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엿샛날,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습니다. 헝가리를 떠나 슬로바키아에서 점심을 먹고 폴란드로 향합니다.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경계에 있는 산, 자코파네라는 곳으로 가는 길, 변함없이 날씨는 화창합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이 창밖으로 펼쳐지는데, 여전히 풍경은 푸르기만 합니다.
원래 이곳은 예정에 없던 곳인데 어찌 가게 되었는지 지금 기억이 나질 않네요.
폴란드 가는 길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였던 것도 같고요. 가이드 율리아노 형제도 처음 가는 곳이라니
자세한 설명을 듣기는 틀린 것 같고, 그저 풍경 안에서 눈을 좀 쉬어가자 싶었지요.
폴란드로 들어서니 집들의 모양이 그간 봐왔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차창으로 스치는 집이 꼭 그려놓은 것 같기도 하고 집마다 커텐은 레이스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통나무로 만든 화려하지 않은 집들의 처마 끝이나 창가엔 예쁜 꽃들이 걸려 있는 걸 보니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 마음이 어떠하리라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폴란드의 휴양도시, 자코파네는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불린다는 타트라 산맥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주어진 두 시간의 자유시간, 특별히 봐야할 것도 가야 할 곳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자그마한 이 마을의 거리를 걸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지요.
길거리 상점에서 물건을 사며 이곳이 왜 유명한가 물었더니 겨울 스포츠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산과 마을의 지붕들에 눈이 쌓이는 겨울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다운 풍경이 됩니다.
마을이 형성된 지 100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상가 주인은 성당 한곳을 소개해 주더군요.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 다녀 가신 곳이라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오다가 본 그곳인 것 같습니다.
수녀님 두분도 길을 찾고 계신듯....
휴양지라더니 역시나 관광객들로 보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작은 수레는 뭘까 궁금해져서 다가가 봅니다.
빵처럼 생겼는데 빵은 아니고 양젖으로 만든 수제 치즈라고 합니다.
이곳의 특산품이라는데 그냥 보기만 했지요.
기념품 가게 앞의 할머님은 머리수건에 두툼한 양말까지 신으시고 그래도 추우신지
주머니에 양손을 깊이 넣고 계십니다. 반팔에 반바지 차림의 관광객들도 많은데....
물건이 많이 팔려서 할머니 마음도 몸도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머릿수건은 아마도 이곳 주민들의 스타일인 것도 같네요.
그래서 저도 엄마에게 드릴 스카프 두개를 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방에 넣어야 할 짐은 늘어만 가고
내가 가질 건 아니라고 위안을 삼습니다만,
순례 중에 여전히 물질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복장이 참 특이한 아주머니가 어디론가 바삐 걸어갑니다
재래시장 같기도 한 이곳의 허름한 식당에서 구운 소시지와 돼지고기 요리를 팔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길거리 상가들에 눈을 팔고 있는 동안 형제님과 신부님은 맥주를 한잔씩 하셨다는데
아마도 이곳이 아닐까 싶네요.
장작불에 구운 삼겸살(?)과 시원한 맥주 한잔이라...
어찌보면 그쪽이 더 실속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 점원 아가씨가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내밀고 웃어줍니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웃음에 카메라 셧터를 누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무의 열매는 빨갛게 익어가고,
가을이 지나는 이 거리에선 사람들의 마음도 왠지 모를 풍성함으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만 같습니다.
이곳의 가로등은 똑바르게 서 있질 않고 한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꽃을 달고 서 있는 가로등, 낮엔 꽃때문에 가로등이 환하고
밤엔 불빛으로 꽃이 또 환하게 빛을 발하겠지요?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다는 것, 참 좋은 관계인 것 같습니다.
언니를 따라서 동생은 신이 나서 가게를 향해 걸어갑니다.
조금 더 큰 아이들, 그러나 여전히 풍선을 손에 들고 얼굴엔 장난끼로 가득합니다.
이 아이들 마음 속엔 풍선만큼이나 부푼 꿈이나 희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겠지요?
많이 커버린 아이들, 손에서 풍선을 놓아버린지는 오래겠지만 마음 속 보이지 않는 소망만큼은 끝까지 간직하고
어른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두 시간의 자유 시간이 끝나고 미사를 드리기 위해 찾은 곳.
상점 주인이 말했던 그 성당의 마당입니다. 자코파네는 계획에 없던 곳이기에 미사를 드리는 장소도
현지에서 찾아야했지요.
율리아노 형제님과 마조리노 신부님은 이곳 본당 신부님을 찾아 사정 얘기를 하고 승낙을 얻어 오셨습니다.
갑작스런 외지인들의 방문이 당혹스럽기도 하셨으련만 본당신부님은 흔쾌히 마음을 여셨다고요...
어디서든 가톨릭은 보편되고 하나인 공동체라는 느낌이 마음을 참 훈훈하게 했습니다.
폴란드,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교황님의 나라....
알보고니 이 성당은 교황님이 저격을 당하시고도 살아계심에 감사하면서
주민들이 그 당시 파티마 성모님께 기도드린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봉헌된 성당이라고 합니다.
요한 바오로께서는 두 번 이곳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셨다고,,,
성당 정문을 들어서면 요한 바오로께서 두 팔을 벌려 방문객을 맞이하십니다.
'TOTUS TUUS' , ' 저는 온전히 당신 것입니다' 라는 교황님 살아 생전의 모토가 성당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연히 들르게 된 이곳,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손길에 놀라움과 경이, 깊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요.
우연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뾰족한 지붕이 잇대어 있는 작은 경당. 꼭 산장같은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어둑해오는 저녁, 본당의 외벽에 색색의 유리화가 곱습니다.
예약없이 들이닥친(?) 방문객들을 위해 미사를 준비해주신 수녀님,
지나가는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신 본당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통나무 경당에서의 미사는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다알리아꽃들이 활짝 피어 있는 정원 한 켠에 초봉헌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꽃도 아름답지만 불켜진 작은 촛불들이 저녁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며 타오르는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였지요.
반가운 교황님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든 인자한 할아버지 같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줍니다.
이 다음 하늘에 가면 한번도 뵌 적 없는 하느님보다 이분이 더 반갑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경당 옆의 본당은 어떻게 생겼나 들여다보니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성체현시중, 멀리 제대 앞에 무릎 꿇고 계신 신부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살짝 나옵니다.
미사를 허락하신 신부님, 고 맙 습 니 다
다시 버스에 오르기 위해 성당 뒷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 다음 순례지를 향해 떠나는 길 ,
불빛 속에서 예수님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