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7]‘직지直旨의 고장’ 청주淸州를 가다
5일에 이어 6일 외우畏友(빙강섭)와 함께 청주淸州 나들이를 했다. 친구는 순전히 나의 요청으로 하루종일 운전 서비스를 했다(임실역에서 8시반에 만나 청주 고인쇄박물관까지 200km, 오후엔 청남대에 들르고 오후 6시엔 전주에서 같이 동창 송년모임에 참석한 후 임실역에서 찢어진 시간이 오후 9시가 넘었다). “자네랑 다니면 내가 막 유식해지니 고마운 일”이라고 말 해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청주는 밀양과 진주에 이어 늘 가보고 싶던 도시였는데, 내일모레 칠십, 이제야 가다니 한심한 일이다. 청주를 왜 가고 싶었을까? 한마디로 그곳이 ‘직지直旨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직지의 숨결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직지가 무엇인지 한국인이라면 다 아실 터. 직지는 ‘불조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佛祖白雲和尙抄錄直旨心體要節’의 약칭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만든 책이다. 원래 상, 하 2권이나 상권은 오리무중,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우리 중학교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제작한 <성서> 42행이라고 배웠다. 그러던 것이 1972년 직지 하권(백운화상의 제자인 석찬과 달잠 스님이 1377년 제작, 구텐베르크보의 성서보다 78년 앞섬)이 발견됨으로써 역사적 기록이 뒤바뀌게 된 것이다. 흔히 ‘직지’보다 ‘직지심체요절’이라 부르는데, ‘직지심경’은 잘못된 약칭. 책에는 한국과 인도, 중국의 승려 145명의 작품에서 뽑은 운문과 노래, 찬가, 경전, 서신 등의 불교문헌이 담겨 있다.
아무튼 청주의 <고인쇄박물관>(1992년 건립)은 '직지에 대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옆에는 직지를 찍던 흥국사터(1985년 유물발굴 확인)가 있고, 박물관 앞 대로변에는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있다. 한 걸음에 세 곳을 볼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할까? 이 책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사연이 드라마틱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 박병선(1929-2011) 박사가 1972년 다른 나라의 서적과 섞여 있던 이 책을 발견, 끈질긴 연구와 자료 수집 끝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아,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박박사는 1975년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당한 <조선왕조 의궤>도 발견하여 세계기록유산 등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영구임대’(웃기는 용어이다)하게 만든 ‘직지의 대모’라 불리는 잘 알려진 ‘문화 애국자’이다.
오죽했으면 유네스코가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직지상JIK JI PRIZE>을 제정하여 2년마다 기록유산 보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시상을 해오고 있겠는가. 유네스코가 제정한 상으로 <세종상 SEJONG PRIZE>도 있다. 이는 훈민정음해례본을 등재하면서 제정한 상인데, 우리나라의 기록유산 2종으로 인하여 이런 세계적인 상이 제정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이는 우리의 우수했던 인쇄문화와 문자문화가 세계 만방에 이름을 떨치는 방증일 것이다. 또한 유네스코는 국제기구인 <국제기록유산센터> 건립을 2017년부터 추진하여 지난 11월 1일 청주에서 개관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맞게 국제기록유산센터는 <세계기록유산, 인류의 빛이 되다>는 개관기념 특별전(2024년 6월까지 전시)을 개최하고 있었다. 행운이었다.
점심은 당연히 내가 쏘야할 일. 충청도에 왔으니 ‘올갱이국’이다. 올갱이는 표준어로는 다슬기(우리 동네는 대수리나 대사리이고, 강원도나 경상도는 ‘고디’다). 다슬이탕은 부추보다 아욱으로 끓여야 제맛이다. 새포란 국물을 마셔보라. 그전날 숙취는 간곳이 없다.
오후엔 역대 대통령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청남대淸南臺로 향했다. 1982년 전두환(군사쿠데타를 성공한‘서울의 봄의 주역’)이 조성하여 YS가 가장 많이 애용했다한다. 대통령실 별관은 아무리 뒤틀린 현대사일망정 둘러볼 만했다. 20대 대통령으로 윤모씨가 나중에(금명간) 이곳에 명함을 내밀 것이니(이것도 명백한 역사이므로 어쩔 수 없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충북도에 이 명소를 완전히 명의이양함으로써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인데, 산책코스로 이만한 곳도 별로 없을 듯했다. 계절마다 거닐어보면 좋겠다. 사랑하는 옆지기와 꼬옥 와야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수반들을 정리해놓은 건물도 볼만했다. 그중에 한 명은 눈엣가시이지만, 동상까지 세워놓았다. 하기야 국부國父라며 기념관을 세우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판인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뒤편에 봉황이 나래를 편 ‘대통령 사무실 의자’에 앉아본다. 만약에 내가 ‘대권’을 쥔다면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못한다해도 지금처럼 무도하고 무법천지의 정치는 하지 않을 것같다. 씁쓸하다.
오후 4시, 갈 길이 바쁘다. 6시 고등학교 동기동창 송년모임이 전주에서 있기 때문이다. 때맞춰 만난 16명의 면면이 반갑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기에 삼삼오오 수다를 떤다. 차기 회장을 뽑고 2차 가는 친구들은 가고, 우리 둘은 임실로 향했다. 그날도 그 전날에 이어 강행군. 내일은 꾀복쟁이 친구가 가실일을 끝마쳤으니, 여수로 회 먹으러 가잔다. 좋다. 조오타. 금세 7명이 모여, 어제도 망년회.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