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0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닌다고 했던 바울처럼 정말 내 몸에도 예수의 흔적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내 몸과 마음에는 주님을 욕되게 한 상흔(傷痕)밖에는 없음 또한 고백합니다.
어찌하여 이 죄인은 주님을 그리도 무시하며 살았는지요?
내가 봐도 나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죽기에 합당한 자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사 주의 십자가와 무덤에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에게 정결한 맘을 주시고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이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의 강한 손으로 날 장악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히 10:26-39
제목 :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이 무섭지만 그래도 그 손에 빠지기를 원합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나의 묵상
하늘에 속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흘리신 피로 우리의 육체만 아니라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로 이끄신다(9:14).
또한 하나님께서 창세전 언약으로 주신 영원한 복인 영생을 주셔서 그 생명으로 하나님과 사귐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이다.(9:15).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두 가지 복을 소유하는데 하나는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요 다른 하나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권리(담대함)를 가진 것이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 곧 예수를 믿었으나 그 신앙의 신선도가 점점 떨어져 과거에 믿었던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이들을 향하여 엄중한 경고를 한다.
이는 배교와 진배없으며 진리의 지식을 아는 자가 배교하는 일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만일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씻을 제사가 없으며 거기에는 오직 심판을 기다리는 두려움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무서운 불만 있을 뿐이다.
과거 모세의 율법을 어긴 자들도 어김없이 멸망을 당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자가 어떻게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 곧 고의로 계속해서 죄를 짓는 자가 받을 형벌이야 두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다는 말씀도 알고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자가 되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와 같은 완전한 심판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을 씻고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
이어서 기자는 공동체가 이미 받았던 박해를 기억하면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 것을 격려한다.
너희가 빛을 받은 후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후에 받았던 큰 고난을 믿음으로 잘 견뎌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때로는 비방과 환난을 당하면서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구경거리가 되었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이들은 서로 옥에 갇혀 있는 자들을 돌아보았고 심지어 모든 재산을 몰수당할지라도 기쁨을 잃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땅에 있는 것을 영원한 소유로 삼지 않고 그들이 받을 더 낫고 영원한 소유가 하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들이 재산까지 다 몰수당하고 잃을지라도 한 가지 잃어버리지 말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담대함(파레시아)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다름 아니라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이며 또한 다시 오실 그리스도시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실 것인데 결코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인데 그런 그가 뒤로 물러나면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물러나는 것은 곧 배교를 뜻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할 자들이다.
히브리서 독자들은 지금 박해의 현실에서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처음에 예수를 믿으면서 그 믿음으로 옥에 갇힌 자들을 동정하였다.
게다가 이런 이들을 동정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였는데 이 박해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는 박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 박해까지도 기쁨으로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들이 받을 영원한 소유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랬던 믿음의 소유자들이 지금 그 믿음이 떨어져서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배교로 표현되며 오늘 본문 26절에서는 짐짓 죄를 범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고의로 짓는 죄를 말한다.
고의로 짓는 죄는 다시 죄사함이 불가능한 죄로 표현된다(26-27절).
여기서 죄사함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 죄가 너무 크거나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배교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거부가 그리스도와 십자가로부터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박해상황에 있는 형제들로 하여금 어떠한 경우에도 주께서 열어놓으신 길을 포기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이 세상에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아무리 죄를 안 짓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그 안에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그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땅에 있는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교를 믿는 이들 속에는 ‘하나님처럼’이라는 자기 의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가 잘 되려고 하는 죄 곧 하나님을 이용하는 죄가 상존한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나의 믿음 없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나는 복음을 알고 이미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
그런데 내 안에 차고 넘치는 정욕으로 인하여 짐짓 죄를 범하는 모습이 상존하는 것이다.
이런 죄는 고의로 짓는 죄로써 히브리서 기자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까지 한다.
게다가 나는 진리의 복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자였고 나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이런 내가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거울 것인지 생각하라고 경고하고 있다(29절).
나는 정말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한다.
나의 가증스런 행실로 여러 사람을 아프게 하였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하게 한 죄는 내가 무엇으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떠한 경우도 내 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나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완전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힘입어 아버지 품으로 담대히(파레시아) 나아간다.
고개를 들 수 없고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그저 면목 없음과 죄스럽지만 뻔뻔함으로 주님 손을 붙든다.
나의 두 손을 들고 항복하며 나의 티끌 됨을 고백한다.
잠시 잠깐 후면 지체하지 않고 우리 주님이 오실 것을 믿고 기대하여 기다린다.
나의 속사람이나 겉사람이 썩어 부패하여 냄새나는 것 같다.
다윗이 ‘하나님처럼’의 죄를 범한 후에 갓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심판 세 가지를 자신이 정할 수 없어 하나님께 맡겼던 것을 기억한다(대상 21장).
이 시간 나 역시 아들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린다.
오늘 본문 31절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심판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며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나의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에 나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살 수 있도록 하심도 주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하여 그 무서움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
(대상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나의 진리를 거역한 죄 됨과 이중적인 모습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리고 주님의 무덤에 함께 연합하여 그 안에 머문다.
그 무덤의 기간은 나에게 있지 않다.
주께서 나를 꺼내주실 때까지 기다린다.
그곳이 내가 숨 쉬고 거할 나의 집임을 알기에...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비록 히브리서의 독자들과 같이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육신의 정욕과 미혹 앞에서 복음을 떠난 자로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경건의 모양이라는 무화과옷으로 나를 두른 채 육신으로 살았던 나를 고발합니다.
그것이 바로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임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의 목숨이 아직 붙어 있기에 나에게는 기회가 있음을 믿습니다.
따라서 나의 힘이나 나의 의가 아니라 오직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 품으로 나를 내어 던집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배교까지는 아닐지라도 주님을 멀리하려는 이 마음이 오늘날 배교임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말씀으로 주님의 품에 거하게 하소서.
이 자리가 주님과 함께하는 무덤이요 나를 장사하는 자리임을 믿사오니 오늘도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