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도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비
야고보 아저씨추천 0조회 1226.10.16 20:34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이냐시오 성인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튀르키예의 안타키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요한 사도의 제자였다고도 하는 그는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던 안티오키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107년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에 들르는 곳마다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조 그리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하여 슬기롭고 심오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편지들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초대 교회의 신앙생활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순교도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비
어느 신부님이 순교자들의 영성과 신심에 대해서 강의하실 때 가슴에 용솟음치는 뜨거운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박해 시대에 관장들이 신자들을 잡아다가 매를 때리고, 고문하고, 며칠씩 굶기기도 하고,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자식들로 하여금 주님을 배반토록 회유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주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앞장세워 그들이 호강하는 것을 야비하게 보여주고, 정신적인 압박을 가한 다음 사형 언도를 내리기 직전에 마지막 기회라고 신자들을 회유합니다. 그 회유 방법은 아주 지능적인 것이었는데 주님의 성화와 묵주, 또는 십자고상을 바닥에 놓고, “네가 이것을 밟거나 넘어가면 집에 보내 줄 것이고, 넘어가지 않거나 돌아가면 그 자리에서 참수하겠다.”하고 칼을 든 망나니를 양 옆에 세워 놓습니다. 그런데 많은 순교자들이 그 성화나 묵주를 넘지 않고 돌아가거나 그 자리에 비켜서서 칼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얼른 ‘모두 용서하시는 주님이신데 잠시 한 번 넘어간 다음에 집에 가서 주님께 용서를 빌거나 통회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미련하게 칼을 맞아 죽어야 했을까?’ 하고 생각하였는데 바로 신부님께서 그 얘기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화나 묵주를 넘어가려고 생각하다가도 바로 그 앞에서 성령께서 “얘야, 돌아가서 칼을 맞아 죽어라 너와 나는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하고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도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비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더욱 가슴 깊이 느끼고 체험하게 됩니다. 순교자들은 그렇게 주님을 목숨을 걸고서 증언하였고 주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체험하였기 때문에 소중한 목숨도 초개(草芥)같이 위주치명(爲主致命)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는 나를 사랑한 사람이며, 나를 안다고 모든 사람에게 말한 사람이고, 내 명을 따라 복음을 세상에 전한 사람입니다.’하고 하늘나라에서 재판정에서 명쾌하게 증언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모독하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께서 보내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것과 당신께 함부로 하는 것을 구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이 성화를 넘지 않고 돌아가서 칼을 받은 사람과 성화를 넘어가고 평생을 주님께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살았을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이제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똑 같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와 유다를 보면서 베드로는 성령을 받아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으뜸제자가 되고,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지만, 유다는 실의와 좌절로 목을 매 자살한 것을 보면서 용서받을 기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겨우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리에서 가르치는 향주삼덕(向主三德)은 주님의 예지(叡智)에 대하여 믿음으로 응답하고, 주님의 무한하신 권능(權能)에 대하여 희망으로 응답하고, 주님의 끊임없는 큰 사랑에 대하여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모든 것이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탓으로 성령을 외면하여 믿음이 없는 삶, 희망이 없는 좌절의 삶, 사랑이 없는 이기적이며 척박한 삶이 곧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이에 올곧게 응답하는 삶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맹교(孟郊)의 시 유자음(遊子吟 : 길 떠나는 아들의 노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는 주님의 마음을 노래 한 듯하여 주님의 사랑에 보답할 마음을 새겨봅니다.
유자음 (遊子吟) - 맹교 (孟郊)
자애로우신 어머니 실을 드시고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길 떠날 아들 몸에 입힐 옷 遊子身上衣(유자신상의)
떠나는 날까지 촘촘히 꿰매심은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내가 늦게 돌아올까 마음 졸이심이라네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오~ 한 치 길이의 풀과 같은 마음으로 難將寸草心(난장촌초심)
온 봄의 햇빛을 어이 갚으리. 報得三春暉(보득삼춘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