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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재클럽(Y-Club) 원문보기 글쓴이: 카안
月明庵 落照臺 일옥은 스승인 희 선사가 입적하자 삼 년을 스승의 방에서 영(影)을 모시고 살다가 삼년상을 마치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일옥은 17세에 변산 월명암으로 향했다. 그동안 봉서사에서 여러 신이(神異)한 자취를 많이 남긴 터라 되도록 자신의 자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변산의 사대 사찰인 내소사, 실상사, 청림사, 선계사 등에는 들르지 않고 바로 월명암으로 올라갔다. 신승(神僧)으로 이름을 날린 자신을 감추자니 일옥이란 이름을 계속 쓸 수가 없어서 산을 오르면서 ‘진묵’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진(震)은 삼한의 진 나라를 뜻하고, 묵(墨)은 적묵(寂黙)이니, 곧 ‘해동의 석가모니’란 뜻이다. 석가모니를 한문으로 의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黙)’이라 한다.
부안 변산 월명암. 그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자리는 틀림없을 것이다.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동쪽 산악. 저 멀리 어딘가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목부암(나중에 원등암으로 개칭)으로 가셨다고 한다.
월명암에 모셔져 있는 진묵스님 진영.
진묵은 월명암에서 묵언을 시작하여 팔년 동안 밤과 낮을 잊고 오직 참선 정진을 하였다. 때로는 법당에서 때로는 낙조대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참선을 하였다. 부안의 변산(邊山)은 원래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원효대사가 수도한 토굴인 ‘원효방’과 진표율사의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그리고 월명암은 부설(浮雪)거사의 도량이다. 이 가운데 특히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1년(691)에 부설거사가 창건한 곳으로 유명한 성 도량(聖道場)이다. 부설거사는 불국사 원정(圓淨)스님의 제자인데, 영조(靈照) 영희(靈熙)와 만나 변산에서 10년을 공부하고 오대산으로 가던 길에 만경에서 묘화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설거사로 칭하고 네 가족이 함께 수행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부설거사는 앞으로 이곳에서 사성(四聖) 팔현(八賢)이 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하는데, 사성은 곧 부설거사의 네 권속이고 팔현은 성암(成庵) 행암(行庵) 두 스님과 학명(鶴鳴)선사를 들고 있다. 그러므로 아직 한 자리가 남아 있다. 팔현이라고 해서 사성 이외에 팔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성을 합쳐서 팔현이라고 한 것이다. 사고팔고(四苦八苦)도 네 가지 고통과 여덟 가지 고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八고 속에는 四고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은 말이다. 월명암 연혁에는 초창은 부설거사(신라 신문왕 11년, 691), 제2창 진묵대사(조선 선조 25년, 1592), 제3창은 서암화상(철종 14년, 1863), 제4창 학명선사(1915), 제5창 원명스님(1956)으로 전하고 있다. 부설거사에 대하여는 따로 글을 지을 생각이므로 여기에는 자세한 기록을 하지 않으며, 그 가운데 학명선사는 원불교 교조 소태산과의 교분으로 잘 알려진 어른으로 그 이름이 일본에까지 전해진 유명한 선사이다. 월명암의 낙조는 동해 낙산사의 일출과 함께 한반도 이절(二絶)이라 할 만큼 절경이다. 일출도 장관이겠지만, 서해의 낙조는 훨씬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진묵은 눈 비오는 날을 제외하곤 석양 무렵이면 매일같이 낙조대에 서서 무한한 환희와 감동에 찬 표정으로 서녘하늘을 응시하였다. 음력 칠월 보름날 구순안거 회향일인 해제 날이었다. 이 날도 석양에 진묵은 홀로 낙조대에 우뚝 서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같이 팔년을 수행하던 진여(眞如)와 혜성(慧性) 두 스님도 낙조대로 가서 진묵을 바라보았다. “아~” 진묵은 석양을 바라보다가 오랜 묵언 침묵을 깨고 감격에 어린 한마디 긴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낙조대에서 바라본 서해안 풍경.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구나! 나는 이제 자유를 얻었노라! 자유를 얻었노라!” 진묵은 자유를 얻었다는 말만 수백 번 되풀이 하면서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여와 혜성은 말없이 지켜만 보았다. 그 얼마나 희열에 넘쳤으면 노래를 부르며 춤을 덩실덩실 추었을까? 진묵이 17세에 월명암에 올라 팔 년간의 적공 끝에 대각을 이루었으니, 그의 나이 26세 때의 일이다. 이것은 또한 참으로 묘한 기연이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께서도 26세에 대각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진묵이 월명암에서 26세에 대각을 이루었는데 반하여, 소태산은 같은 26세에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서 대각을 이루었고 4년 후에 이 월명암을 찾아 한쪽에 석두암을 짓고 새 회상을 열 구상을 하며 정양을 한 곳이기도 하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참으로 범상치 않은 기연이다. 소태산은 아마도 전세의 자취를 따라 월명암에 잠시 머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각한 나이만 같은 것이 아니라 두 대각도인은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별로 스승의 지도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자수 자각하였다는 것이며, 또한 스승의 감정이나 해오(解悟)의 증득과정이 없이 스스로 확철 대오하였음을 자인한 것이 공통점이다. 다만 다른 것은 진묵은 세상을 유유자재하며 유희장을 삼다 가셨고, 소태산은 한 회상을 열고 많은 일을 하고 가셨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다르다고 하는 표현도 굳이 하는 말이고, 결국은 같은 일을 하러 한국 땅에 거듭 오신 것이리라. 두 스님은 진묵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묵이 드디어 대각을 이루어 대자유를 얻은 것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보름달이 중천에 떠오르도록 까지 춤을 추고 기뻐하던 진묵은 노래와 춤을 멈추고 보름달을 응시했다. 그의 안광은 밝은 달빛을 무색케 하고 있었다. 두 스님은 땅위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진묵의 큰 깨침을 경하했다. 선객들을 해제가 되었어도 산을 내려가지 않고 용맹적공하고 있었다. 진묵의 큰 깨침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느 날 밤 진묵의 눈에 먼데 산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들어왔다. 전주 청량산 방향인데, 그동안 월명암에서 8년을 지냈어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불빛이었다. 그 먼 거리에서 불빛이 보일 까닭이 없는데 오직 진묵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았다. 이튿날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산을 내려와 불빛이 보이던 곳으로 향했다. 아침에 진여와 혜성은 진묵이 사라진 것을 알고 무척 서운했다. 두 스님은 생각에 아마도 봉서사로 갔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봉서사를 향해 길을 떠났다. 둘이 한나절을 걸어서 큰 개울가에 당도했을 때 저 멀리서 천렵(川獵)하는 하동(河童)들과 함께 물장난을 하고 있는 진묵을 발견하게 된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진묵은 장삼과 웃옷을 벗어 던진 채 개울에서 고기를 잡은 아이들과 어울려 한바탕 신나게 천진한 모습으로 놀고 있었다. 도반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었으나 진묵은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떼를 쫓느라고 물속을 첨벙거리며 아이들처럼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두 스님이 보기에 진묵의 아무 꾸밈없는 천진한 모습이 마치 화장세계(華藏世界)에서 노니는 불보살처럼 보였다. 이윽고 하동들은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면서 진묵을 흘낏거렸다. 그러면서 배를 가른 고기를 물에 깨끗이 씻어서 한 소쿠리 내밀었다. 스님을 놀려줄 심산이었다. “스님도 좀 잡수세요.” 진묵은 태연하게 말했다. “어이구, 맛있겠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먹누?” “고추장에 찍어 드시는 거예요.” “허허, 너희들이야 고기만 먹는다지만 어른들은 안주만 먹는 법이 아니란다. 곡차가 있어야지.” “스님, 곡차가 무언데요? 고기를 안주삼아 먹는 건 술인데요?” “응, 원래 곡식으로 빚은 거니까 곡차라고 하는 거야. 술은 속된 범부들이나 하는 말이고.” 한 아이가 집으로 뛰어가더니 잘 익은 막걸리를 가져왔다. “배 가른 것은 너희들이나 먹고 기왕이면 산 걸로 가져 오렴.” 진묵은 곡차를 마시며 살아있는 물고기를 고추장을 찍어 한 동이나 먹어 버렸다. 그러고는 큰 대자로 누워 잠이 들었다. 두 스님은 어안이 벙벙했다. ‘스님이 살생을 하고 술을 먹다니?’ 한숨을 잘 자고 난 진묵에게 말했다. “어째서 스님이 살생을 한단 말입니까?” “내가 무슨 살생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그러면 도로 살려 내면 되지요.” 두 스님은 더욱 어리둥절했다. 아이들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진묵을 바라보았다. 이미 뱃속으로 들어가 버린 물고기를 무슨 재주로 도로 살려 낸단 말인가? 진묵은 주저함도 없이 바지춤을 내리더니 개울물에 엉덩이를 대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싱싱한 살아있는 물고기가 쏟아져 나와 활기차게 헤엄치는 것이 아닌가? 실로 보도 듣도 못한 놀라운 광경에 두 스님과 아이들은 말문이 막혔다. 제자 되기를 간청하는 두 도반과 헤어져 각자의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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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뱡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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