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Yuji)’ 논문과 연구윤리 / 천정환
최근 일어난 사건들은 또다시 대학과 학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었다. 대학과 학계 바깥에 있는 시민들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 연구윤리는 사회윤리며 민주주의의 문제다. 거액의 세금이 대학과 학계에 지원되고 있는데 부정·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회의 지배계급과 최상층 부자들은 ‘논문’으로 자녀의 스펙 사냥을 하고, 학벌과 학위를 직간접 구매한다. 그들은 돈과 정치권력 외에도 상징권력과 문화적 ‘능력’을 독점하려 한다. 학위·학벌 사냥은 위로부터의 ‘구별짓기’와 계급지배의 주요 수단이다. 이를 위한 만만한 카운터파트가 일부 대학과 교수들이다.
학술논문을 한 편이라도 제대로 발표해본 사람들은, 이제 하나의 밈이 된 ‘유지(Yuji)’ 논문 같은 것이 어떻게, 왜, 존재하는지 안다. 사실 논문을 제대로 써서 세상에 내놓는 일은 어렵다. 학술적 글쓰기와 전문용어를 몸에 익히고, 데이터와 자료를 수집·배치하고 논리를 만드는 일이 간단치 않다. 박사논문을 쓴다는 것은 이 과정을 종합하여 최소 2~3년은 몰입·집중한다는 일이다. 그래서 체력과 지력이 좋은 젊은 연구자들도 (정상적인) 박사과정에서는 여럿 중도 탈락한다. 다른 업을 병행하기가 어렵고 학비도 만만찮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일부 대학과 특수대학원, 그리고 일부 분야에서 나오는 논문은 쉽게 만들어져 왔다. 일부 대학과 교수가 유한계급, 고위공무원, 특권층을 대상으로 ‘학위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학술논문은 엄격하고 공정한 동료심사(peer review)라는 것을 (비밀리에) 받게 돼 있다. ‘Yuji’ 논문이 공간될 수 있었다는 것은, 투고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학회에 어떤 문제가 있어 심사가 공정하지 않고 심사자들이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근 비슷한 사안을 ‘뉴스타파’가 보도했다. 관광학 관련 학회 차원의 연구부정을 파헤치고 한국연구재단의 허술한 관리를 비판했다. 그 학회 교수들은 공공연하게 논문 심사 장부를 조작하고, 내부고발자를 색출하기 위해 대학원생들을 탄압했다 한다.
연구 부정과 대학의 비리는 크게 두 종류가 있겠다. 하나는 ‘내재적 부패’로 재정과 연구비를 둘러싼 이권, 그리고 인사 때문에 생겨난다. 논문 편수만으로 안일하게 인사를 진행하는 대학들에서는 교수직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논문을 ‘짜낸다’. 그래서 표절과 부실 논문이 양산된다. 제도개선을 통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까. 논문과 학회를 매개로 하는 부정에 관해서는 외부 전문가나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개평가(Open Peer Review) 제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또한 학위 수여 제도를 공공화하고 특수대학원과 일반대학원의 제도를 엄격히 분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과 연구자들이 바뀌고 각성하지 않으면 좋은 제도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오늘날 대학은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돈독이 잔뜩 올라 있고 경쟁과 성과주의 외의 ‘가치’는 돌보지 않는 곳이 돼 버렸다. 그런 대학을 지배하는 세력을 견제할 주체(교수회, 학생회, 노동조합 등)는 미미하거나 갈가리 분열돼 있다. 이제 한국 대학은 전체 사회 평균보다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곳이라 생각한다. 이번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대 주요 보직교수가 일베 유저 수준의 말을 거리낌 없이 SNS에서 했던 일은 좋은 사례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외재적 부패다. 앞에 말한 대로 대학과 학문을 자신들의 자본을 더 늘리고 계급을 세습하는 수단으로 삼는 강력한 외력이 존재한다. ‘Yuji’ 논문은 조국 가족의 스펙 품앗이 네트워크, 최순실·정유라와 그 하수인들이 저지른 일들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단지 윤석열씨 부인만이 아니라 거명되고 있는 몇몇 유력 정치인의 학위 논문도 검증되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반민주적이며 후진적인 영역을 민주화·공공화하는 일과 연관되기에 절실하다.
차제에 교육부가 나서서 박사 학위가 있는 정치인, 고위 공직자, 언론사 간부들의 논문을 전수 조사해보면 어떨까? ‘카피킬러’와 해당 분야 전문가 두 사람씩만 있으면 간단히 표절과 문제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학회 및 대학의 연구와 학위 관련 부정·비리를 고발하는 창구를 운영하고 그 조사 결과를 공개해보면 어떨까? 단죄만이 답은 아니지만 부패가 일상화되어 기준 자체가 모호해진 상황을 아프게 반성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제도’도 힘을 발휘할 것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입력 : 2021.07.15 03:00 수정 : 2021.07.15 03:0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71503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