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아파 와 수니파 :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계자 선정 방식 차이
1) 수니파 (전체의 85~90%,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의 처가
희의를 통해 선출된 4명의 칼리프를 합법적 후계자로 인정하고,
코란을 영원하다고 보고 그 해석에 충실하다.
2) 시아파 (10~15%, 이란) : 무함마드 부인 아이샤의 시댁
적통자 중심으로 무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인 알리, 그리고 그의 직계후손
11명만이 정당한 후계자 주장한다.
유일신 고백, 예배, 헌금, 라마단 중 금식, 성지순례 등 수니파의 5개 기둥 외에 지하드(성전/종교적 투쟁)와
선행을 추가 (지하드에 따라 테러 및 과격한 이미지)
결국 두 종파는 후계자 선정방식에 따른 이권에 따라 나눠진 종파이다.
2. 이슬람 창시자 : 무함마드
<첫 번째 아내>
무함마드는 삼촌 밑에서 무역 노동자로 열심히 일하던 중, 25살 무렵에 15살 연상이자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카디자'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다. 그녀는 '이슬람 첫 신자'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첫 계시 : 신의 말씀 '쿠란' 저술>
결혼을 통해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그는 본격적으로 영성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5년을 명상에 정진했더니, 천사 '가브리엘'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계시를 받은 이후 무함마드는 자신이 생각한 적도 없는 문장의 구절이 떠오르고,
문맹이었음에도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겨 당시 가장 뛰어난 시인들도
쓰기 어려운 글을 술술 써내려 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신 '알라'를 전파했다.
그 시기에 '신의 말씀'이라 불리는 이슬람교의 경전 '쿠란'도 함께 쓰였다.
<첫 번째 아내의 죽음>
첫 번째 아내인 '카디자'가 세상을 떠나, 무함마드는 친구의 허락하에 그의 딸인 '아이샤'와 결혼을 했는데 그때 무함마드 나이 50살, 그의 두 번째 아내 아이샤는 6살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수많은 여성을 아내로 두었는데,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는 아이샤였다고 한다.
<죽음>
아라비아 반도를 이슬람으로 통일시킨지 얼마 안 된 AD 632년.
그의 병세는 갑작스럽게 악화되었고, 결국에는 거동조차 힘들어했고, 결국 '알라여, 내 싸움에 함께하소서'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숨을 거두게 된다.당대 최고 권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죽는 순간까지 검소하게 살았으며 본인의 유언에 의해 장례식도 간소하고 소박하게 치른 뒤 '메디나'에 묻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후세를 이을 후계자가 없었었다...그리고 후계자 지명도 안하였다...그렇게 갈등이 시작된다...
3. 갈등 : 누가 후계자인가?
무함마드가 죽고 무함마드의 처가인 아내 아이샤 쪽 (수니파)이 후계 싸움에서 승리하여
1대 부터 3대까지 지도자 자리인 "칼리프"를 이어받음.
참고로 1대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인 "아부바쿠르" 이다.
4대는 본가 집안인 무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인 알리 (시아파) 가 칼리프가 된다.
그러나 알리가 수니파에 암살당한다. 그리고 알리의 아들 후세인은 수니파의 암살을 피해 이라크로
망명을 갔지만 수니파는 3만의 군대로 후세인을 처단함.
그렇게 시아파와 수니파는 지금까지 같은 종교내에서 교파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첫댓글 어떠한 종교든 최초의 근본은 선행을 바탕으로 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잔인하고 반인륜적 폭거는 대부분 종교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중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후계자의 선정에 대한 갈등이 시작되어 오랜세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네요.
이슬람 역사의 중요한 순간과 종파간의 이해 관계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한 욕심이 비극을 만드는거군요…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껀데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