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늑대 (8편 - 동물나라 페스티발)
/ 모네타
아름다운 여우가 화장대앞에서
요리조리 거울을 보며 한껏 폼을 잡고 있다
긴 속눈썹을 붙여 보았다 떼었다
미백크림을 듬뿍 손에 찍어
얼굴에 바르고
빨래하듯 흰 천으로 문지른다
분가루로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마지막으로 빨간 립스틱으로
입술을 석류보다 더 빨갛게 칠한다
화장이 끝나자 화장대에서 일어서
전신을 거울에 비추어보다
한 바퀴 빙그르르 돌고
하얀미소가 입가에 배시시
숯처녀의 어리석은 미소처럼
한없이 짓는다
밖으로 나간다
인간이 되고픈 구미호는 전부터
시간만 되면
인간세상을 엿보고 심지어는
선망하는 여인의 방에서 좋은 물건들이
눈에 띠면 몰래 잠입하여 훔치고
모아놓은 물건들을
자신의 집옆에 있는 바위굴에
저장해 놓았다
오늘은 동물세계의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태백산 깊고 깊은 골에서는
10년마다 한번씩 미인 선발대회가
동사모가 주축이 되어
성대하게 일주일간 열린다
동사모 회장인 오랑우탄이 2년 전부터
초빙한 심사위원들이 모여들고
각처에서 살던 동물들이 모여
3일동안 축제를 즐기고
4, 5일째 되는 날에는 미인선발대회
6일째 되는 날에는 재주뽐내기
나머지 날은 쌍쌍페스티벌이다
이 페스티벌에서 새로운 남녀간의
짝이 생겨나
동물세계의 큰 맥을 이어간다
동물세계 탄생 천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이번 대회는
자못 규모가 엄청 크고
못 보던 동물들도 많이 참가한다고 했다
심사위원장 오랑우탄
수석심사위원 고릴라
심사위원 악발이(일명 악어)
맹꽁이
코뿔소
호랑이
굼벵이
나비
감사위원 사자
산도야지
참가하는 동물들은 각 대륙별
대표하는 짐승들,
먼저 대륙에서 예선대회가 열려
뽑힌 동물들이 참가자격을 얻고
참석이 허락된다
한국에서는 구미호
미국에서는 암소
중국에서는 두더지
영국에서는 독수리
케냐에서는 얼룩말
브라질에서는 유인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하이에나
등등등
모두 100명의 미인들이 참가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다
그러니 여우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4일째 예선대회에서 30%만 통과
5일째 되는 날에는
진, 선, 미와 곁다리 미인들을 뽑게
되는 것이다
여우는 이 대회를 위해
엄청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이어트는 기본
오전에는 가게에서 일 보다가
오후에는 등산
그리고 에어로빅과 핼스
일주일에 세 번 마사지를 받았고
핼스에서는 PT를 계속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몸매는 물결따라 흐르듯
자연스런 몸의 곡선들이
태초의 모습대로 만들어졌고
살결의 윤기는 자르르 고운 은백색으로
고귀함을 내재
누가 보듯 안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들었다
옷은 ‘만드나마나’ 의상실
수석디자이너인 개구리의 솜씨,
올챙이부터 개구리될때까지 배운
매미같이 얇아 비출 것 같으면서도
비추거나 속안이 보이지도 않는
얇은 천으로 날아갈 듯
하늘거리는 옷을 만들었고
구두는 송이껍질로 만지면 부서지는
Qy족구두를 만들었고
시상식에 나아갈 마차는
수십마리의 달팽이가 끌고
반디불이로 치장을 하였고
마차의 주변은 매미날개로 창과
문을 만들었다
오늘부터 열리는 미인대회
지금부터 기선을 잡지 않으면
결국에는 낙방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다는 고언을
선배들한테 들었던 것이다
3일 동안의 축제 기간 동안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유도해내고
우아하고 멋진 모습을 연출해내야만
며칠 후 미인대회때
다른 동물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가장 특효약은 머니머니해도 머니이다
아니 세상에 누가 머니를 싫어하겠는가
싫다면 그건 비엉신이지
여우가 사는 집 아래 마을
빨래둥이 코흘리개 천덕꺼리개
순이라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여우는 축제를 위해
댄스도 많이 배웠다
훌라라 댄스
살사 댄스
지르박 탱고
한 박자 치고 돌아서 두 박자 치고
다시 옆으로 나아가
우아하게 회전하면서
구두굽으로 바닥을 쿵쿵 짓고
아주 우아하고 색시하게
병아리 물마시는 모습으로 하늘을 본다
그러면 아마 모두가 그 모습에 뿅
맛이 갈 것이다
그다음에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동물미인대회 미스 진 구미호
자랑스런 한국의 구미호
생각만해도 입에 군침이 돌고
‘갤갤갤’ 침이 저절로
흘러내려 턱을 적신다
우승하면 오매불망 사모하는
늑대 총각이랑
마지막 날에 춤을 출수도 있고
그것이 연이 되어
오붓한 가정도 꾸릴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거양득
포동포동한 토끼 한 마리를
껍질도 뻬끼지 않고 그냥 꿀꺽
마시는 거나 매한가지이다
은백색 털을 가진 늑대 청년
동물 세계 나라의 임금의 다섯째 아들
차기 군주로 내정된 자
여우는 상상만해도 오금이 저리다
다리를 너무 꼬다보니
오줌이 마려올 정도이다
아랫도리가 흐느적거리며
금빛 꽃비가 머리위로 수없이
쏟아져 내린다
입은 찢어져 하마같이 ‘벌렁벌렁’
코는 개코같이 ‘끙끙끙’
전에 인간빨래터에서 보았던
순이의 저돌적인 행동처럼
다리는 배배 꼬여 바람을 탄다
여우는 이미 끝난 시합처럼
축제 장소로 우렁차게 나아간다
보무도 당당
돌진하는 장수처럼 개선가를
입에 달고 나아간다
구미호의 미모와 재주는 하늘도
알고 있는 법
단지 세상을 역행하는 일들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축제는 반드시 구미호의 날일 것이다
태백산 골짜기에 마련된
축제 장소에는 이미 많은 동물들이
모여 와인을 마신다
바비큐를 먹는다
삼삼오오 히히덕거리며 즐기고 있다
돼지들은 구운 돼지를 먹고
호랑이는 꿩 육회를 먹고
사자는 훈제된 말고기를 먹고
악어는 방금 잡은 영양 한 마리를
통째로 삼키고 있다
하이에나는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니다 떨어진 고기를 주워 먹고
종달새는 콩을 톡톡 부리로 쪼아 먹고
황새는 긴 병에 담긴
물고기를 긴 주둥이로 건져내어 삼킨다
하마는 맥주가 든
드럼통을 통째로 들어 마시고
황소는 여물을 맛있게 먹으며 되새김질하고
통벌은 꿀단지에 앉아
맛있게 꿀을 긴 빨대로 빨아 마신다
여우들은 놓여진 생고기 항문으로
긴 손을 집어넣어
간과 심장을 꺼내어 맛있게 먹는다
참 먹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그러니 동물들이지
구미호도 뒤질세라 다가가 생간을 들어
소금에 찍어 입에 넣는다
그러면서 안 먹은 척
입가에 묻은 피를 싸아악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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