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하나
배철현(고전문헌학자)에게
좋은 내용을 배웠다. 공유한다.
유대교, 기독교, 예루살렘 등
확실히 잘 몰랐던 명쾌한 그분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덤으로 늘 배우는 것이
삶을 성숙시키는 것이란 점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 존경을 받을 것 같지만,
말과 행동이 정연整然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하대下待하는 사람은
실제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배움은,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제 행위로 반복하여,
자신의 습관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운 사람은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금씩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정돈되어 있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다.
그런 사람이 남에게도 친절하다.
기원후 2세기 ‘벤조마’는『탈무드』
를 해석한『선조들의 어록』4.1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가 지혜로운 현자賢者인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누가 강한 권력자인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다.
누가 부자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누가 존경을 받을 만한 명예로운 자인가?
자신의 동료들을 존경하며,
타인을 명예롭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선조들의 어록』에서,
우주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원칙 때문에,
유지된다고 하는 것도 정리가 되었다.
1. 토라torah: ‘율법 경전’이면서 ‘길’이란 의미이다.
‘경전’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우리는 ‘경전’을 읽어야 한다.
여기에서 ‘길’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도道’와 같은 것 같다.
배철현(문헌학자)는,
‘길’에 대해 두가지를 덛붙인다.
①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기에게 유일하고, 자신만의,
즉 자기 삶을 자신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길’이 있음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매 순간 발걸음이 닿는 길이
바로 자신의 ‘목적지’라고 인식하며,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방편즉진실’이다.
②종교적인 ‘죄’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그 길에서 벗어나는
행위라고 한다.
2. 아보다avodah: ‘노동’이면서 ‘예배’란 의미다.
이 단어도,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노동’, 아니 자신이 하는 일이
신에 대한 경배로써 ‘예배’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아보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서비스service’란다.
‘아보다’는. 다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①이웃이나 낯선 자를 위해 하는 일이나
노동(서비스)은 바로 신에게 하는 것과 같다.
②자신이 하는 일을, 神을 위해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삶의 원칙이 되기도 한다.
③서비스라는 말은 낯선 자를
神처럼 섬기라는 윤리적 명령이기도 하다.
일이 신에게 드리는 예배일 수 있으며,
이웃에게 봉사는 길이 되는 것이다.
3. 헤세드chesed: ‘변하지 않는 어머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의미이다.
어머니처럼,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의 둘레를 확장하여
타인을 자신처럼 아끼는 마음을
지니라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비슷한 말 같다.
위 세 가지 원칙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
(=깨달음, 경전을 읽고
자신의 길을 깨닫는 원칙 토라)와,
자비(헤세드)를 더하고, 일상에서의
실천을 강조하는 ‘아보다’가
덧붙여진 원칙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