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하니
유옹 송창재
눈은 대기 중이다.
그렇다.
하늘은 꺼멓고 바람이 차다.
밤이기 때문 만은 아니다.
큰 눈이든 작은 눈이든 진눈개비든
일기예보에는 오늘 밤새 눈이다.
비행기가는 소리도 무거운 걸 보니 오기는 오려나 보다.
길잃은 유기견은 먹을 것을 저장해 두었을까?
바람막이가 있는 집이라도 구했을까?
입구는 좁고 깊이는 충분히 깊을까?
비 많이 오는 어느 날
길거리 모정밑에서 참, 꾀죄죄한 유기견을 본 적이 있다.
한 때는 미장원에 다니며 퍼흄을 하고 나비 리본을 꽂고 네일아트를 했을 법한 금발의 요크셔테리어 였다.
미혼의 근로자 집단 아파트 앞 조그마한 파고라의 마루밑에서 지나가는 내 차를 긴장한 눈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비가 오니 나다니지는 않았는지 털은 젖지 않았지만 금발은 이미 번쩍거림을 잃어 푸석하였다.
잠깐 멈추어 눈이 마주치자
더 기어 들어가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볼수 없었다.
영산이라는 오성산 줄기에서 보았던 금발의 묘령의 개여인은
오성산의 여신이 되었을까?
예전 운일암 반일암 옆 길가, 손바닥만한 겨울 해가 든 바위에 앉아서 온 몸에 비닐을 주렁주렁 감아서 덮고있던 할머니는 입고있는 라면봉지에서 생라면을 꺼내 먹고 있었는데!
내게 한 조각의 생라면을 건네주는 시늉을 했었다. 웃으며!
나도 그저 웃기만 했고.
갈 곳과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정신과 육체가 얼마나 고귀한가
날이 추워지니
눈이 온다하니
그 유기견과 그 할머니 생각이 갑자기 난다.
또 다른 새도 또 다른 아이도 있을텐데!
참, 나도 엉뚱하기는 하다.
요즘 김장철이라 몇 군데에서 겉절이가 들어왔고 김장김치 후원도 있었다.
저장 해야한다.
우리네 겨울은 연탄과 쌀과 김치였으니까.
그런 때가 또 왔나보다.
내 단골 술집과
내 단골 국수집이 휴업중이다.
갈 곳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서운한 것인지!
약속이나 한 듯이 김장 후유증으로 안주인들이 독감에 몸살로 꼼짝을 못한단다.
일주일 정도는.
나는 갑자기 정자밑으로 기어 들어가던,
한 때는 귀족이었던 풀죽은 요크셔테리아,
여름 좋았던 물 마르고,
마른 햇빛 겨우 손바닥만하게 비추던 초겨울 운일암 바위에서, 마른 라면을 둘러입은 비닐 옷 호주머니에서 꺼내 먹던
한 때는 누군가의 엄마였을 할머니가 생각나다니…
참으로 모질기도 한 놈이구나. 나도
전생이 거지였나보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눈이 온다하니 걱정도 많네요.
길 잃고 주인 없는
유기견(遺棄犬) 걱정을 다하니 말입니다.
따뜻한 온돌방에
엉덩이 붙이고
막걸리 한 잔이면 제격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선이 따로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