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이야기는 실제 역사가 아니다. 고대세계의 심오한 철학과 유일신앙을 접목한 지적 유산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신화를 유대인식으로 각색한 신화에 불과하다.'
인간복제가 창세신앙을 위협하는 종교 위기의 시대에 2000여년을 지탱해온 기독교의 심장부를 향해 2명의 '고대 이교신앙 연구가'가 비수처럼 들이민 21세기 화두다. 저자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의 신랄한 문제제기는 전세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의 격렬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이 책이 출간된 1999년 영국에서는 학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격렬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지가 1999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문제작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예수의 실제 역사에 이전의 이집트나 그리스·로마 신화를 덧칠했다는 식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저자는 "기독교의 교리와 의식이, 고대 지중해 세계의 철학자, 지식인, 일반시민을 중심으로 1000년 넘게 광범위하게 퍼진 신비한 의식인 이교도 미스터리아(Mysteria·신비의식) 신앙에 절대적인 빚을 지고 있다"고 정리한다. 기독교에 의해 원시적이고 악마적 이단으로 못박힌 미스터리아 신앙의 핵심에는 죽어서 부활한 신인(神人)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신인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로 불렸다.
이집트 '오시리스 미스터리아'에 기원을 두고 지중해 전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나라 고유 문화(신앙)와 결합하면서 각기 다른 버전으로 변형됐고 저자는 이를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로 통칭했다. 이교도 신인인 디오니소스 미스터리아 신화는 유대인 메시아와 결합해 '유대인 미스터리아 신화'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예수이야기가 신화에서 역사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주장이다.
미스터리아 신인은 인류의 구원자이자 인간이 된 신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아버지와 동격이다. 또 인간 처녀에게서 태어났고 생일이 12월25일 또는 1월6일(아르메니아교회의 성탄절)이다. 미스터리아 신앙은 수세기동안 세례와 고해성사를 하는 의식을 천주교에 앞서 했고, 신인은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렸다. 여기까지만 봐도 예수상과 너무나 유사하지 않은가.
그러면 저자가 주장하는 신인과 예수의 차이는 뭘까. 둘 다 유일신인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기독교가 예수를 역사적 인물인 인격신으로 대하는 데 비해 미스터리아신앙은 신인을 상징과 비유로 바라본 데서 결정적 차이가 난다. 미스터리아 현자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여기지 않고 다른 신화와 얼마든지 합성하고 고쳐쓸수 있는 비유와 상징으로 간주했다. 미스터리아 신앙에서 하나님을 '보편정신'으로 이해하는 대목에서는 신을 부정하는 불교사상과의 유사점도 드러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1970년대 이후 활성화된 고대 신비주의 문헌연구를 토대로 기존 복음서를 정밀 비교분석한다. 플라톤의 '대화'와 피타고라스의 수학체계 등 그리스와 로마제국 학자들의 저술과 루터이후 독일 신학자들의 복음서 분석자료 등을 근거로 논리정연하게 문자주의(Literalism) 기독교의 역사왜곡을 비판한다. 저자가 '예수 미스터리아 명제'로 이름붙인 이 화두를 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100년전까지만 해도 가장 사색적인 사람들까지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고 다윈의 생각을 우스꽝스럽고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스도교가 이교신앙에서 진화했으며 예수이야기도 창세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비유적 신화라고 주장하는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이 내일이면 너무나 명백해 논쟁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기독교가 잃어버린 것(앎의 비밀을 밝혀주는 은밀한 미스터리아)을 회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인 고대 예수 이야기의 장엄함을 밝혀주기 위한 것이란 변론을 편다. 이 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인 곽노순(후기기독교 신학연구실)목사의 추천사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불가(佛家)에 손에 박힌 가시를 다른 가시로 뽑아낸다는 말이 있다. 맹신주의로 치닫고 있는 기독교의 풍토는 또다른 쪽의 치우침인 이 책으로 서늘한 평형에 이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