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상의 수면 위에서
서울공대지 2018 Spring No. 108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실험실에서 경정보트 개발에 참여하였던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어드밴스드 마린테크를 창업하였고 경정보트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켰으나 2010년 회사는 도산 위기에 처하여 있었다. 위기에 처한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는 경정보트의 수요가 늘어나리라고 낙관적으로 판단한 것이고 둘째는 기술개발이 적정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셋째는 확보한 기술을 도약의 기회로 삼지 못하였으며 넷째로 기술을 과신하여 경쟁업체의 출현을 가볍게 생각하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경정보트의 수요는 22개의 경정경기장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예와 같이 경정 경기장이 여러 곳에 지속적으로 설치되리라 낙관한 것이다. 하지만 경정사업이 국민체육진흥이라는 설치 당시의 목표보다는 수익확대에 치중하여 발전하다 보니 경정경기장은 늘어나지 않았다. 큰 비용을 들여 경정경기에 적합한 입지를 확보하고 경기장을 건설하기보다는 발전된 IT 기술을 빌어 경정경기를 도심의 건물 내에서 중계하는 값싸고 손쉬운 길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경기를 12곳에 중계하는 운영체제이니 12개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운영하였더라면 120척씩 모두 1440척의 경정보트가 필요했을 터이나 한곳에서만 120척의 경정보트를 사용하는 체제가 된 것이다.
둘째, 일본의 경정보트보다 우수한 품질의 경정보트를 개발하겠다는 공학도로서의 의욕에 앞서서 경정보트의 품질을 개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과일 깎을 칼이 필요한데 회칼을 준비한 격이 되어 선가가 상승하였다. 수명은 일본 경정보트에 비하여 1.5배인 18개월 정도로 향상되었는데 이것이 수요 불안의 원인이 되었다. 발주처에서는 매년 필요수량을 발주하기보다는 여유 있게 발주하고 사용하고 남은 배가 일정량이 되면 다음해 발주를 중단하는 방식을 택하여서 기업은 안정적인 사업운영이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셋째, 경정보트의 수요가 이처럼 안정적이지 못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회사는 해양레저산업부분에서 활로를 찾기로 계획하였다. 구미 지역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제 보트 쇼와 연계한 제1회 ‘경기 국제보트쇼’를 경기도 지원으로 2006년 여름 화성시 전곡항에서 개최하였다. 2008년에 개최된 ‘경기 국제보트쇼’에는 세계적 요트선수들이 참여하는 World
Match Racing Tour를 유치하였으며 경기에 사용할 요트를 건조하여 공급하였는데 요트대회 참가선수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발주처인 대회주관기관은 선박발주 방식에 준하여 요트 건조의 진척도에 따라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일반 공산품처럼 대금을 납품 후 분할 지급하기를 고집하였다. 결국 업체는 건조비 대부분을 차용하여야 하였고 그것이 심각한 경영압박으로 되돌아 왔다.
넷째, 처음부터 경정보트를 자체기술로 설계 제작하였고 수차에 걸쳐 꾸준히 기술을 개량해 왔으므로 기술면에서는 경쟁대상이 될 수 있는 업체는 있을 수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위기의 복병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조달청 입찰에서 기술 검토는 설계도서와 건조에 필요한 최소 요건을 확인하는데 그치고 있어서 기술보다는 응찰가격이 선정의 기준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저가로 응찰한 업체에 2010년도 경정보트 납품기회가 돌아가게 되었고 ㈜어드밴스드 마린테크는 도산위기에 처하였다.
2010년 경정운영본부는 새로 선정된 업체로부터 경정 보트를 공급받았으나 제품의 품질이 경정경기에 투입하기 어려울 만큼 부실했다. 결국 경정운영본부는 이미 사용이 끝나 퇴역시켰어야 할 경정보트들을 선별하여 수리한 후 재사용하는 궁여지책을 쓰면서 한편으로 신규 발주 계획을 앞당겨 9월에 경정보트 120척을 발주하기에 이르렀다. 납품기회 상실 후 기업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며 이직을 계획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입찰공고는 희망이 되었다. 일부는 퇴직하였으나 스스로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상당수의 직원들이 이직하려던 마음을 되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__
수주실패로 청산절차를 밟아야 할 회사를 유지하여야 하였던 것은 산업통상자원부의 해양장비경쟁력 강화사업에 참여하여 소규모 선박인 경정보트 생산과정에 시뮬레이션 기법을 적용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가을 경쟁 입찰에서 경정보트 공급업자로 다시금 재선정되었으니 도산을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결과를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과제를 수행하며 개발된 새로운 기술이 원활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생산 시스템을 바꾸는 등의 신규투자를 하였다. 새로운 생산시스템이 가동되면 획기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될 뿐 아니라 품질의 균일화에도 효과가 있어 단기간에 기업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리라 회사의 기술진 모두가 기대하였다.
하지만 이번엔 산업통상자원부의 사업평가 방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사업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할 목적으로 동일분야의 인사를 배제하고 관련분야의 인사들로 구성한 평가위원회에서 위원들은 생산시스템개선에 투입한 부분은 연구계획서에 없으므로 연구비 사용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연구비 환수결정을 내렸다. 이에 맞서 이의제기와 재심 청구 등으로 시간을 소모하기 보다는 수주한 경정보트의 납기를 지켜 경정경기를 유지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욱 중요하였다. 회사는 연구비 환수 유예조치를 신청하고 생산에 전념했다. 새로운 생산시스템은 기대이상의 생산성과 채산성을 가져왔다.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경정보트 공급자로 결정되었을 때에는 네 가지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였고 앞으로도 경정보트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리라 생각하여 수년 내 기업이 정상화되리라 확신하였다.
다음해에도 120척의 경정보트가 발주되었고 회사는 당연히 수주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아래 목재를 미리 수배하여 건조시키도록 하였으며 신규수주로 1000호선을 납품하게 되고 정상화를 이룰 것이라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또다시 저가응찰 업체에 납품기회가 돌아갔다. 경쟁 입찰에 참여하여 공급권을 획득한 HY 조선소는 LB 조선소가 사업 부서를 독립시켜 설립한 신생조선소로 두 조선소는 영업장소와 사주가 동일하였다. 법무법인에 상담하였더니 두 조선소는 사실상 동일하므로 참여자가 두 개의 가격으로 응찰한 것에 해당하여 입찰절차에 저촉된다며 소송제기를 권유하였다.
행정상의 문제이므로 처리가 신속하리라 생각하고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소송은 생각보다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신생조선소가 응찰 때 제출한 도면은 원고인 우리 회사가 설계한 설계도서와 동일하고 오로지 회사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점까지 법정에서 입증한 바 있으므로 당연히 승소하리라 믿고 있었는데 법원판결은 뜻밖이었다. 법원은 HY 조선소와 LB 조선소는 법적인 요건으로 판단할 때 별도의 법인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부당한 도면을 사용한 것은 인정되지만 소송제기 내용인 절차상 문제가 아니어서 판단범위 밖이라는 판결이었다.
창업 후 10여년을 지내며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긴 끝에 정상화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법원의 판결은 가혹한 철퇴였다. 경상비 이외에 지급해야 하는 법무법인비용, 생산 시스템에 투입한 투자비, 미리 구입한 목재대금, 유예기간이 끝나는 연구비 환수금 등이 당면 문제가 된 것이다. 분쟁 당시만 하여도 매출액 규모가 100배 이상인 상대방 조선소와 법정다툼으로 시간을 보내며 견딜 재정적 여력은 원고측에 당연히 남아 있지 않았다. 경쟁사의 기술력으로는 납품에 성공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하였으나 우리 회사로부터 유출된 도면과 이직 기술자들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경정보트를 납품할 수 있었다.
경정보트의 품질은 조선학적으로 분명히 후퇴하였다. 그러나 품질은 납품기준에 적합한데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경정선수들의 기량에 따른 문제라며 경정선수들을 자극하였다. 뜻밖에 납품업체의 주장을 일부 선수들이 받아들이자 경정보트의 품질 후퇴문제는 슬그머니 물밑으로 가라 앉아 버렸다. 뼈를 깎듯 부단한 개량을 거듭해서 확보한 앞선 기술로 세계적 수준의 우수한 경정보트를 개발하고 발전시킨 ㈜어드밴스드 마린테크는 위기를 맞을 때 마다 다시 일어섰으나 이번의 위기는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도산하고 말았다.
1977년 파나마에서 개최된 페더급 타이틀 매치에서 홍수환은 2회전에 카라스키야의 주먹에 네 번 스러지고도 3회전에 극적으로 승리하였다. 이 경기를 사전오기(四顚五起) 권투경기라고 하며 모두들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홍수환은 분명히 네 번 쓰러지고 네 번 다시 일어났는데 다섯 번 일어섰다고 하는 것은 경기에서 보여준 투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회사 문을 닫은 것은 어쩌면 홍수환 선수와 같은 투지와 기개가 모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관악 캠퍼스 명예교수실로 출퇴근하는 전철 경로석에 앉아서 때로는 상상의 수면 위에 미래의 고속보트를 띄우곤 한다. 태양광을 이용하는 요트, 전기구동 고속보트, 드론 이용 자율항주 고속보트 등 미래선박을 개발하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마음만은 젊은 탓일까, 제자들과 함께 다시금 도전적인 기업을 일으켜 세우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뜻을 같이하였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미래의 선박을 설계 제작한다면 세계굴지의 보트회사로 우뚝 서서 해양레저산업을 크게 일으키고 나아가서 해상방위에도 기여하지 않겠는가, 상상의 수면 위에서 상상은 또 상상을 거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