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항아리 속 열흘
내 생일은 음력 1월 10일이다.
1959년생, 설이 막 지나 겨울 기운이 여전한 날이다.
설날이 지나면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떡국 냄새도 사라지고, 웃음도 사라지고,
가난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설이 지나면 가래떡 두 줄을
물항아리에 넣었다.
마치 무슨 보물이라도 숨겨 두듯이.
열흘이 지나면 내 생일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생일상이라 해 봐야 별다를 게 없었다.
미역국도 아니고, 상 위에 과일이 오른 적도 없었다.
그 대신
어머니는 항아리에서 가래떡을 꺼내
하얗게 썰어 떡국을 끓여 주셨다.
설날의 떡국과는 조금 달랐다.
국물은 더 맑았고, 고명도 소박했다.
그러나 그릇을 내미는 어머니의 얼굴은
조심스러웠다.
“오늘이 네 생일이잖아.”
그 한마디에
그 떡국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열흘 동안 물속에 담겨 있던 가래떡은
설의 남은 떡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남겨 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가난은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 가난 속에서도
열흘을 기다려 내 생일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떡국이 뜨거웠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물항아리 속에서 열흘을 버티던
그 가래떡의 시간만은 또렷하다.
어머니는 설날을 나누어
내 생일을 만들어 주셨다.
내 생일은
항아리 속 열흘에서 시작되었다.
- - -
물항아리 속 열흘
설이 지나면
어머니는 가래떡 두 줄을
물항아리에 넣어 두셨다
열흘 뒤
어머니는 그 떡을 꺼내
떡국을 끓여 주셨다
나는 그때의 맛도
부엌의 모습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설이 지나면
어머니는 떡을 물에 담가 두셨고
열흘 뒤
내 생일에
떡국을 끓여 주셨다
첫댓글 내 생일은 음력 1월 11일입니다.
어이쿠, 아우님!!
세상에
물에 변하지 말라고
떡을 담가 두셨나 봅니다.
아
감동 입니다.
엄마의 지혜로움
그렇지요 바깥에 놔두면 딱 딱 딱딱해 집니다. ^^
물속에 담겨 있던 가래떡이
시간을 견디며 더 특별해지듯,
어머니의 마음도 그 열흘 동안
더 단단해지고 깊어졌겠지요.
화려한 생일상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음식보다 따뜻하고 귀한 한 그릇,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읽는 내내
‘기다림으로 만든 생일’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에는 가래떡이 흔하지만
쌀이 귀했던 지난날에는 쌀로 만드는
엿이라든가 떡이라든가 가래떡이 귀한 존재였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아들을 향해 피어오르는 따스한 모정은
고드님 일생에 빛과 소금으로 역할했을 거 같군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 아프지 말고 백살까지 살라”고 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오래 사셨습니다. 아래 제 글에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https://m.cafe.daum.net/beautiful5060/8vuU/13475?svc=cafeapp
두 가닥 가래떡이
생일 떡국이 될 때까지,
모질게도 견디어야만 했네요.^^
퉁퉁 불으면,
저렇게 뜰 수 있을까
열흘 기다리느라 수고했다.
그 속에 엄마의 정성이...
저 그림은 AI가 그린 것이고 실제는 항아리 밑에서 잘 보관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뭏든 어머니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귀한 추억 귀한글입니다 고든님
생일 흰 떡국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 어찌 어머니 그 사랑을
잊을 수가 있을까요.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 해도..
인류가 이어져 온 힘인 것 같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최고의 생일날인것 같습니다
제경우는 음력2월 초이틀이 생일인데
음력을 계산할줄모르던 어린나이라
생일인지도 모르는데 차린날도 있었고
못차리셨을때는 어제가 니생일이었다고
얘기해주셨지요
어제가 니 생일이었다는 말씀 속에 미안함이 포함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어머니 사랑이 대단하시네요.
그시절에는 떡이 귀했기 때문에
어머니만의 방법으로 그렇게 생일상을
차려 주셨군요.
물항아리 속에 떡가래를
넣어 둔다는 얘긴 처음 들어보는데
어머니만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반갑습니다. 제라님.
다가오는 설날에 물항아리에 담갔다가 제 생일에 끓여 주세요. ㅎ
젊은날 지리산 갈 때 큰 내 다리를 건너 광한루에 간 것 같은데 맞나요?
다리 밑에 물고기 떼를 구경하느라 한참을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물고기가 많았던 기억.
@고든
맞습니다.
광한루에는 비단잉어가
아주아주 많지요.
비단잉어 수명이 70년?정도 된다는걸로
알고 있는데 광한루 잉어는 엄청 크지요
지리산의 초록이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가을 단풍 저리가라 입니다 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반갑습니다. 단풍님!
가난 속에서도
열흘을 따로 남겨 자식의 생일을 만들어 주신
어머니 마음이 먹먹하게 전해집니다.
물항아리 속 가래떡 두 줄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사랑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