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여자의 목덜미를 뒤에서 간지럽히듯 어루만진다. 그 목덜미를 매만지는 손톱 전체는 검게 바스러져 있다. 여자는 그 손길을 내치는 듯하더니 이내 곧 두 손은 포개진다.
재년(제제)과 우영, 이 둘은 뇌병변장애인이다. 열두 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 연인. 8년을 만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한다. “우리 결혼하자. 오빠가 다 책임질게. 너 내 꺼 맞제?” 그러나 여자의 답은 시원치가 않다. 여자는 “응”이라고 답하지만 그 답엔 주저함이 깊게 배어 있다. 남자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몇 차례 재차 묻고 그 주저함을 해소하기 위해 항변하며 “진심으로 사랑한다”라고 강조한다.
영화 ‘나비와 바다’(박배일 감독)는 결혼을 약속한 8년 차 연인 재년과 우영이 실제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그 과정의 시간은 절대 녹록지가 않다. 두 사람이 중증장애인이라서 그렇고, 또 한국의 결혼 ‘제도’가 그렇다. 영화는 이러한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오늘날 결혼 ‘제도’의 가부장성을 가부장적 모습으로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는 재년의 목소리를 거의 들려주지 않는다. 재년과 함께 사는 친구가 결혼을 주저하는 재년에게 “그 생각 오늘 갑자기 한 거 아니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는데?”라고 묻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재년의 목소리로 그에 대한 답을 직접 들을 수는 없다. 우영의 말을 통해 재년이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결혼 살림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우영의 말일 뿐, 재년이 그 외에 어떠한 부분에 대해 갈등하고 힘겨워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일상생활 대부분 영역에서 활동보조가 필요한 우영은 자신의 아버지가 폐암으로 입원해 어머니가 아버지 병간호를 하는 동안 집안에서 혼자 생활한다. 날계란 하나를 깨기 위해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우영, 그는 “제제캉(제제랑) 결혼이 안 되면 이런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릴 거라는 걸 안다”라면서 “그것을 미리 체험해보는 시간”이라고 그 시간에 대해 읊조린다.
영화는 영화 속 인물들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가감이 없다. 우영의 엄마는 자신의 며느리로 들어올 사람이 “신체는 쥐틀렸지만 말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으나 그럼에도 “자신이 없을 때 (우영의) 밥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고맙게 여겨야겠다”라면서 ‘착잡한 마음’을 달랜다. 그렇게 우영의 엄마는 재년을 거두어들이듯 맞이한다.
영화는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가부장의 민낯을 한 번 더 선명히 드러낸다. “넌 이제 아줌마다”라는 우영의 말에 재년이 “왜 그런지 열 가지 이유를 대라”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우영은 답한다.
“아줌마는 자기가 밥을 해서 남편한테 밥을 줘야 하고 남편이 오기 전엔 자지도 못하고, 지금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중을 생각해 아껴 써야 하고 우리에게 해당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걱정도 해야 하고…….”
결혼과 동시에 재년이 아줌마가 되는 열 가지 이유가 우영의 목소리로 영화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온다.
제도는 그 사회 정상성의 기준이며 통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결혼제도 또한 그렇다. 강력한 가부장제를 지닌 오늘날 결혼제도는 배제와 억압, 통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증장애인 연인의 결혼 또한 비장애인 연인의 결혼과 다르지 않다. 손등 간질이는 바람처럼 간지럽던 사랑이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면서 변해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말 없는 갈등들이 침묵 속에서 부닥친다. 영화 속 침묵. 연극 속 암전처럼 고요하나 그 침묵 속에 갈등이 숨 쉰다.
장애여성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감으로써 또 하나의 고정적 성 역할을 강요받는다. 장애인이기에 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억압되었던 장애여성은 결혼 ‘제도’를 통해 또 한 번 소외를 겪는다. 장애인이고 여성이기에 또다시 배제되는 삶. 카메라는 그 일상적 풍경을 고요히 담아낸다. 카메라를 더 깊숙이 들이밀지도, 빼지도 않은 채 일정한 간격에 머물며.
영화 ‘나비와 바다’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출처: 비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