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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도(烟臺島)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에 속한 섬.
통영시 미수동 남쪽 경계에서 남쪽으로 약 8㎞ 떨어져 있다. 섬의 동쪽에 비진도·용초도·곡도를 비롯하여 주위에는 학림도·만지도·내부지도 등의 섬들이 있다.
최고지점인 연대봉은 해발 220m로 섬 중앙에 솟아 있으며, 대부분 급경사를 이루나 북쪽 사면은 극히 완만하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고, 북서쪽 일부 해안을 제외하면 암석해안이 많다. 특히 북동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에 해식애가 발달해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하고 비가 많다. 동백나무와 풍란이 자생한다.
농산물로는 쌀·보리·고구마·양파·마늘 등이 생산되며, 주민의 반 이상이 어업에 종사한다. 연근해에서는 도미·가자미 등이 잡히며, 굴·멍게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취락은 북서쪽 연안의 연대마을에 분포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한산도지구에 속하며, 바다낚시터로도 알려져 있다. 통영항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면적 0.785㎢, 해안선길이 4.5㎞, 인구 77명(2015년 기준).
통영 연대도
서진 여행칼럼니스트
주간 한국 기사 입력일: 2020.08.10.
통영 연대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이다. 통영 달아항에서 출발한 배는 학림도, 저도 등을 두루 거쳐 연대도에 닿는다. 섬은 숲을 가로지르는 바다백리길을 품고 있다.
연대도는 큰 섬마을의 모양새를 갖춘 곳이다. 마을회관, 경로당, 카페, 민박집들이 가지런하게 포구에 늘어서 있다. 해풍이 부는 섬길 사이로는 옛 돌담과 교회, 주민들의 삶을 담아낸 빛바랜 가옥들이 골목을 단장한다.
섬은 세월 속에 사연을 만들어낸다. 연대도의 집들에는 문패가 특이하다. ‘노총각 어부가 혼자 사는 집’, ‘돌담이 아름다운 집’…. 명품섬으로 선정되며 집집마다 개성이 묻어나는 문패가 걸려 있다. 문패 속에 담긴 주인공 중에는 섬을 떠나고 추억이 된 주민들도 있다.
섬골목, 숲길 따라 ‘연대도 지겟길’
연대도는 옛 수군통제영 시절, 섬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봉화를 올려 연대(烟臺)도라 불렸다. 인근에 해산물이 지천이어서 ‘돈섬’으로도 알려졌고, 섬안에 양조장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남쪽을 넘어서면 고요한 몽돌해변이다. 인적 없는 달그락대는 소리만이 주변을 감싼다. 섬 반대편에는 에코체험센터가 자리했다. 연대도는 한때 자체 생산전력으로 섬을 밝히는 에코아일랜드로 이름을 알렸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에코체험센터에서는 단체 숙박이 가능하며 센터 옆으로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작은 해변도 위치했다.
연대도의 동쪽 숲을 연결하는 걷기여행길이 지겟길이다. 지겟길(2.3km)은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의 한 구간으로 예전 마을주민들이 지게를 지고 연대봉까지 오르던 길이다. 호젓한 숲길이 1시간 30분 이어지며 곳곳에 전망대도 자리했다. 단 지겟길은 멧돼지 출몰 지역으로 홀로 걷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연대도에는 패총, 양귀비 꽃밭의 흔적도 함께 담겨 있다.
출렁다리 건너 이웃섬 만지도
연대도는 출렁다리를 통해 이웃섬인 만지도로 연결된다.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는 파도위 아슬아슬한 자태로 섬들의 이정표가 됐다. 길이 98m의 출렁다리에 올라서면 바다가 보이는 틈새로 청아한 물결과 파도 소리가 몸을 감싼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나무데크길이 이어진다. 나무데크길 따라 작은 모래해변에 내려설 수 있고, 푸른 바다에 발을 잠시 담글 수도 있다.
섬에서 나와 버스에 오르면 통영의 동네와 바다로 길은 구불구불 이어진다. 전혁림 미술관은 미륵산 자락, 푸른 통영의 호흡이 담긴 미술관이다. 통영에서 태어난 전혁림 화백의 작품 80여점과 유품이 전시돼 있다. 최근 뜨고 있는 봉평동 골목과 함께 둘러보면 좋다.
벽화마을 동피랑 이후 조명 받는 곳은 서피랑 마을이다. 동피랑과 어깨를 나란히 한 언덕위 서피랑에서는 호젓한 골목산책을 하며 통영시내와 강구안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서피랑 공원으로 이어지는 99계단, 피아노 계단 등과 길목의 조각작품들이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한다.
글 사진 서 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
여행메모
가는길: 통영터미널, 시내에서 달아항까지 약 1시간 단위로 버스가 오간다. 달아항에서 만지도까지는 배편으로 약 20분 소요된다. 주말, 성수기에는 여객선을 수시 증편 운행한다.
숙소, 음식: 연대도에서도 숙박이 가능한 민박과 펜션이 있다. 섬안 선착장 주변으로 노천횟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해산물 외에 전복해물라면을 맛볼 수 있다.
기타정보: 중앙시장, 서호시장 등 통영의 시장을 두루 둘러본다. 강구안 옆의 중앙시장에서는 즉석 회센터들이 마련돼 있다. 서호시장은 갓 잡아올린 활어를 구경할 수 있으며 오전중 방문하는 게 좋다. 이순신장군의 흔적 서린 세병관에서 내려다보는 통영의 바다 역시 아름답다.
연대도(烟臺島)
연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해안절경이 으뜸인 곳
목차
1. 연대도 개요
2. 연대도 둘러보기
4. 연대도와 일본과의 교류
7. 연대도를 떠나면서
8. 연대도의 관광명소
연대도 개요
통영항에서 남쪽 18km 지점에 있는 섬으로 면적 0.773km2, 해안선 길이 4.5km, 섬 주봉의 정상부 연대봉은 220.3m이다. 인구는 44가구 73명(2015)이다.
연대도(烟臺島)는 섬의 경사가 급하고, 남쪽 해안에는 높이 10미터가량의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북서 해안에는 평지가 있어 연대마을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왜적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섬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봉화를 올렸다 하여 연대도라 불렀다고 한다.
배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낮은 구릉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낮은 야산이, 왼쪽으로는 제법 높은 산이 자리하고 있다. 연대도 언덕배기에는 태양광발전소가 있다. 중앙의 산정을 중심으로 원추형을 이루고 있으며, 북서쪽의 완경사면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가파른 편이다. 북서쪽 해안만 모래와 자갈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암석해안이다.
연대도 둘러보기
객선이 닿는 경사제에 오르면 제법 넓은 공간이다. 여기서 왼쪽을 바라보면 해안에 데크시설이 되어 있다. 앞에 승강장이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해안도로가 ‘연대길’이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마을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있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다양한 문패가 시선을 끈다.
‘마늘농사를 많이 지으면서 부지런하고 착한 할머니가 산다는 박말수 할머니댁’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문패가 집 곳곳에 걸려 있다. 문패만 봐도 누가 그 집에 사는지 선명하게 그려진다. 재미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팽나무가 오래된 집’이라는 곳에 이른다.
골목길이 참 좋다. 평지가 아닌 경사진 골목길인데 곳곳에 빨간 고추도 있고 참깨도 포대에 널려 있다. 곳곳에 위치한 우물터 등과 함께 돌담도 인상적이다. 집 앞 빨랫줄에는 다양한 옷들이 걸려있다. 마당이 없고 문을 열면 바로 골목길인 집도 멋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문패에 ‘윷놀이 최고 고수의 집’도 있다. 왼쪽은 밭이고 오른쪽은 집인 밭길을 걸어가면 이어 위로 150kW급 태양광발전소가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연대도산성교회가 있다.
집들을 거쳐 교회를 지나 마을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뒤편에 몽돌해변이 펼쳐진다. 연대도에는 몽돌해수욕장이 두 곳이나 있다. 신경통에 좋다며 여름철이면 달궈진 몽돌에 몸을 눕히려는 피서객들로 북적인다. 안내표지판에는 ‘맨발 걷기를 하면 무겁게 느껴지던 발이 가벼워지고 마음과 몸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몽돌해변은 위에서 보면 아주 좁게 보이지만 정작 가까이 가면 넓이가 제법 된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나무로 된 목재계단이다. 해수욕장 주변에서 야영을 할 수도 있지만 야영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 좁다.
여기서 동쪽을 바라보면 발전소가 보인다. 발전소 앞으로 포장된 도로가 있다. 바로 섬의 5부 능선을 한 바퀴 가로지르는 ‘지겟길’의 시작점이다. 지겟길은 옛 어른들이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다니던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태 탐방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길이 2.2km의 이 지겟길은 말 그대로 지게 하나 지나갈 수 있는 소박한 오솔길이다.
울창한 숲길 사이로 보이는 남해와 섬의 풍경이 일품이다. 다랭이 밭을 야생화 밭으로 조성해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섬 정상을 연대봉이라 하는데 여기에 오르면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목길의 특이한 문패를 보는 것도 재미가 있어 다시 다른 골목길로 들어선다. ‘노총각 어부가 혼자 사는 집’ ‘연대도에서 가장 똑똑한 천성금 할머니 댁’ ‘꽃이 있는 풍경 어정자 할머니 댁’ 등 집집마다 걸려 있는 문패를 하나하나씩 보면서 골목길을 돌아본다. 정겹다. 문패 중에 ‘춤사위가 아름다운 염상근 노인 회장댁’이라고 적힌 조그마한 집을 들어가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부추를 다듬고 계신다.
마을의 문패를 구경하면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우물이 보인다. 겉은 사각형이지만 원형의 우물은 석면 슬레이트로 보호각을 세웠다. 그런데 기둥에 ‘부산대학교 동그라미회 71.2’ 표시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동그라미회라는 동아리에서 이 보호각을 세운 것 같은데 때를 보니 어언 40년이 넘는다.
그 옆으로 집이 한 채 있는데 이곳에는 ‘어우두리 할머니댁’이란다. 연대도에서 태어나서 연대도로 시집을 왔다는데 시금치, 마늘, 밭농사를 짓는단다. 연대도는 농산물로 쌀과 보리를 생산하고, 근해는 멸치어장을 이루며 굴 양식도 활발하다.
이곳에서 내려오면 ‘국명당(鞠明堂)’이라는 집이 있다. 어른 키보다도 높은 시멘트담장을 두른 집이다. 연대도에 사는 달성 서씨들의 제실이라고 한다. 매년 한 차례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 옆으로 벽화가 그려진 집이 있다. 해안길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계속 가면 방파제로 가는 길이다.
그 앞 물양장에는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여느 마을회관과는 ‘격’이 다르다. 2층의 건물인데 컬러풀하게 예술적으로 만든 회관이다. 마을회관 왼쪽에 연대도해설사가 사는 집이 있다. 민박과 매점을 겸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경로당이 있다. 연대도 경로당 이름은 ‘구들’이다. 그 앞에는 어항개축 공사현장이 있다.
마을회관 아래층에는 태양열발전현황이 숫자로 표시되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 발전량과 누적발전량 등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다. 섬 주민들은 마을 뒷산에 설치된 태영광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생활한다.
마을 내 주요 공공시설은 태양광과 지열로 냉난방하는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 재생 가능한 자연 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다. 당연히 전기료는 적거나 어떤 가구는 아예 제로에 가깝다. 마을 대부분의 가구에서 전력소비를 태양광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게시판이 있는데 경상남도 선정 마을기업 ‘연대도 할매공방’에 대한 안내문이다. 마을회관 오른쪽 숲 아래에 목재로 무대처럼 단을 만들어두고 벤치도 몇 개 설치했다. 그 뒤로 ‘연대도’라는 섬 이름을 푸른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 앞으로는 자연석으로 된 ‘연곡리 연대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연대어촌계’라는 조그마한 표지석이 있고 그 뒤로 연대항 시설공사 현장사무소가 있다. 그 옆으로 녹색 철조망이 있는 공간은 배수지다. 이 앞으로 넓은 방파제가 있다.
왼쪽에 조그마한 계류장이 있는데 이 해안 앞에 유일한 담배집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약간 넓은 공간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비석이 두 개 있다. 오른쪽은 3단의 기단 위에 세운 비석으로 ‘별신장군’ 비석이다. 남해안 별신굿을 모시는 별신대(別神臺)라고 한다. 그 옆에 있는 것은 연대도사패지해면기념비(烟臺島賜牌地解免紀念碑)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 바로 앞에 조그마한 방파제가 있고 그 앞으로 골목길이 있는데 이 골목길 입구에 봉수대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섬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봉수대까지는 1.8km라고 한다.
이 방파제 옆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그 앞에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체험센터’와 ‘다랭이꽃밭’이 있는데 여기서 500미터 안팎이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은 갈린다. 오른쪽으로는 산길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해안길로 데크 시설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오른쪽은 지겟길이고 왼쪽은 체험센터 가는 길이다. 체험센터 가는 길 입구에는 터널식의 입구가 있는데 위에는 연대도 지겟길을 알리는 표시가 있다. 이 길이 ‘지겟길 4구간’이라고 한다.
그다지 길지 않은 해안길을 걸어가면 이어 계단이나타나고 다시 왼쪽으로 이어지는데 오른쪽으로 건물이 보인다. 건물 앞은 마당이다. 바로 이곳이 에코 체험센터다. 연대도는 국내 최초의 ‘에코 아일랜드’다.
학교 앞 북쪽 해안인 이곳은 모래해변이다. 이 앞으로 보이는 섬이 학림도와 저도다. 운동장은 잔디로 깔려 있다. 태양열발전 시설 아래는 목재로 된 스탠드가 있다. 맞은편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은 KT기지국이다. 그 앞으로는 다랭이꽃밭이 있다. 이 옆으로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바로 지겟길이다.
참고로 연대도에서도 석기시대 조개 무더기에서 어류와 조류 등의 뼈가 출토된 바 있다. 그래서 사적으로 지적된 패총이 있다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연대도 패총은 규모가 1.748평이며 유적지가 총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적의 특이사항으로는 융기문토기, 무문토기, 마제석부, 어망추, 석촉, 낚시바늘, 장신구, 조개 팔찌 등이 출토되어 선사시대 역사를 고증할 수 있으며, 특히 인골도 화석으로 출토되었다.
석기와 토기가 일본에서도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 구주지방과 문화적 교류를 짐작하고 있다. 1987년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유적지 일부가 소실되면서 발견되었다. 1988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해서 1992년 제 4차 발굴을 하였다.
잡는 어업과 기르는 어업
연대도는 섬이 외해 쪽에 있다. 예전에는 60호 120명 중 어촌계원 40명 정도가 배를 가지고 바다에 나가서 일했다고 한다. 거의 마을 주민 대부분이 바다에 나가서 삶을 꾸렸다는 얘기다. 연대도의 어업은 외줄낚시가 주종을 이룬다. 이 어업을 채낚기라고 부르는데 20여 척의 배들이 계절에 따라 볼락이며 도미, 삼치, 농어 등을 잡는다.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연대도 바다는 청정수역으로 전복, 소라, 고동, 해삼, 미역 돌김 등이 많다. 해마다 30명 정도의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들어왔다. 그래서 한때는 돈이 많아서 ‘돈섬’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오염과 남획으로 해산물 수입이 줄어들었다. 특히 이 섬의 어민들은 단합이 잘 되어 불법어업이 전혀 없는 마을로 유명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지어업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전까지 피해를 많이 입었다. 그 당시 자원을 보호하려고 연대도 주민들이 무진 애를 쓰며 노력을 했다. 하지만 외지의 어선들이 연대도 근해에서 싹쓸이 어망으로 치어까지 잡아서 분통을 터트린 적도 많다고 한다. 연대도 인근 바다는 청정해역이며 치어의 산란과 부화에 적합한 여건을 갖추고 있어서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왔다.
지금은 잡는 수산업을 대체해 가두리 양식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연대도에는 1970년대 처음으로 양식업이 도입되었는데 처음에는 홍합과 굴, 미역 양식 등 아주 초보적인 것들이었다. 그 이후 우렁쉥이와 가리비 양식업이 활발했지만 그도 역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 뒤 1980년대에 잡는 어업과 동시에 기르는 어류 양식을 시작하였다. 연대도의 해상가두리는 대략 10ha 정도인데 주요 생산 품종은 우럭과 광어, 참돔이다.
1990년대 당시 가두리 양식이 호황을 이루어 통영의 수많은 섬들과 연안에서 기르는 어업을 하여, 지금 너나없이 어류양식업계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연대도는 다른 지역보다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장소가 협소하고 대규모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의 특성상 요즘같이 차도선이 다니지 않을 때 운송비와 인력난, 사료비, 태풍과 적조, 어병과 값싼 수입 수산물이 넘치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제자리걸음을 한 수산물 값이 가두리 양식의 사양길을 재촉하였다. 이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섬을 빠져 나가고 학교는 폐쇄되었다.
1973년도에 93가구 327명, 초등학교 학생은 96명이었다. 섬은 이제 노인들만 남아서 계속 늙어가고 있다. 소외된 덕분에 섬은 난개발을 피하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연대도 에코아일랜드 사업이 진행되면서 섬은 다시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대도와 일본과의 교류
옛날에는 연대도에 막걸리를 만드는 주조장도 있었다. 일제 때 사라라는 일본인이 연대도에서 일본의 어업 기술인 정치망을 도입하여 어업을 했다. 그래서 연대도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머구리잠수 배를 많이 탔다. 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가서 굴을 까는 품팔이를 하기도 했다.
약 15년 전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곤 했다. 15년 전에 연대도 노인회장의 인솔로 시모노세키로 건너가서 관광도 하고 1주일 동안 굴을 까고 왔다고 하였다. 아들에게는 일본 여행을 간다고 해놓고 굴도 까고 바람도 쐬러 갔었다.
해방 후 주민들은 일본인들이 하던 머구리배 기술을 배우고 배도 구입해서 조업했다. 머구리배가 자그마치 20척이나 있었고 술집은 7곳이나 됐다. 머구리배 뿐만 아니라 갈치가 잘 잡히고, 바다 속에는 전복과 해삼, 소라 등이 지천이었다. 그래서 연대도를 ‘돈섬’이라고 주위에서 부러워했다. 일본말로 연대도는 ‘카네시마’다. 아마도 마음씨가 곱고 순진한 연대도 사람들과 일본인 사라가 서로 뜻이 맞은 것 같다.
봉홧불을 올리던 연대봉과 당산
연대봉은 해발 220m로 주위의 섬들보다 좀 높은 곳이다. 가난한 시절에 나무 땔감을 하려고 지게 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추억의 ‘지겟길’을 만들어서 그 지겟길을 따라 여행객들은 연대봉 산길을 오른다.
여자들도 나무를 한 단씩 머리에 이고 내려 왔던 고생길이 지금은 산책길로 변해서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생존의 길이 되었다. “높은 곳에 나무하러 다니지 않고, 돛 달고 노를 저어서 고기를 잡지 않고 동력선을 타고 다니면서 고기도 잡고 통영도 나가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천국”이라고 노인네들은 말한다.
연대도 섬 정상을 연대봉이라 한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왜적의 동향을 알리기 위해 섬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봉화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 연대봉에서 봉화를 올렸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한산도가 여기서 지척이다. 그런데 연대(烟臺)란 이름도 여기서 왔다.
이 섬의 봉수대는 다 허물어져 있고 숲이 우거져 바다가 보이지도 않는다. 봉수대 옆에는 당나무와 당이 있는데 이것은 연대도의 신전이다. 신전의 건물은 없고 돌담은 둘러 있다. 신전에는 새끼줄로 들어가지 말라고 금줄을 쳐놓았다.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한 것이다.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 초하루에서 5일 사이, 길일을 택해 당제를 지냈다. 연대도의 당은 두 곳이다. 윗당과 마을 뒤편의 아랫당, 혹은 중당이라 한다. 윗당산에서 이순신 장군의 혼을 달래주는 산제를 드리고, 아랫당산에서는 장군의 장졸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당제를 모신다.
마지막에는 마을 가운데 있는 별신굿 터에서 별신장군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무당을 초청하여 3일간 별신굿을 진행했지만, 지금은 스님을 초청해 와서 마을 주민들과 같이 제를 드린다. 연대도는 우리의 토착 신들에 대한 신앙이 남아 있는 특이한 섬이다.
충렬사의 소작인으로 살았던 연대도 사람들
연대도 마을 한가운데에는 비석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별신장군 비석이며, 또 하나는 연대도 사패지해면(賜牌地解免) 기념비이다. 연대도는 섬 전체가 1665년 충무공 사패지(임금이 내려주는 논밭)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소작농이 됐다.
1949년 농지개혁이 일어났지만 일부 대지와 전답은 여전히 충렬사 사패지로 남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1989년 8월 7일, 섬 주민 소유가 됐다. 1989년에 와서야 마을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세운 기념비이다.
통영 충렬사(사적 제236호)는 성웅 이충무공의 업적을 기념하고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인 선조 39년(1606년) 제7대 통제사인 이운룡이 공의 충절과 위훈을 숭앙추모하기 위하여 왕명에 의하여 건립하였다.
숙종 21년(1695년)에 제70대 통제사 최숙이 경충재를 증축하여 서당을 개설하고 지방민의 자제들을 훈육하였다. 같은 해 제71대 통제사 김중기께서 숭무당을 창건하고 장교 3인을 차출하여 전곡사무-관리를 집행시키는 한편 연대도(통영시 산양읍 소재)를 사패지로 받아 위토전답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도 유일하게 본 충렬사 서원만은 보존케 하였다. 현재 충렬사는 사당을 비롯하여 동서재, 경충재, 숭무당, 비각, 전시관, 강한루 등 건물 17동과 5개 문이 있다.
경역면적 2,723평으로 되어 있고 명조팔사품(보물 제440호)을 비롯하여 지방유형문화재인 충렬묘비와 지방기념물인 동백나무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충렬사는 호국의 영령이신 이충무공을 위시한 휘하장병의 위령을 위하여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춘추향사와 공의 탄신일인 4월 28일 탄신기념제, 그리고 지방 축제인 한산대첩축제 행사의 고유제를 전통제례의식으로 봉행하고 있다.
1665년 연대도 사패지 사여를 기록한 비석도 현재 충렬사에 남아 있다. 충렬사 관계자들은 둔덕면과 사등면 지역에 38필지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 최초의 사패지 기록은 1665년 연대도이지만, 거제와 통영지역에도 많은 사패지가 남아 있다.
연대도에서 생산된 곡식을 가지고 이순신 장군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거제와 통영 지역민들도 이 제사에 동참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패지 때문에 연대도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고 하자 어느 주민은 웃기만 하였다.
연대도를 떠나면서
통영의 여러 섬을 다녔지만 연대도는 연구를 더해 보고 싶은 섬이다. 다른 섬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봉화를 올렸다는 연대봉, 충무공의 사당인 충렬사, 소작인에서 해방된 기념비가 이채롭다. 별신장군 비석, 연대도 패총, 재미나는 문패, 에코 섬, 태양광 발전소, 자갈밭 해수욕장,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것 등이다.
연대도는 뭍과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다. 또 최근에 이웃섬 만지도와 출렁다리가 건설되어 연대도에 들어오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주말에는 온 가족이 이 섬에 와서 출렁다리를 건너며 낚시도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힐링을 했으면 좋겠다.
연대도의 관광명소
연대도해수욕장(烟臺島海水浴場)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18km 떨어진 연대도에 있다. 백사장이 신경통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까만 몽돌로 이루어져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해역 전부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며, 섬 전체에 패각과 토기파편 등 유적이 산재한다.
숙박시설이 없어 해수욕장 뒤에 있는 마을에서 민박을 해야 한다. 해수욕장 주변에서 야영을 할 수도 있지만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 좁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장관이다. 썰물 때면 걸어갈 수 있는 천연의 바위섬 낚시터인 딴여가 마을 남서쪽 500m 거리에 있다.
통영 연대도패총(統營煙臺島貝塚, 사적 제335호)
규모가 1.748평이며 유적지가 총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유물 등이 출토되어 선사시대 역사를 고증할 수 있으며, 특히 인골도 화석으로 출토되었다. 1987년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유적지 일부가 소실되면서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대도[烟臺島] - 연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해안절경이 으뜸인 곳 (한국의 섬 - 통영시, 2016. 7. 25., 이재언)
통영시 [연대도 & 만지도]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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