에 눈이 왔습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연중 제3주간 수요일
2016년 다해 1월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 4,1-20
신학교에서 수업 평가서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강의를 하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신학교에서도 강의에 대한
평가를 학생들이 합니다. 강의 준비를 잘 했는지, 과제물을 적당했는지,
강의 내용은 효과적이었는지, 강의가 유익했는지에 대한 평가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강의록을
보완하기도 하고, 새로운 자료를 번역하기도 하고, 수업진행의 방식을
개선하기도 합니다. 제가 만나는 시간들은 학생들에게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는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가 있습니다. ‘삼겹살,
곱창, 감자탕, 해물탕, 냉면, 설렁탕’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들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맛집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식당의 주인들은 처음에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연구를 하였고, 다른 집과는 다른 맛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됩니다. 그리고 식당의 주인들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들이 개발한 특별한 비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육수에 넣는 특별한 재료, 자신들의 방법으로 만든 양념과 같은 것들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저도 한번쯤은 가서 먹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의 뼈를 깎는 노력과 희생이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동창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녁을 함께 하면서 열띤 토론을
하였습니다. 토론의 주제는 ‘사목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평가를 하자는
신부님들은 몇 가지 이유를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사목을 좀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평가를 받으면 자신이 사목을 잘하고 있는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스스로를 위한 자기 개발은 잘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본당과 신자 공동체를 위해서입니다. 열정과 신념을
갖춘 사제가 함께하는 본당 공동체는 더 많은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목적인 재능을 평가하면 특수사목과 같은 곳으로 파견하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사제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평가를 받지 않으면 나태해질 수 있고, 현실에 안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와 본당 공동체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과 각성이 필요합니다. 사목에 대한 평가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제는 온전히 교회를 위해서, 복음 선포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목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우려를 하는 신부님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지를 걱정하였습니다. 사목에 대한 평가는
주교님들의 몫이고, 주교님들께서 하실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제와 본당
공동체의 인격적인 만남을 어떻게 구체적인 수치로 정할 수 있는가를
걱정하였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목자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평가 받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두려움도 이야기
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라는 생각을 하지만 교계제도는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목을 평가한다는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열띤 토론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어느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을까요? 다음 동창모임에는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는 농부를 이야기 하시는 것 같습니다.
농부가 자갈밭을 옥토로 바꿀 수 있다면, 가시덤불을 뽑아낼 수 있다면,
길가를 밭으로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씨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씨는 그 안에 생명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 뿌려졌습니다. 말씀이 결실을 맺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의 밭이 비옥해야 합니다. 우리들
마음의 밭에 기도의 비료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친절과 온유, 겸손과 나눔의 하우스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말씀의 열매들이 전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밭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성경은 우선 자연산이라야
2016년 다해 1월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성경은 우선 자연산이라야
유기질 비료, 무 농약, 유기농, 자연산 이런 게 좋다고 합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에도 이런 원리를 적용해야 당연하다 봅니다.
인용개조, 자유 해석, 변조, 부분 인정 등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슬람, 마호멧, 회교, 유태교, 루터 등이 바로 그 예라 봅니다.
가톨릭은 사도로부터 이어내려 오며 1C부터 정성을 쏟았습니다.
계시인 성경이란 씨앗, 밭인 교회, 해석방식 다 자연산이라야죠.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마르코 4,20)”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도회] 희망을 밝히는 마음 밭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2016년 다해 연중 제3주간 수요일 마르 4,1-20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다.”(마르 4,8)
희망을 밝히는 마음 밭
서기 27년경부터 예수님의 활약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열 제자와 다른 제자들 그리고 일부 군중들은 메시아를 알아보고
그분의 가르침과 업적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따릅니다. 또한 영적인 것과
무관하게 기적과 정치적 해방을 기대하는 어정쩡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편 바리사이들과 헤로데당 사람들은 예수님께 적대감을 느껴 그분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30년경 말기로 접어들면서부터 적대자들의
방해와 군중의 무관심으로 인기를 잃어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는
제자들과 몇몇 여인들만이 그분 뒤를 따릅니다. 제자들마저도 실패한 듯
보이는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적대시한 ‘저 바깥사람들’(4,11)에게
씨 뿌리는 이의 비유를 들어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십니다. 그분은 무지와 무관심, 반대와 박해를 무릅쓰고
끝까지 희망의 씨를 뿌릴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나와 이 사회, 신앙공동체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우리는 그 씨앗이 뿌려져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꽃피우는 마음 밭을 지니고
있습니까? 오늘 비유에서 알 수 있듯 말씀의 씨앗은 어떤 땅이든 다
뿌려집니다. 문제는 밭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깊이 새기지 않고 자신을 탐욕의 대상으로 맡겨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4,15). 또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닥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마는 이들도 있습니다(4,16-17).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
때문에(1요한 2,16)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4,18-19).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말씀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며 환난 중에도 넘어지지 않고, 세상 걱정과 유혹과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는 좋은 땅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말씀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부드러움과 너그럽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주님의
영 안에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적대자들이 지녔던 편견과 선택받은 자신들만 구원되리라
믿는 안일함과 자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잘 준비되고
너그러우며 순수한가에 따라 풍부한 열매를 맺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고통을 겪고 탐욕에 사로잡히며 실패를 경험한다 하여도 그런 황폐한
내 마음 밭에도 어김없이 사랑의 씨앗, 생명의 씨앗을 뿌려주시고
기다려주시는 하느님께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죄까지도 용서해주시는
하느님 눈에는 쓸모없는 것이나 의미없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희망의 하느님을 갈망하며 고통과 시련 중이나, 앞날이 막막할 때에도
주님께서 뿌려주시는 말씀의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음 밭을
가꾸는 넉넉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1월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마르 4,14)
씨 뿌리는 사람이 많아야 거두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거둘 사람이 있겠습니까?
다윗은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고는 하느님의 집을 지어 드리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뜻을 갸륵히 여기시지만 다윗 때는 완성하지 못하고
아들 대에 가서야 완성될 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뭐든지 내가 씨 뿌리고 내가 그 결실을 거두고 싶어합니다.
4대강 사업도 그렇고 대부분의 국책사업들이
권력자의 치적으로 활용되다 보니 문제가 많은 것이지요.
내가 씨를 뿌리고 다음 대에 가서 결실을 거두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정치가, 종교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의 말씀 때문에
이렇게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말씀의 씨앗을 뿌립니다.
누군가가 때가 되면 거두게 되리라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풍성한 결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1월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르 4,1-20)
주님을 신뢰하듯 주님께서 뿌리신 씨를 우리는 신뢰해야 합니다.
농부는 자신이 뿌린 씨가 무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듯 씨앗은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과거의 것과 헤어지지 않고서는 결코 오늘의
새로운 새순의 마음이 될 순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은 자신을 최대한 굽히며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앉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버리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씨앗을 뿌리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씨앗을 받아들이는 데는 언제나 고통이 동반됩니다.
생명과 고통은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와 늘 함께하는
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숨결입니다.
고통 한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으로
열매맺고 행복해하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어두운 시간이 있기에 빛나는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속에서 열매 맺게 하시는 농부이신 주님을 신뢰합니다.
씨 뿌리는 주님께서 오늘도 가장 좋은 씨를 우리 일상안에 뿌려주십니다.
말씀의 씨앗을 기쁘게 기쁘게 받아들이고 맞아들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열매는 손발에서 맺어 진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1월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마르4,1-20)
열매는 손발에서 맺어 진다.
어떤 열매이든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가꾸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가
없습니다. 혹 씨를 뿌리더라도 아무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면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더더욱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하느님의 안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어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살지 않으면 열매는 맺어질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희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씨앗이 아무리 좋은들 그 씨앗이 떨어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한 토양이 좋다고 해도
씨앗이 좋지 않으면 역시 기대하는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풍요롭고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좋은 씨앗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토양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만들고 숨을
불어넣어주었으니 더없이 좋은 밭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풍성히 맺어지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말씀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씨앗이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부와 권력,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의 방식에 매달리기 때문에 자비와 용서, 나눔을 추구하는 하느님의
방식이 전혀 스며들지 못함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해도
세상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사로잡혀 그 말씀을 무시하고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밥 먹여 주느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말씀 안에 꾸준히
머무르면서 그 말씀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시련이 오면 말씀에
의지하기보다 세상 다른 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수능이나 혼사 등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상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밖의 여러 가지 욕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온갖 종류의 가시덤불,
진학, 결혼, 명예, 더 좋은 것, 미래에 대한 여러 걱정 등 욕심의 가시덤불은
말씀을 따르는 생각을 뒤덮어 버립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때만 좋은 것으로 인정될 뿐입니다. 가시덤불은
걱정과 욕심, 상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늘 최우선에 두고, 삶의 기반과 지침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믿음, 희망,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등경위의 등불처럼 세상을
환히 비추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더욱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깨닫게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자신과 다른 이에게 유익을 줍니다.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삶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결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열매는 손발에서
맺어집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씨앗의 법칙 7가지
1.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둔다. 거두려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2.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씨가 뿌리를 내리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과 제공시기 및 방법을 파악하라.
3.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곧바로 거둘 수 없다. 제공 했다고 해서 즉각
그 결과를 기대하지 마라.
4. 뿌린 씨 전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10개를 뿌렸다고 10개 모두를 수확할
수는 없다. 모든 일에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마라.
5. 뿌린 것보다 더 많이 거둔다. 모든 씨앗에서 수확을 못해도 결국 뿌린
것보다 많아 거둔다. 너무 이해타산에 급급하지 마라.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
손해를, 이익을 주면 이익을 얻는다. 심는 대로 거둔다.
7. 종자는 남겨 두어야 한다. 수확한 씨앗 중 일부는 다시 뿌릴 수 있게
종자로 남겨 두어야 한다. 받았으면 다시 되갚아라.
- 청주 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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