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1624년(인조 2)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축성을 시작해 1626년에 완공했으며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으로 험한 산세를 이용해 지형적으로도 방어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으로
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 위에 도시가 위치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조선시대 보장처로
완공 10년 뒤인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처음 남한산성으로 들어올 때 바로 이 문을 통해서 들어와 피신하여 45일간 항전하였으며
남문의 또 다른 이름은 지화문(至和門)이며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지화문이라 칭하였습니다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과 맞붙었으나 적의 계략에 넘어가 전멸하고 말았으며
'법화골 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는 병자 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 규모의 전투이자 참패로
이후 문의 이름을 패전의 경험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전승문(戰勝門)이라 칭하였습니다
인조는 왕자들이 피신해있는 강화도가 함락되고 폐색이 짙어지자 세자와 함께 서문(右翼門)으로 나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하며 치욕적인 항복을 표시했습니다
남한산성에 있는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성 안에 남은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이곳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守禦將臺)’라는 편액을 달았습니다
연부봉 옹성 :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는 시설물로
남한산성에 모두5개의 옹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암문 : 일종의 비밀 통로로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하며 16개의 암문이 있습니다
첫댓글 해발480에다 그당시25키로 성을 쌓았는데
별다른 장비도 없었슬것이며 모든돌등 백성들이 했는데 얼마나 힘 들었슬까요?
조상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역사공부도 했어요
남한산성은 돌의 종류나 성곽을 쌓은 모습이 제각기 달라 어느 한 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부터 조금씩 증축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네요.
병자호란으로 조선 인조 때 대대적으로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 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서깊은 남한산성 역사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치욕적인 역사를 보면서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 정신차려야 되겠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지난 가을 남한산성갔을때
단풍과 어우러진 성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사계절 산성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었습니다.
남한산성은 사시사철 교통도 좋고 도심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요.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성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많아요.
남한산성에는 유명 맛집들도 많아서 산행 후에 허기를 채우기도 좋지요.
남한산성은 뭐니뭐니해도 병자호란으로 인조의 삼전도 굴욕입니다.
오랜만에 남한산성 사진을 보게되어 가슴이 시원합니다.
송파님은 건강이 좋아 산에 자주오르는데 나는 여기에 따르지못하니
아쉽기만합니다. 늘 건강 유지하면서 좋은풍경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남한산성은 언제 가보아도 좋습니다. 비단길 같은 둘레길과 소나무들,
그리고 아름다운 주변의 경관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하지요.
쉬엄쉬엄 걸으면서 하루 보내기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